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빚을 왜 대신 갚아주느냐고 묻는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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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정아 기자의 인스파이어]


빚 부담을 덜어주는 곳이 있다. 

그곳엔 얼굴에 주름이 가득한 장년층과 허리가 굽은 노인이 연이어 들락날락했다. 저마다 다른 사연으로 찾았는데 퉁퉁 부은 얼굴엔 그늘이 졌다. ‘상담 대기 번호표’를 빠르게 꺼내드는 눈빛은 초조해 보였고, 깊게 패인 주름은 세월의 흔적을 말해줬다.

“빚 때문에 고생하는 사람들이 다리 뻗고 잘 수 있도록 돕는 게 저희 일이라고 생각해요.”

1일 한국자산관리공사(캠코) 강원지역본부를 찾았다. 지난 10여 년간 캠코에서 가계재기지원 업무를 맡아온 기획서민금융팀 안성아 과장은 “혼자 가난해진 사람은 없다”며 이같이 덧붙였다.



# 빚이 빛이 되는 곳

1997년 외환위기 당시 국내 처음으로 공적 신용회복제도를 도입한 캠코는 2003년 카드대란,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등 경제 위기 때마다 금융취약계층의 경제적 재기를 지원했다. 캠코는 가계부채 위험을 해소하기 위해 고금리 대출을 시중은행의 대출로 바꿔주는 제도, 장기간 연체된 소액 채권을 소각하는 제도도 담당하고 있다.

“저도 이 업무를 하기 전에는, 왜 다른 사람이 진 빚을 대신 갚아줘야 하지? 이런 생각을 당연히 했어요. 그런데 만나서 상담하고 이야기를 나눠보니까, 그리고 삶을 들여다보니까, 그렇게 말할 수 있는 것이 아니더라고요.”

신용회복 지원자격 요건을 묻는 사람들과 전화로, 면대면으로 바쁘게 상담을 하고 있던 안 과장은 “돈을 연체하려고 빌리는 사람이 어디 있겠어요?”라고 되물었다. 그러면서 그는 “이곳 문턱을 밟는 사람들은 대부분 낮아진 신용등급 때문에 제도권 금융회사를 이용할 수 없어 비제도권 고금리 대출을 쓰다가 다시 과도한 부채를 짊어지는 악순환의 고리에 빠진 사람들”이라고 했다. 빚의 고리에서 벗어날 수 없는 금융 취약계층이 있다는 설명이다.

그는 그들을 눈앞에서 매일 마주했다.


# 너무나 닮아 있는 삶의 방식

“빚이라는 것을 왜 갚아주냐, 그 빚을 왜 못 갚고 있냐 이런 이야기를 하시잖아요. 그런데 여기 오신 분들은 사연 하나하나가 굉장히 깊어요. 몸이 아프거나, 미혼모 가정이거나, 장애를 가진 아이나 부모를 데리고 있거나. 무슨 공식 같아요. 어떻게 보면 내 의지가 아니라 사회경제적으로 정말 힘든 상황 속에서 제일 약하고, 못 버틴 분들인 거죠.”

1997년부터 지금까지 캠코에서 신용 회복을 지원받은 사람은 269만 명. 안 과장은 이들의 삶의 모습은 저마다 다르지만, 삶의 방식은 크게 닮아 있었다고 했다.

“그저 자신의 이야기를 들어준 것만으로도 감사하다 말씀하시는 분들이 많아요. 주머니에서 사탕을 한 움큼을 꺼내 주시기도 하고, 2000원짜리 떡 하나 건네시는 분들도 많고요.” 이날 그는 수화기 너머로 신청자에게 안부를 건네며 “병원에서 퇴원했어요?”, “아이는 잘 크고 있어요?”라고 되묻기도 했다. 다시, 수화기 너머로 꺄르르 웃음 소리가 들려왔다. 

한국자산관리공사 강원지역본부에서 가계재기지원 업무를 맡아온 기획서민금융팀 안성아 과장. 안 과장이 상담창구에서 채무지원 대상자와 상담을 하고 있는 모습.

물론 이는 숫자 너머의 이야기다. 캠코의 채무지원 심사는 엄격하다. 엄격성을 확보하기 위해 국세청, 국토교통부 등 정부가 보유한 채무자의 소득 및 재산정보를 활용한다. 상환능력 심사 신청자에게 개인정보 활용에 대한 동의를 얻어 금융자산 현황, 거주지 임대차계약서, 카드 사용내역 등을 확인한다. 안 과장은 “이곳에 오신 분들한테 미안할 정도로 저희가 꼼꼼하게 신청자격 요건을 따지고 있다”고 전했다.


# 이제 다리 뻗고 죽을 수 있겠어요

이날 오후에는 10년 넘게 1000만원이 안되는 돈을 못 갚은 채무자 8명이 상담창구를 찾았다. 줄지어 찾는 이가 뜸해지고 상담창구가 비교적 한산해질 무렵, 안 과장에게 기억에 남는 채무조정 지원자를 물었다. 그는 벙거지 모자를 푹 눌러쓰고 왔던 50대 여성을 언급했다. 그는 암 환자였다.

“빚을 해결하지 못하면 내가 편히 죽지 못할 것 같아서, 그래서 오늘 왔다고 하셨어요. 암으로 시한부 판정을 받은 분이셨죠. 340만 원의 원금에 연체 이자가 불어나 천 단위가 된 채무를 안고 있었어요.” 빚을 내어 빚을 갚고, 다시 빚낸 돈을 가지고 한 달을 생활해야 하는 나날을 20여 년간 살았던 분이라고 했다.

“채무 감면을 받고 100만 원 정도만 조금씩 나눠갚으시라고 했어요. 그런데 이 정도 돈이면 내가 아파도 일해서라도 다 갚고 죽겠다, 펑펑 우시며 그렇게 말씀하시더라고요.”


이날 캠코 부산지역본부 상담창구에서 만난 남윤이(58) 씨도 지난 수년동안 자신의 의지와는 아무런 상관없이 수차례 이사를 해야 했다고 전했다. 남 씨는 식당에서 일을 하며 돈을 모았지만 월세와 생활비, 대출이자를 내기도 빠듯해 원금을 갚을 수가 없었다.

그 사이 900만 원의 원금에 이자가 불어나 갚아야 할 돈은 3600만 원이 됐다. 추심업체가 헐값에 산 채권에 높은 이자를 붙이면서 빚의 굴레가 18년간 이어진 게 그 이유다. 간경화로 병원비까지 빚에 의존하면서 남 씨는 더 이상 이 세상에 남아 있어야 할 이유도, 용기도 없었다고 했다.

“10년이면 이미 은행이 안 갖고 있거든요. 팔아넘겨져서 대부업체나 불법 사금융으로 가 있을 돈일 겁니다. 그동안 채무자는 얼마나 추심으로 고통을 받았겠어요. 제가 만난 분들은 ‘돈을 달라’ 말씀하지 않으세요. ‘정말 잘 살고 싶은데, 빚 부담 조금만 덜어주세요. 그러면 남은 돈을 잘 갚을게요’ 이렇게 말씀하세요.”

안 과장은 “혼자 힘으로 현재 상황을 극복하기 어려운 채무자들을 ‘도덕적 해이’라는 틀에 가둬 상환을 통한 채무 해결만을 기다린다면 이들은 평생 연체자 굴레에서 벗어날 수 없다”고 거듭 강조했다.


# 혼자 가난해진 사람은 없다

캠코가 금융 취약계층의 경제적 재기를 도울 수 있었던 건, 지난해 금융공공기관과 113개 대부업체가 가지고 있는 회수불능 장기연체 채권(각 14조원·2.8조원)을 인수해 모두 소각했기 때문이다. 소멸시효가 완성된 빚은 더 이상 갚지 않아도 되지만 채무자가 이 사실을 모른 채 갚거나 추심업체가 채권을 사들여 지급 신청을 하면 시효는 또다시 연장될 수 있다.

“벼랑 끝에 피는 꽃이 제일 아름답다고 하잖아요. 저희가 지원하는 분들은, 조금만 도와주면 아름답게 우리사회에 피어날 수 있는 분들인 것 같아요. 그 벼랑 끝에서 저희가 희망을 주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혼자 부자가 된 사람이 없듯이, 혼자 가난해진 사람도 없다고. 안 과장은 빙긋이 웃어보이며 덧붙여 말했다.

“캠코에서 와서 상담을 받고 많은 사람들이 하루라도 빨리 그 빚이라는 늪에서 빠져 나오셨으면 좋겠어요.”





dsun@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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