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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텔관광 졸업생이 반도체 회사에서 일하게 된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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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직자ㆍ협력사 연결하는 SK하이닉스 ‘청년희망나눔’
-1월 취업한 정태식 씨 “교육 받고 자신감 되찾았죠”

 
[헤럴드경제=유은수 기자, 신보경 PD] 여기 한 명의 취업 준비생이 있다. 대전의 한 전문대학에서 호텔관광과를 졸업한 정태식(25) 씨는 약 1년간 승무원을 준비했다. 학원에서 토익과 토익 스피킹을 공부하고 면접 스터디도 성실하게 했지만 결과는 번번이 낙방. 10번 가까이 면접에서 미끄러지며 자신감은 끝을 모르고 낮아졌다. “시간은 지나가는데 저만 멈춰있는 세상 속에 살아가는 것 같더라고요. 이 길이 맞나 하는 의문도 들었어요. 그런데 ‘문송하다(문과라서 죄송합니다)’는 말처럼 문과생의 취업난이 심하다 보니 다른 일을 알아보는 것도 쉽지 않았죠.”

 

정태식 씨는 지난해 SK하이닉스의 ‘청년희망나눔’ 프로그램을 이수한 뒤 협력사인 광건티앤씨에 올해 1월 입사했다. 현재 SK하이닉스 경기도 이천 공장에서 클린룸 시공을 점검하는 일을 하고 있다. [사진=신보경 PD]

다른 쪽엔 중소기업 한 곳이 있다. 1977년 설립된 광건티앤씨는 건축 내장재 등을 개발ㆍ생산하는 연 매출 900억 원대 강소기업이다. 대기업과 거래하며 반도체ㆍLCD 클린룸에 들어가는 패널을 제작ㆍ시공하고 있다. 이 같은 최첨단 산업 분야의 클린룸은 티끌 하나의 먼지도 허락하지 않는다. 광건티앤씨가 만드는 클린 패널은 무정전, 비발진, 미세먼지 흡착방지 기능을 자랑한다. 광건티앤씨는 SK하이닉스와 삼성전자, LG디스플레이 등의 클린룸 시공을 맡으며 성장해왔지만 구인난을 호소한다. 이창승(47) 관리부 총무팀 수석은 “기술 회사는 혁신이 전부고, 혁신은 사람에게서 나온다. 나름대로 우리만의 기술이 있고 더 성장하고 싶은 욕구도 있는데 젊은 친구들에게 인지도가 낮다 보니 답답한 면이 있다”며 “업종 특성상 직원으로 건축과 졸업생을 선호하긴 하지만 배우고자 하는 의지가 있다면 전공은 큰 상관이 없다”고 말했다.

접점이 없어 보이는 취업 준비생과 강소기업은 지난 1월 인연을 맺었다. 그들은 어떻게 만나게 됐을까. 연결고리는 SK하이닉스의 ‘청년희망나눔’이다. SK하이닉스는 지난해부터 구직자에게 반도체 실무 교육을 제공하고 우수 협력사에 인턴십과 취업을 알선하는 인재 양성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다. 박창용(50) SV인프라 지원센터장은 “취업이 안 돼서 힘든 청년들과 인재 발굴에 어려움을 겪는 협력사, 반도체 산업을 위해서 할 수 있는 게 뭔지 고민하다 숨겨진 인재를 발굴해서 협력사와 상호 매칭하는 프로그램을 만들었다”고 소개했다.


박창용(50) SK하이닉스 SV인프라 지원센터장은 “취업이 안 돼서 힘든 청년들과 인재 발굴에 어려움을 겪는 협력사, 반도체 산업을 위해서 할 수 있는 게 뭔지 고민하다 숨겨진 인재를 발굴해서 협력사와 상호 매칭하는 프로그램을 만들었다”고 말했다. [사진=신보경 PD]

SK하이닉스는 만 34세 이하 지원자 가운데 서류 심사, 온라인 적성 검사와 면접 등을 통해 교육과 인턴십 대상자를 선발한다. 지난해에는 1200여 명 가운데 179명이 교육을 받았다. 지원자들은 각자 지망한 기업에서 면접을 본 뒤 인턴십 기회를 얻는다. 정 씨는 지난해 친구 소개로 청년희망나눔을 지원했다. 커리큘럼을 살펴보다 지망 기업에 떨어져도 반도체 실무 교육을 받을 수 있다는 점에 끌렸다고 한다. 정 씨는 1차로 지원한 기업에는 아쉽게 떨어졌지만 교육을 마친 뒤 추가 모집을 통해 광건티앤씨에 입사한 특별 케이스다. 지난해 교육생 가운데 그처럼 정규직 취업에 성공한 사람은 모두 76명이다.

정 씨는 “전공이 다르기 때문에 처음에는 반도체 관련 단어가 생소하고 어렵긴 했다”면서도 “현직에 근무하시는 분들이 실제 일할 때 필요한 부분을 쉽게 설명해줬기 때문에 흥미가 생겼다”고 말했다. 실무 교육뿐만 아니라 강점과 소통 능력을 기른 일반 교육도 큰 도움이 됐다. “첫 주에 다른 교육생들과 조를 꾸려서 각자의 취업 준비 과정을 털어놓고 강점을 찾아주는 시간을 가졌어요. 제가 호텔에서 일하고, 승무원을 준비했다가 문과생인데도 청년희망나눔을 지원한 얘기를 듣고 다른 사람들이 ‘도전 의식이 있다’, ‘끈기가 있다’고 해주더라고요. 저조차도 몰랐던 제 장점을 발견하고 자신감이 많이 올라갔죠.”

광건티앤씨가 정 씨를 채용한 가장 큰 이유는 성장 가능성이었다. 이 수석은 “어떤 면에서는 실무적인 능력이 다소 부족할 수 있어도 기술 회사에서는 실패해도 다시 도전하는 마음가짐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고 설명했다. 광건티앤씨 관계자들은 정 씨를 면접하는 과정에서 ‘본인이라면 어떤 지원자를 뽑겠느냐’고 질문했다. 정 씨는 “신입사원이니 전문성이나 경력보다는 진취적인 마인드와 의지를 보겠다. 내가 바로 그런 사람”이라고 자신감 있게 대답했다고 한다. 이 수석은 “전공은 다르지만 그런 마인드가 마음에 들었다”고 덧붙였다.


SK하이닉스가 반도체를 생산하는 클린룸. 광건티앤씨는 클린룸에 들어가는 무정전ㆍ비발진 클린 패널을 제작ㆍ시공하는 강소기업이다. [사진 제공=SK하이닉스]

청년희망나눔 프로그램은 당장 SK하이닉스에 눈에 보이는 성과를 가져다주진 않는다. 교육생은 결국 다른 기업에서 인턴십을 하고 취업을 하지만 인당 100만 원의 훈련비와 인턴 지원금 월 200만 원은 SK하이닉스가 부담한다. 교육생이 협력사에 1년 근속하는 경우 축하금 300만 원도 지원할 예정이다. 이렇게 투자하는 이유는 반도체 산업의 발전과 전문성 상승에 도움이 될 거라는 믿음 때문이다. 박 센터장은 “저희의 노력이 반도체 업계 전체에 작은 경종을 울릴 수 있고 장기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생각한다. 반도체 생태계를 활성화시키자는 차원에서 시작한 프로그램”이라며 “앞으로도 지속적으로 추진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SK하이닉스는 5월 13일까지 청년희망나눔 2기를 모집한다. 이번에 선발하는 교육생은 250명으로 확대됐고 44개 협력사가 채용에 나선다. 채용 대상자도 165명으로 늘었다.

정 씨는 현재 SK하이닉스의 경기도 이천 공장에서 새로 만들어지는 클린룸 시공을 점검하는 일을 담당하고 있다. 사원 숙소에서 지내며 아침 일찍 출근해 쉼 없이 패널을 살펴보고 작업자를 관리하는 일이 고되기도 하다. 하지만 4개월 동안 근무하며 작업복이 제법 몸에 익숙해진 듯했다. 일이 적성에 맞느냐고 묻자 그는 “적성이라는 건 타고나는 게 아니라 내가 포기하지 않고 얼마나 열심히 할 수 있는 일인지에 달린 것 같다”며 “지금은 배우는 단계라 어렵긴 하지만 할 수 있는 데까지 해보겠다는 생각”이라고 씩씩하게 답했다.

그는 “대학을 갈 때만 해도 내가 반도체 업계에서 일할 줄은 몰랐다”며 “저는 졸업한 뒤에 이공계 쪽으로 다시 발걸음을 내디딘 케이스”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앞으로 또 다른 새로운 일을 하게 될 수도 있고 취업을 준비할 때보다 더 큰 실패에 부딪힐 수도 있겠지만, 자신감을 되찾고 다시 도전하는 법을 배운 것이 가장 큰 수확이었다”고 강조했다.

yes@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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