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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와인의 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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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디야? 지금 바로 달려갈게”

흔히 가슴 뛰게 떨리는 사람이 생기면 자꾸자꾸 보고 싶어진다. 만나고 싶어 조바심내는 자신을 발견하게 된다. 내 마음을 보여주고 싶고, 그와 함께 있는 시간이 주는 행복함을 느끼고 싶어 한다.


내게 요즘 와인이 그렇다. 와인을 만나는 시간은 내게 두근거림 그 자체다. 특히 생각지도 못한 가성비 좋은 와인을 만나게 되면 ‘만세’를 부르고 싶을 정도다. 물론, 꼭 마셔보지 못하더라도 책에서나 볼 수 있는 와인을 만나게 되면, 보는 것만으로도 좋다.

사람 사이에, 특히 연인으로 발전해 가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시간이 필요하다. 서로가 첫눈에 반하지 않은 이상 말이다.

천천히 다가서야 한다. 상대가 나를 인지할 수 있게, 그리고 나란 사람에게 호감을 느낄 수 있게.

와인도 마찬가지다. 와인과 친해지고 싶다면 기다려줘야 한다. 와인이 가진 향과 맛이 깨어날 때까지.

코르크 마개를 ‘퐁’하고 딴 뒤 바로 마시면 와인이 주는 느낌은 시고 떫은 맛일 것이다. 이성에게 성급하게 대시했을 때 “저 이성 친구 있거든요!”라고 걷어차이듯 말이다.

나 역시 와인을 잘 알지 못하던 시절, 소주를 마시듯 따자마자 와인을 마셔댔다. 향을 맡는 것도 건성건성, 입안에서 맛을 느끼려는 시도조차 없이 꿀꺽 삼켰다.

“이게 뭐야!!!뭐 이리 떫어!!! 맛없어”

심지어 프랑스 와인을 맛볼 때는 반발감마저 생기기까지 했다. 내 미각을 의심했다. 도대체 이런 걸 마시고 맛있다고 하는 이들이 잘못된 것인지, 아니면 내가 와인을 몰라서 그런 것인지 혼란스러웠다.

그러다 알게 됐다. 와인은 마개를 딴 뒤에 적어도 30분~1시간을 두고 마시면 더 향과 맛이 좋아진다는 것을.

특히 프랑스 와인, 그중에서 까베르네 쇼비뇽을 주 품종으로 해서 블랜딩해 만든 와인을 마셨을 때의 경험을 비춰보면, 1시간 이상 충분히 기다렸다가 마시는 것이 바로 마셨을 때보다 훨씬 더 좋았다. 같은 와인일까 싶을 정도로 .

불과 두 달 전의 일이다. 프랑스 보르도 지방의 5대 샤또인 무똥 로칠드에서 생산하는 5등급 와인인 ‘샤또 끌레르 밀롱’을 맛볼 기회가 있었다. 마트에서 가격이 10만 원 후반대인 어마어마한 녀석이다.

하지만 난 그 소중한 기회를 너무 허망하게 날려버렸다. 따자마자 마신 탓에 시고 떫은 맛 이상을 느낄 수 없었다. 지금 생각해도 너무 쓰라린 경험이다.

고가의 와인을 접할 기회가 있다면 충분히 기다렸다가 맛보길 권한다. 와인을 강제로 열어준다는 디캔팅을 했다고 하더라도 30분 이상 기다려주는 것이 좋다. 내 경험상 그렇다.

좋은 와인을 준비해갔다면 미리 따놓고, 식전주로 샐러드와 화이트 와인을 마시면서 기다리는 것도 한 방법이다. 혹시 와인의 시간이 궁금하다면 따자마자 한 모금 마셔보고, 나머지는 1시간 뒤에 마셔보자. 좋은 경험이 될 것이다.

만약 레드 와인을 주문했는데 병 표면에 이슬이 맺힌다면 와인에게 더 많은 시간을 주는 것이 좋다. 와인을 너무 차가운 온도에서 보관한 탓이다. 1시간이 지났음에도 시고 떫은 맛이 강하다면 와인의 잘못이 아니다. 시간이 더 필요한 것이다.

와인은 시간을 배신하지 않는다. 충분히 기다려준다면 반드시 내게 훌륭한 향과 맛을 선사해 줄 것이라 믿는다.

글=신동진
정리=서상범 기자
tiger@heradl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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