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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년간 실패, 그럼에도 나는 희망을 심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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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장필수 기자의 인스파이어]

“가슴 한 켠이 막 끌어 올라”서 시도했는데 성공한 적이 단 한 번도 없다. 실패만 22년째다. 이쯤 되면 하늘이 야속해 그만두고 좌절할 법도 한데, 포기를 모른다.

물론 수천 번의 실패 속에서 변한 건 있다. “반드시 된다”라는 마음가짐에는 “내 생에는 안 될 수도 있다”는 가능성이 더해졌다. 다만, 커피나무가 강원도 맨땅에서 자랄 수 있다는 믿음은 여전히 확고하다.

‘겨울이 엄동설한인 한국에서 무슨 얼어 죽을 커피나무냐, 미친 짓하고 있네’라는 손가락질 받을 때도 부지기수. 그럴 때마다 박종만(58)씨는 이렇게 말한다.

“우리나라에 커피가 들어온 지 130년 됐습니다. 아마 100년 후는 어떨까. 커피 안 마실 거 같아요? 200년은 어때요. 커피 마실 겁니다. 그럼, 그때도 우리는 수입만 해야 되나요?” 

박 씨가 커피나무를 살펴보고 있다. 추위에 얼어붙은 나뭇잎을 수천번 떼어낸 22년의 세월은 그를 더 강하게 만들었다.

200년 뒤의 커피, 한국산 커피를 상상하는 사람에게 22년은 짧은 시간이다. 그간 투입된 돈, 시간, 노력보다 지금도 그에겐 ‘반드시 된다’라는 마음가짐이 더 중요하다. 그래서 실패를 쉼표 삼아 논문도 남겼다. 커피나무가 한국의 건조한 환경에서 버틸 수 있는가를 연구한 이 논문이 앞으로 커피 재배의 발판이 되리라 박 씨는 믿고 있다.

“커피나무, 언젠가 우리나라 강원도 어느 두메산골에서라도 자랄 수 있습니다.” 확신의 말은 현실이 된다고 한다. 그의 눈에는 확신이 들어차 있다.


#. “커피는 돈벌이가 전부가 아니지”

믹스커피가 전부인 줄 알았던 시절, 박 씨는 1989년 홍대 앞에 ‘왈츠’라는 카페를 열었다. 스타벅스 코리아가 이화여자대학교 앞에 1호점을 내기 10년 전이었다.

사업은 승승장구했다. 당시 ‘왈츠’라는 브랜드를 빌려 원두커피를 파는 체인점은 전국에 70여 개에 달했다. 인테리어 디자인 회사를 운영하다 우연히 일본에서 접한 커피가 자신의 인생을 바꿨다.

점포가 늘고 매출이 증가하면서 커피는 ‘숫자’가 됐다. 좀 더 많은 사람에게 대량으로 커피를 공급하려는 욕심 탓에 커피 볶는 기계도 커졌다. 그렇게 점포가 새로 생길 때마다 관리는 점차 소홀해졌고 커피 볶는 기계가 커지면서 향 대신 양이 중요해졌다. 

박 씨는 좋은 커피를 찾아 아프리카, 중앙아시아, 동남아시아 등 커피로드를 따라 여행했고 때론 방랑했다.

때마침 커피를 공부하려고 떠난 유럽에서 그는 전환점을 맞는다. 오래된 역사를 자랑하는 유럽의 카페들과 ‘왈츠’의 다른 점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사람 냄새나고 커피의 향기를 느낄 수 있는 문화 공간이 그곳에는 있었다.

그 길로 잘 나가던 프랜차이즈 커피숍을 모두 접었다. 정리하고 남은 돈으로 박물관이 있고 음악회가 열리고 커피의 향기를 느낄 수 있는 문화 공간, ‘왈츠와 닥터만’을 지었다.

“유럽에는 100년, 200년 넘은 커피점들이 많아요. 그런데 우리나라 커피점들이 과연 100년 후를 생각하고 있을까요? 왈츠와 닥터만은 100년 후를 생각하고 지었어요.”

커피에 대한 자부심이 절정에 달했던 그 시기, 일본의 커피 관련 전문지에서 자신의 눈을 의심하는 기사를 읽었다. 오키나와에 사는 80대 노부부가 일본 최초로 온실이 아닌 맨땅에서 커피 재배에 성공했다는 내용이었다. 

이 잡지가 그의 인생을 통째로 뒤흔들었다.

“저한테 오키나와는 크게 중요하지 않았어요. 일본에서 커피가 열리는구나, 일본산 커피가 나오는구나. 막 끌어 올랐어요. 해야겠다. 이건 해야겠다고 생각했어요.” 커피 재배. 도전과 실패로 점철된 22년의 시작이었다.


#. 불광불급(不狂不及) 속 피땀 눈물

우리나라에서 커피가 안 되는 이유는 단 하나다. 겨울이 추워서. 지난 22년은 커피나무의 추위를 견디는 능력, 즉 내한성을 키우는 데 주력한 시간이었다.

오키나와로 가기 전 노부부에게 수차례 편지를 보내 1년 만에 초대받았다. 노부부에게 커피 재배와 대한 노하우를 듣고 통사정해 씨앗과 묘목을 구해왔다. 하지만, 그해 심은 씨앗은 발아도 하지 못했다. 커피가 재배 가능한 지역 ‘커피 벨트’는 평균 기온은 영상 20도. 땅을 파 테두리를 짚으로 감싼다고 해서 영하의 추위를 막을 순 없었다. 실패였다.

방식을 바꿨다. 온실에서 대량으로 재배해 온도를 조금씩 낮춰가기 시작했다. 내한성을 갖춘 나무들만 골라내는 작업이었다. 온도가 내려갈 수록 더 많은 나무들이 쓰러졌다. 다른 나무들보다 유독 추위에 강한 나무가 있긴 했으나, 온실을 떠나선 살 수 없었다. 또 실패했다. 

"많은 사람들이 손가락질해도, 저는 제가 해야할 일이 있다고 믿어요. 제가 인생에서 제일 잘한 게 커피를 선택한 일입니다. 박 씨는 100년의 커피, 100년의 커피점을 내다보고 있다.

종자를 바꾸려는 시도도 숱하게 했다. 멕시코, 하와이, 자메이카, 베트남, 인도, 인도네시아, 코스타리카, 에티오피아, 케냐 등 커피 생산국의 농장을 돌아다니며 그 지역에 제일 추운 곳 중에서도 제일 높은 곳에 있는 종자를 구하러 다녔다. 그 과정에서 죽을뻔한 고비도 여러 번 넘겼다.

책이나 신문, 잡지가 아니면 정보를 구할 수 없는 시기였다. 커피 재배 방법도 마찬가지. 알려주는 사람도 알 방법도 없었다. 그래서 하와이 코나에선 불법체류자 신분으로 가난한 이민자들과 함께 커피 농장에서 일하기도 했다. 커피에 미치지 않고선 할 수 없는 도전이었다.

“비가 오는 날은 일을 안 했어요. 그런 날에는 며칠 전 따놓은 커피를 커피 열매를 보면서 ‘가족을 두고 여기서 도대체 뭘 하는 건지’라는 생각을 했었죠. 그 시기에 눈물 젖은 커피를 마신 기억이 나요. 맛있진 않았지만, 내 평생 잊지 못할 커피였죠.”

수많은 시행착오 속 종자를 바꿔도, 재배 방법을 배워도 결국 영하의 기온에 견디는 커피나무를 만드는 데는 실패했다. 더이상 할 수 있는 게 없어 보였다.


#. 실패란 무엇인가

그럼에도, 멈추지 않았다. 그는 뒤늦게 강원대학교 원예학과 박사과정에 도전했다. 전문적인 지식과 인적 네트워크를 바탕으로 좀 더 체계적으로 커피 재배를 연구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입학을 위한 면접장에서 교수에게 “차라리 상추를 해보시는 게 어떤가?”라는 말까지 들었다. 지금 그 교수는 함께 커피 재배를 연구하고 고민하는 든든한 지원군이 됐다.

박 씨는 학교에서 배운 지식과 자신의 경험을 토대로 논문도 썼다. 커피의 내한성을 증진시키기 위한 하나의 방식으로 내서성에 주목했고 접목 등과 같은 방식으로 커피나무가 건조한 기후에서 자랄 수 있다는 내용을 담았다.
내한성을 직접적으로 증진시키는 방법은 여전히 요원하다. 하지만, 최근 논문을 보고 몇몇 뜻있는 분들이 박 씨를 찾아와 같이 연구를 이어나가자는 얘기를 하고 있다고 한다. 박 씨는 “논문은 새로운 출발을 하기 위한 쉼표 정도의 의미일 뿐”이라며 커피 재배에 대한 욕심을 버리지 않았다고 누차 강조했다. 그야말로 ‘무한도전’이다. 

'커피 열매가 언젠가 우리나라 두메산골에서 열릴 날이 올까?'

한국산 커피에 대한 수요가 생기면서 최근 제주도를 비롯해 일부 지역에서는 온실에서 커피나무를 재배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온실에서 커피를 재배하지 않는 이유가 궁금했다.

“온실에서 재배하는 커피도 나름의 의미가 있습니다. 그렇지만, 커피가 난다고 하는 것은 그런 정도의 규모를 얘기하는 것은 아니죠. 세계적인 커피 생산지를 가면, 산꼭대기에서 허허벌판에서 커피나무들이 자라는 걸 볼 수 있죠. 그래서 ‘커피가 재배된다’라는 의미는 바깥에서 재배되는 것을 말합니다.” 커피 재배에 대해선 지독하게 고집스러운 그다. 

커피박물관 정문에서 선 박 씨.

‘실패란 무엇인가’에 대해 물었다.

“만약에 내가 이걸 올해 안에 끝내야 되겠다고 생각하면 반드시 실패해요. 그렇잖아요. 내가 이번에 반드시 못하면 나는 그만둬야지. 그런 마음이면 그건 실패야. 그런데, 뭐 이번에도 안 됐네, 내년에는 좀 더 달리해볼까? 이렇게 생각하면 전 실패가 결코 실패가 아니라고 생각해요. 그래서 커피나무, 언젠가 우리나라 강원도 어느 두메산골에서라도 자랄 수 있습니다.”


essential@heraldcorp.com


헤럴드의 콘텐츠 벤처 <인스파이어ㆍINSPIRE>가 시작됩니다. 영어로 ‘영감(靈感)을 불러일으키다’라는 뜻의 인스파이어는,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가치있는 이야기를 통해, 독자들에게 영감을 전달하고자합니다.

스스로에 대한 자극과 영감을 갈망하는 이들이라면, 인스파이어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여 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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