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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편함없는 세상 위해 ‘장애 체험’ 나선 은퇴 어르신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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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럴드경제=서상범기자]서울의 어느 지하철역. 휠체어를 탄 어르신들이 꼼꼼하게 역사 주변을 살핀다. 한 명은 휠체어에 앉아 안내표지판과 휠체어용 편의기기들을 사용해 보고, 한 명은 휠체어를 잡고 보조한다. 나머지 한 명은 이들이 지나가며 체험한 기록들을 꼼꼼히 살피고, 어딘가에 기록한다.

이들은 실제 장애가 있는 이들이 아니다. 바로 협동조합 무의(Muui)가 만드는 ‘교통약자 환승지도’ 제작을 위해 일하고 있는 시니어 자원봉사자들이다. 

무의와 도심권50플러스센터가 공동진행하는 지하철환승지도 제작에 참여중인 활동가와 디자이너들(사진=무의)

지난 2015년 설립된 무의는 ‘장애가 무의미하게 되는 세상’이라는 슬로건 아래 교통약자 환승지도, 그 중에서도 서울 지하철 환승지도에 초점을 두고 있다. 일반 지하철맵에는 교통약자용 경로가 없고, 교통약자용 지하철 앱의 경우 입체지도와 텍스트로 구성돼 사용이 직관적이지 못하다는 문제점을 개선하기 위해 시민들이 직접 나선 것이다.

지난 2016년과 2017년에는 대학생들과 젊은 자원봉사자가 주축이 돼 지도를 만들었다. 여기에 시니어 활동가들이 힘을 보태게 된 것이다.

사실 이 과정에는 무의를 이끌고 있는 홍윤희 이사장의 경험이 바탕이 됐다. 그는 “지난 2017년 노원역 엘리베이터에서 실제 장애인분과 함께 지도 리서치를 하던 도중, 갑자기 한 어르신이 ‘요즘은 대통령보다 장애인이 더 대접받아’라는 말을 던지더라. 백화점 장애인 주차구역에 자기 차를 주차하지 못하게 한다는 이유에서였다. 그래서 그 분과 한바탕 싸웠다. 그런데 생각해 보니, 나는 싸우고 말면 그만이지만 실제 장애인들은 이런 어르신들과 계속 같은 공간에서 부딪혀야 하더라. 그래서 그냥 싸우기만 해서는 안되겠다 싶었다. 흔히 어르신들의 생각은 바꿀 수 없다고 생각하는데 나는 다르게 생각해보고 싶었다. 노원역 사건 후 무의 사용자들에게 어떻게 하면 좋을지 페이스북 등을 통해 물어봤고, 그 결과 ‘어르신들이 직접 휠체어에 타고 리서치에 나가 보면 좋겠다’는 의견이 많았다”고 말했다.

그 후 어르신들과의 협업을 고민했고, 작년 말 은퇴하신 시니어들에게 의미있는 일을 찾아주는 도심권50플러스센터 측과 연락이 닿았다. 이 후 교육과 실습을 통해 6명의 은퇴 활동가들이 직접 활동을 하고 있는 상황이다. 활동방식은 3인이 1조가 돼 한 명은 휠체어를 타고 휠체어 눈높이에서의 어려운 점을 이야기해주고, 나머지 사람들은 보조와 기록의 업무를 담당한다. 지난 6월부터 이달까지 서울시내 총 18개 역의 조사를 진행하고 있으며, 이를 통해 약 80개의 경로 지도가 나올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또 이들은 지하철 휠체어 눈높이에서 지하철에서 불편한 점을 파악해 본 경험을 토대로 무의의 다른 청년 자원봉사자들이 경로 조사를 나갈 때 리서치 팀장 역할도 수행중이다. 
무의와 도심권50플러스센터가 공동진행하는 지하철환승지도 제작에 참여중인 활동가와 디자이너들(사진=무의)

그렇다면 이 활동을 하는 시니어 활동가들은 어떤 사람들이고, 실제 이 활동을 통해 어떤 인식을 갖게 됐을까?

이강숙 도심권50플러스센터 PM은 “활동하시는 시니어 활동가들은 공무원, 학교, 민간기업 등에서 퇴직한 분들이 대부분이며 실제 자식이 장애를 갖고 있는 분도 있는 걸로 안다. 또 큰 병 때문에 휠체어 신세를 져 본 분도 있었다. 프로젝트 자체가 사회공헌 성격이 있다 보니 역지사지 심정을 할 줄 아는 분들이 지원하신 셈이다”라고 전했다.

또 이들은 월 1회 활동을 정리하는 월례회의를 통해 “(활동하면서) 장애인에 대해 많이 생각하게 됐다 지하철에서 휠체어 탄 장애인 만나면 관심갖고 도와줄게 없나 살피게 된다. 지하철 가면 표지판만 보게 된다. 처음엔 장애인만 필요한 정보라고 생각했는데 이제 곧 나에게 필요하게 될 정보더라. 이런 활동은 지하철 시설 만드는 공무원들이 꼭 해봐야 한다”고 소회를 밝히기도 했다.

정부가 주최한 포럼에 나와 본인들의 경험과 소회를 이야기하기도 했다. 전직 어린이집 원장 출신의 안민경 씨는 지난 9월에 개최된 행정안전부 주최 ‘열린소통포럼’ 유니버설디자인 관련 포럼에서 “무의 활동을 하면서 유니버설디자인(아이, 어른, 임산부, 노인, 장애인, 비장애인 등의 사람이 제품, 시설, 서비스를 이용 할 때 제약을 받지 않도록 설계하는 것)이란 용어 처음 알게 됐고 생각 못했던 걸 생각하게 됐다. 일부 특정 약자만 생각했는데 그렇지 않았다. 누구나 쉽게 사용할 수 있는 디자인이 필요하다는 걸 알게 됐다”고 말했다. 
무의와 도심권50플러스센터가 공동진행하는 지하철환승지도 제작에 참여중인 활동가와 디자이너들(사진=무의)

이와 같은 시니어들의 참여가 세대 소통에도 의미가 있다고 홍 이사장은 말한다. 그는 “무의에서는 시니어들과 청년 디자이너들이 같이 역에서 리서치 자료를 모으는 활동을 하고 있다. 세대간 교류라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디자이너들이 역에 가 봐야 무의 지도를 만들 수 있기 때문이다. 이 과정에서 특히 시니어활동가들이 정말 꼼꼼하시더라. 휠체어를 한번 타 보신 후에는 정확한 이동 거리를 재기 위해 줄자를 가지고 나오시더라. 민간기업에서 퇴직하신 한 분은 거의 지도 앱에 나온 것처럼 정확한 지도를 손으로 그리기도 하신다. 이런 걸 보면서 우리 무의 연구원이나 디자이너도 이들 시니어의 경험을 잘 활용하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게 됐다. 그래서 지난 10월 초에는 SK행복나눔재단에서 모집한 무의 리서치 3개역 자원봉사 활동에 이들 도심권50플러스센터 시니어활동가 2명(조순길 안민경)을 리서치 팀장으로 모셨다. 역마다 휠체어를 타고 가면서 리서치 활동을 하는데 두 분이 지난 4개월의 경험을 살려서 역할을 잘 담당하셨다”고 전했다.

그렇다면 이들이 함께 작업한 결과물은 어떻게 될까? 우선 실제 체험을 통해 기록된 문서는 지도로 탄생한다. 이 지도들은 단순히 지도에서 끝나지 않고, 서울시와 함께 이 정보를 공공부문이 업데이트할 수 있는 구조로 만들 계획이다.

홍 이사장은 “무의 지도의 목표는 지도를 만드는 과정에서 현장의 불편 사항을 해당 지하철 사업자에게 전달하여 사람이든 안내문이든 배치가 되고 필요한 인프라가 생겨나면서 ‘무의 지도가 무의미해지는 것’이다. 비장애인과 장애인이 자연스럽게 서로를 아는 과정을 통해 서로에 대한 공감을 키워가는 사회가 되었으면 좋겠다. 비장애인과 함께 만드는 지하철 환승지도 활동이 그런 사회를 만들어가는 데 아주 작은 디딤돌이 되길 바란다”고 전했다.

tiger@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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