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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자는 늘 실패하는 사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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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정아 기자의 인스파이어]



박은정(51) 교수는 글로벌 학술정보 분석 기관인 클래리베이트 애널리틱스가 선정한 2017년 연구성과 세계 상위 1% 연구자다. 그것도 지난해 이어 두해 연속으로. 그러나 ‘세계 1% 연구자’가 된 순간에도 그는 고민하고 또 고민했다.

‘나, 계속 연구할 수 있을까.’

그때만 해도 박 교수는 비정규직 무급 강사였다. 소위 말하는 명문대 출신도 아니었다. 어머니와 시아버지를 간병하다 마흔이 넘어 박사학위를 받은 경력단절 여성이었다.

“수상식에 갈까 말까, 정말 망설였어요. 주눅이 들어 있었던 거죠.”

그런 그가 지난해 11월 경희대학교 동서의학대학원 정교수가 됐다. 그를 위한 연구실과 실험실이 주어졌다. 박 교수가 처음으로 가져보는 안정적인 연구 공간이었다.

“눈물이 펑펑 났어요. 계속 연구할 수 있어서. 그게 정말 기뻐서.”

지난 7일 실험실에서 만난 박은정 경희대 교수. 그는 “인간의 아름다움은 끊임없는 성장해 가는 것”이라고 말했다.


# 나의 놀이터

지난 7일 오전 7시 경희대학교 박은정 교수 연구실. 이마를 쓸어올리며 무언가를 끼적이는 그의 눈빛이 초롱초롱했다. 그 눈빛에 실험에 대한 열정과 애정이 고스란히 묻어났다.

“하루 일과는 무조건 7시 시작이에요. 보통 밤 9시 정도 되면 집에 가고요. 주말에는 조금 일찍 집에 가요.”

박 교수는 커피 마시는 시간을 절약하기 위해 매일 보온병에 따뜻한 커피를 담아 집을 나선다. 실험 결과를 기다리는 막간을 이용해 집에서 챙겨온 도시락을 먹는다. 그는 머리카락도 직접 자른다. 박 교수의 연구실 책상 위에는 스킨·로션 등 기초화장품이 담긴 박스가 놓여 있었다.

“공부를 하다 보니까 어느 순간에 제가 완전히 연구에 미쳐가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어요. 제 머릿속에 다른 게 들어올 틈이 없었어요.”

그는 풀리지 않는 문제가 있어서 계속 고민하다 잠을 자면 꿈속에서도 실험을 했다고 말했다. 박 교수는 갑자기 생각났다는 듯, “그런데 꿈에 나온 실험은 늘 대박이 난다”고 덧붙였다.

“그 공간에 있는 동안 너무 즐거웠고, 시간가는 줄도 몰랐고, 제 머릿속은 늘 자유로웠어요. 그래서 그렇게 연구에 미쳤던 것 같아요.”

실험실은 그의 놀이터였다.



# 가족을 지키고 싶었어요

편당 400~500회 이상 피인용 될 정도로 나노독성학 분야에서 우수한 연구 논문을 발표하고 있는 그는 “이 모든 시작에 아이가 있었다”고 했다. 지금으로부터 28년 전, 10개월이 채 되지 않은 박 교수의 아이는 백혈병 진단을 받았다. 그러나 그 진단은 오진이었다.

“제가 너무 어렸어요. 아들이 아팠을 때 어떻게 해결을 해야 하는지 잘 몰랐어요. 어린 엄마로서 실패한 거에요.”

당시 그의 나이 스물넷. 각종 검사로 고통스러워하는 아들을 볼 때마다 그는 서러움이 북받치고 눈물이 왈칵 쏟아졌다.

“오진이라는 사실을 밝히는 과정 내내 계속 생각했어요. 내가 모자라고 무식하면 내 가족을 지킬 수 없구나, 내가 똑똑하지 않으면 내 새끼 제대로 키워낼 수 없겠구나, 기회만 되면 반드시 공부를 계속해야겠다, 그 생각 뿐이었어요.”

20대 때 결혼, 임신으로 퇴사한 그는 석사 과정을 밟기로 했다. 


# 과학자는 실패하는 사람입니다

‘세계 1% 연구자’ 타이틀에 어깨에 잔뜩 힘이 들어갈 법도 하지만 그는 유명세를 즐기기보다 실험하는 게 더 좋은 천생 연구자였다.

“제가 가지고 있는 연구자로서 최고의 자질은 모자란 거예요. 저는 늘 새로워요. 전 모르는 게 정말 많아요.”

그래서 그는 매일매일이 실패의 연속이라고 했다.

“실험은 늘 실패해요. 과학자는 밥 먹듯이 실패하는 사람이에요.”

위대한 연구와 발명 뒤에는 언제나 무수한 실패가 숨어 있기 마련이고 노벨상을 받으려면 남들이 안 한 것, 생각 못 한 것을 해내야 한다고. 그러기 위해선 실패를 두려워해선 안 된다고.


“왜 실패했는지 원인을 찾다 보면 새로운 것을 찾아요. 새로운 것을 빨리 찾아서 논문을 내면 그게 ‘세계 1% 논문’으로 가는 거예요.”

그가 쾌활하게 웃으며 덧붙였다. “실패는 실패가 아니에요. 실패에서 끝나면 그게 진짜 실패에요.”


# 끝없는 최선이 있을 뿐

그나마도 석사과정 2년을 한 뒤 그는 공부를 또 쉬어야 했다. 어머니가 췌장암으로 세상을 떠났고, 1개월 뒤엔 시아버지마저 식도암 말기 판정을 받았다. 공부 대신 간병의 세월이 이어졌다. 그는 병간호를 하는 동안 질병이 어떻게 생기는지 더 깊게 알고 싶었다고 했다.

“현실적인 벽이 단단했기 때문에 저는 분명히 지칠 수 있었어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금까지 이어올 수 있었던 건, 제가 만들어낸 데이터가 제 가족뿐만 아니라, 누군가에게 행복이 될 수 있다는 희망이 있어서가 아닐까. 제가 겪었던 아픔을, 다른 분들은 겪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처음 빗속을 걷는 것은 두렵지만 비에 흠뻑 젖으면 비는 더 이상 두려워할 존재가 아니게 되는 것처럼, 무언가에 온몸을 던지면 우리는 더 이상 그것이 두렵지 않다고. 오늘도 박 교수의 실험실은 바삐 돌아간다.

“맨날 농담 삼아서 노벨상 타겠다고 이야기하는데요. 사실 진정 제가 원하는 건, 한번 어디까지 갈 수 있는지 계속 가보는 것, 끝까지 해보는 것. 그게 가장 큰 꿈입니다.”





박은정 경희대학교 동서의학대학원 교수는 실패박람회 개막일인 오는 14일, 실패박람회 문화프로그램인 ‘KT 청춘해 콘서트’에서 여성, 흙수저, 비명문대, 나이, 비정규직이라는 5겹 유리천장을 타파한 실패와 도전 이야기를 들려줄 예정입니다.


dsun@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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