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빛바랜 우리의 꿈과 청춘, 교복에 담아 보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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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장필수 기자의 인스파이어]

사회공헌이기도 하지만 엄연한 ‘교복 수선 사업’이다. 그래서 여느 기업 사회공헌 활동처럼 단발성으로 신문 지면에 사진 한번 찍히는 게 다가 아니다. 세상에 지속 가능성과 존재 이유를 증명해야 한다. 목표는 3년 내 사회적 기업으로 인정받아 정부 지원을 받아내는 것. ‘행복 교복 실버천사(이하 행복교복)’ 이야기다. 그래서인지 사업을 처음 고안한 SK하이닉스 담당자도, 함께 손을 맞잡은 지방자치단체와 교육청 관계자도 조마조마한 마음을 담아 “제발 잘 돼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잘돼야 하는 이유는 또 있다. 사업 종잣돈이 SK하이닉스가 아니라, SK하이닉스 ‘직원’들 주머니에서 나왔다. 노인(65세 이상) 일자리 창출과 저소득층 청소년의 교복비 부담 절감이라는 설명을 듣고, 직원들은 자발적으로 조성한 기금 중 일부를 허락했다. 한번 도와주고 끝내는 그저 그런 봉사가 아니라 작지만, 의미 있는 변화를 일으켜보자는 데 공감한 결과다. 

행복 교복에는 자원봉사자를 포함해 총 15분이 근무하고 있다. 수선실은 교복을 수선하는 장소지만, 동시에 모두 함께 모여 수다도 떠는 사랑방이다.

일련의 과정을 일하는 직원들이 모를 리 없다. 그래서 말끝마다 “잘해야 한다. 우리가 잘해야 한다. 잘 부탁드린다”고 했다. 단순히 월급을 주는 직장이 사라지면 안 된다는 뜻이 아니었다. 교복을 수선해 되파는 작업은 이곳에서만큼은 단순 노동 그 이상의 가치를 지니게 됐다. 이루지 못한 꿈을 어루만져주고 잊고 죽어 있던 추억에 숨결을 불어 넣어줬기 때문이다.



#. 식구들과 행복을 나누는 장소

“나는 언어가 짧은데, 여기는 행복한 사람들이 모여 행복을 가져가는 곳인 거 같아요.”

‘행복 교복은 어떤 곳이냐’라는 첫 질문에 김진화(71) 할머니는 이렇게 답했다.

행복 교복과 할머니는 복지관을 통해 이어지게 됐다. 노인들을 위한 문화강좌를 들으려고 복지관을 찾았다가 우연히 모집공고를 보게 됐고, “누가 먼저 할까 봐 대번에 했다”고 말했다. 시집가기 전 재봉틀과 바느질을 배웠고 오랜 시간 두 아들 교복과 남편 양복을 다려봤기에 요구 조건도 딱 들어맞았다. 복지관 내 담당자와의 간단히 면담을 진행했고 이후 수선팀에 배정돼 일주일에 두 번 출근하고 있다. 할머니에게 이곳은 공식적으로 첫 직장이다. 수선팀은 기증받은 교복을 분류하고 수선하고 다림질해 매장으로 내려 보내는 게 주 업무다. 

김진화 할머니가 수선한 교복을 품에 안고 있다. 수선실에서는 사실상 새 것과 다름 없는 교복들이 할머니, 할아버지의손길을 기다리고 있었다.

교복은 사실 할머니와 가깝고도 먼 존재였다. 교복과 관련된 추억에 대해 묻자, 자신은 중학교 때까지만 교복을 입었다고 말했다. 인문계 고등학교 대신 기술 고등학교로 진학해서다. 당시 기술 고등학교 학생은 교복 대신 사복을 입고 학교를 오갔다고 했다. “우리 친구들, 교복 입고 가는 애들 보면 피했지.” 아버지는 딸이 여섯인 집안에서 아들만 대학을 보냈다. 어린 시절 품은 서글픔은 나이가 들어서도 가슴 속 한(恨)으로 남았다.

결혼 후 자식들에겐 “너희가 대학교 가면 나하고 너희 아버지는 학교 가고 싶다”고 말했지만, 결국 학교를 가진 못했다. 배움 그리고 배움을 상징했던 교복을 보며 못다 이룬 꿈이 생각날 법도 한데, 손자ㆍ손녀뻘 되는 아이들의 교복을 수선하는 것만으로도 만족스럽다고 했다. 생애 첫 직장과 교복이 할머니에게 부여하는 의미는 남다르다. 

행복 교복 매장에 진열된 교복. 김 할머니는 “섬유 유연제도 좋은 걸 쓴다”며 홍보를 당부했다.

할머니는 인터뷰 줄곧 ‘행복’이라는 단어를 많이 말했다. “나는 여기서 같이 일하는 사람을 식구라고 생각해. 만나면, ‘우리 식구 왔어’라고 말해. 내가 행복하니까 그런 소리가 저절로 나오는 거 같아.” , “정말 행복하게 다니고 있어요.”, “주변 사람들이 행복해 보인다고 말해요. 그래서인지 살도 4kg이나 쪘어요.” 그리고 마지막으로 “나에게 교복이 행복을 주고 삶에 의미를 주는 것 같아요”라고 덧붙였다.


#. 재봉틀로 교복에 추억을 심다

김태원(73) 할아버지는 행복 교복에서 가장 연장자다. 옷에 관심이 많아서 군 전역 직후 양장점에서 일했다고 한다. 이제는 이름조차 생소한, 서양식 숙녀복 파는 가게는 젊은 청춘을 불태웠던 장소였다. 할아버지는 그곳에서 20년 넘게 근무했다. 50대 중반 이후 잠시 다른 일을 하다 은퇴를 했고 일흔이 넘어서야 다시 재봉틀 앞에 앉았다. 그래서 행복 교복에서 업무 영역을 넘나든다. 수선팀, 세탁팀, 수거팀을 왔다갔다하며 맹활약하고 있다.

행복 교복에서 일하겠다고 가족에게 넌지시 말했을 때, 자식들은 말렸다고 했다. “이제 나이도 있는데 그만 쉬시고 여생을 즐겁게 보내시는 게 어떻겠냐”는 게 자식들의 의견이었다. 아주 틀린 말은 아니었다. 그런데 젊은 시절, 지나간 추억이 자꾸 눈에 밟혔다. 다시 일을 할 수 있을 것이란 생각을 하지 못하던 차였다.

“안내 데스크에서 모집 공고 종이를 봤는데, 그 뒤로 자꾸 옛날 생각이 나는 거야. 나는 아직 힘이 있는데, 일을 할 힘이 있는데. 처음에는 ‘할 수 있을까’라는 생각도 했었는데 막상 해보니 아주 재밌어. 새로운 출발선에 선 것 같아.” 일을 손에서 놓은 지 20년이 넘었지만, 숙녀복을 재단했던 실력은 몸이 기억하고 있었다. 

김태원 할아버지가 재봉틀 앞에 다시 앉은 건 거의 20년 만이다. 할아버지는 옷과 함께한 세월이 긴 만큼 동료들에게 손수 기술을 전수하기도 한다.

교복 수선 작업을 하면서 지나가는 학생들을 보는 눈도 달라졌다. 할아버지는 “예전에는 학생들과 길에서 마주쳐서 지나쳐도 아무 생각이 없었는데, 이제는 보는 시각이 아주 차원이 달라졌어요. 어쩌면 이 중에 누군가는 ‘우리가 손질한 교복을 입고 지나가지 않을까’라는 생각을 많이 합니다.”

오랜 기간 옷을 만져왔고 경력직인 만큼 품질에 대한 소신도 확고하다. “(교복) 손질하면서 손주들 많이 생각해요. 귀여운 아이들이에요. 이 교복 입을 아이들도 얼마나 귀여워요. 그런 아이들이 입을 옷인데 조금이라도 모자란 게 있으면 자신 있게 권하겠어요? 쉽지 않아요. 정말 괜찮다. 권하고 싶다고 스스로 말할 수 있을 때까지 노력할 거에요.”

행복 교복 매장 입구. 촬영 당일, 영화과 대학생들이 촬영 소품으로 사용할 교복을 사갔다.

#. 남은 건 우리의 몫

SK하이닉스의 행복 교복 사업은 시작된 지 만 1년이 채 안 됐다. 제 1호 매장이 있는 이천시 행복 교복은 지난해 11월부터, 2호 매장이 들어선 청주시 행복 교복은 올해 4월 영업을 시작했다. 두 매장 모두 각 지역 중학교와 고등학교 교복을 거둬 손질하고 있다. 교복을 다시 팔 때는 새 제품 정가의 10% 정도를 받는다. 한 벌에 3만 5000원에서 4만원 정도다. 아직 많이 알려지지 않아, 찾아오는 사람은 많지 않은 상황. 학교의 교복 기부 협조도 절실하다. 할머니, 할아버지는 “비싼 새 제품 대신 저렴하게 좋은 교복을 구할 수 있는 센스 있는 젊은 학부모들이 찾아와줬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essential@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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