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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형기차 제작 40년 외길…명장의 ‘인생 작품’은 현재 진행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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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필수 기자의 인스파이어]

1991년 1월 독일 뉘른베르크. 밤바람을 쐬러 나온 동양인에게 현지인이 다가와 국적을 물었다. “사우스 코리아(South Korea)에서 왔다”고 하니 “코리아가 어디야?”라는 질문이 되돌아왔다. 생애 첫 출장. 이미 점심 메뉴를 주문하며 동양인이라는 이유로 호된 신고식을 치른 그였다. 새삼스러울 게 없었다.

“그때만 해도 독일에서 코리아 몰랐습니다.” 지금은 웃으며 말하지만, 당시만 해도 한국은 유럽, 일본, 미국에 치여 세계 완구 업계에 명함도 내밀지 못했다. 그런데 세계 최대 완구박람회인 뉘른베르크 토이쇼에 출품된 그의 작품만은 달랐다. 후에 그는 모형 기차 업계에서 ‘지니어스 미스터 리’라고 별명을 얻었다. 

이 씨가 5년에 걸쳐 제작한 빅 보이(BIG BOY) 증기 기관차 모형. 1959년까지 운행한 미국의 석탄 발연 증기 기관차를 1/16 사이즈로 축소해 제작했다. 세상에 단 한 대뿐인 모형으로 길이는 225cm, 황동 무게만200kg에 달한다.

2018년 12월 한국 인천. 모형 기차에 대한 집념은 첫 출장 때와 다르지 않다. 다만, 새카맣던 머리카락은 희끗희끗해졌고 때묻은 손에는 마비가 찾아왔다. 그는 “몸이 안 따라주는 게 너무 아쉽다”고 했다. 모형 제작 외길 40년. 이현만(62) 씨는 이제 마지막 작품을 준비하고 있다.



#. 모형 보트 들고 따낸 첫 오더(Order)

경기도 용인이 고향인 이 씨는 중학교를 졸업 직후 상경해 기차 장난감 제조 회사에서 약 10년간 일했다. 그리고서 “장난감이 아닌 모형 기차를 만들겠다”는 욕심에 대출을 받아 부천에 작은 공장을 차렸다. 1989년, 서른두 살 때였다.

독립 후 1년 동안 일감이 없었다. 마니아를 위한 시장인 만큼, 신뢰와 품질이 중요한데 홍보할 기회를 잡지 못했다. 그러다 업계 관계자로부터 미국 바이어(Buyer)가 서울 모 호텔에 묵고 있다는 첩보를 접수하고선, 통역관을 데리고 무작정 찾아갔다. 제작한 기차가 없던 그는 “모형 보트를 어깨에 메고 9층을 걸어 올라갔다”고 했다.

“그 사람이 나를 보더니 ‘이걸 메고 여기까지 왔냐’고 물어봤어. 그래서 붙잡고선 ‘나 기차 만들 줄 아는데 너 오더 좀 줄 수 있느냐?’했더니 처음에는 안 된다는 거야. 못 믿겠다는 거지. 그래서 ‘일단 오더만 주면 만들어서 눈으로 확인시켜줄게’라고 했더니, 작은 도면 하나를 주더라고. 만들어보라고.” 
도면을 보고 있는 이 씨. 도면을 입수해 그대로 축소시켜 모형을 제작한다. 도면의 상태가 불량하거나, 입수하기 어려운 기차의 경우, 영상이나 사진 자료를 보고 최대한 실제 기차에 맞춰서 세작한다.

문제는 그때부터였다. “내가 뭐 대학교를 나왔어, 뭘 했어. 처음에 도면을 보니까 앞이 캄캄하더라고.” 그날 이후로 이 씨는 주말도 없이 밤새워 기차와 관련한 자료를 수집하기 공부하기 시작했다. 기차에 들어가는 작은 부품들까지도 전부 손으로 일일이 만들었다. 원재룟값 때문에 남는 게 없는 장사였지만, 이 씨는 제품 선적을 끝마친 당시를 “진짜 날아갈 것 같았다”고 회상했다.

신뢰가 쌓이자 입소문을 타기 시작했고 미국, 독일, 일본, 오스트리아, 이탈리아, 영국 등 수많은 나라의 마니아들로부터 주문들이 들어오기 시작했다. 
보통 기차 한 대에 들어가는 부품만 2000여개가 넘는다. 모든 부품은 사이즈만 작을 뿐 실제 기차와 동일하게 만들어졌다. 내부에는 테이블, 의자, 심지어 화장실의 수도꼭지까지 모두 들어가 있다.


#. 미련함이 만든 세계 최고의 작품

모형 기차 제작 의뢰는 바이어로부터 설계 도면과 사진 자료를 받으면 시작된다. 자료를 보고 이 씨가 제작 가능 여부를 타진하고 가능하다는 판단이 서면, 기간과 수량을 협의한다. 보통 1년에 걸쳐 50~100대 정도를 제작했다. 긴 시간이 걸리는 작업인 만큼 고비마다 변수도 많다. 일 년치 수주량을 채우면 주문도 받지 않는다. 품질을 위해서다. 
이 씨의 마지막 주문 물량. 주문 제작을 끝마치면 바이어가 직접 공장으로 찾아와 일일이 손으로 검수 작업을 거친다. 대당 가격이 1000만원을 호가하는 만큼, 같은 종류의 기차라도 디테일을 다르게 주문하는 경우가 많다.

“다른 곳은 기차에서 그 많은 디테일을 축소해서 이익을 내려고 하거든. 하다못해 기차 문도 안 열리게 하면 원가를 낮출 수 있는데, 그런데 나는 솔직히 말해서 원가 개념이 없었어요. 아, 물론 돈 벌고 싶었는데 지금도 마찬가지지만 이윤을 창출하려고 품질이 안 좋은 제품을 만들고 싶은 생각이 없어. 미련하지.” 전 세계에서 ‘미스터 리’를 찾는 사람들이 많아진 이유다.

외국에서 열리는 완구 쇼에선 그를 먼저 알아보고선 “식사라도 한 끼 대접하고 싶다”는 마니아들도 있다고 한다. “한국에서는 미스터 리라고 하면 잘 모르겠지만, ‘전 세계의 기차 마니아 중에서 미스터 리를 모르는 사람이 없다’는 말을 들을 때면 흐뭇합니다.” 
 
이 씨의 박물관에 전시된 기차 모형들. 주문을 받으면 한 대 정도는 남겨뒀는데, 이를 모아 기차 모형 박물관을 차렸다.

“어떻게 하면 세계 최고의 모델을 만들 수 있을까”라는 질문에 스스로 답해온 40년 세월이 인천 남동구에 있는 기차왕국박물관에 고스란히 담겨 있다. “기차가 인생이었다”는 이 씨의 모든 작품들이 한자리에 모인 곳이다. 수십 종류의 기차뿐만 아니라, 자동차, 헬리콥터, 중장비 기계들이 전시장에 담겨 사람들을 기다리고 있다. 
철로에 전류를 흐르게 하면, 기차 모형 내 모터가 작동한다. 소리 또한 실제 기차 소리를 녹음해 사용하고 있다. “기차는 움직여야 기차”라는 게 이 씨의 소신이다.


#. 죽어서 무엇을 남길 것인가

오랜 기간 모형 기차를 제작하면서 매번 아쉬웠던 건 ‘공부’였다. “다른 건 다 빵점이었어도 기술 과목만큼은 만점을 받았다”는 이 씨는 대학을 다니지 못한 게 후회가 된다고 말했다.

“전시장에오는 사람들이 ‘어디 공대를 나왔냐’고 물어볼 때도 있는데, 전 대학을 안 나왔거든요. 어렸을 때 공부를 해서 공대를 갔다면, 첨단 기술을 배울 수 있었을 거라고 생각해요. 지금도 틈만 나면 인터넷으로 달 탐사선이 우주로 날아가는 걸 보는데, 볼 때마다 저 원리가 무엇인지, 궁금할 때가 많거든요.”
이 씨와 동료가 사진 자료를 보며 모형 제작 준비를 하고 있다. 설계는 CAD 시스템 (Computer aided design system)을 사용해 전산화했다.

이 씨는 마지막 작품을 제작 중이다. 나이가 들다 보니 굳어가는 손으로 예전처럼 기차를 만들기 어렵다는 판단에서다. 이미 그간의 자료와 제작 기계, 노하우도 함께 일해온 직원에게 모두 넘겼다. 한번에 정리하기엔 아쉽지 않느냐고 슬쩍 떠봤지만, “전혀 (아쉽지 않다.)”라는 대답이 돌아왔다. 
 
이 씨의 마지막 작품인 콜럼버스 우주 발사대의 일부. 도면이 없어 사진과 영상을 참고해서 만들고 있다.

대신 마음속에 남아 있는 공부에 대한 아쉬움과 우주에 대한 호기심을 마지막 작품에 쏟아붓기로 했다. 이 세상에 단 한 개만 존재하는, 세계 최고의 작품이 될 것이라는 믿음을 가지고 내년 4월까지 모든 제작을 끝마칠 예정이다. 콜럼버스 우주 발사대. 설계도조차 구할 수 없어 인터넷 영상과 사진을 참고해 스스로 설계 도면을 만들었다. 
이 씨가 자신이 만든 디오라마(diorama) 옆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호랑이는 죽어서 가죽을 남긴다고 그러는데, 나는 죽어서 뭘 남길까 하고 생각해봤습니다. 남이 하기 어려운 것, 지금까지 아무도 만들어보지 않았던 것을 시도해보려고 해요. 그래서 콜럼버스 우주 발사대를 만들고 있어요. 이게 제 마지막 작품이 될 것 같습니다.” 
이 씨가 마지막 작품의 황동 조각을 조립하고 있다.


essential@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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