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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을 하다 실패했는데, 회사가 상을 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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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상범기자의 인스파이어]
4월의 어느날. 경기도 이천의 한 회사. 강당에 수백명의 직원들이 모였다. 대표이사부터 사원까지 다양한 구성의 직원들 앞에는 4명의 발표자가 다소 상기된 모습을 감추지 못하고 서있었다. 이들은 이 날 회사 동료들 앞에서 경연을 했다. 마치 오디션 경연과 같이 진행된 이 날의 주제는 바로 ‘실패’. 업무를 진행하면서 아이디어는 참신했으나 아깝게 실패한 사례, 당시에는 몰랐으나 나중에 실패 이유를 알게 된 사례 등 자신들이 겪었던 ‘실패’의 이야기를 전하러 나온 것이다. 

SK 하이닉스가 지난달 12일 개최한 실패공모전, ‘지금 알고 있는 걸 그때도 알았더라면 좋았을 컬’ 사례 경진대회에서 최우수상을 차지한, 2018 실패의 아이콘(?) 박지용 미래기술연구원 책임 

내용은 씁쓸했지만 분위기는 달콤했다. 참가자들의 발표가 끝날 때마다 동료들은 박수는 물론, 환한 웃음으로 동료들의 실패에 응원을 보냈다. 동료들은 현장 투표를 통해 가장 의미있는 실패를 겪은 ‘실패의 아이콘’ 1인을 선정했고, 시상에 나선 임원은 뜨겁게 포옹을 하며 축하를 건넸다.

#실패해도 괜찮다는 회사, 페일콘을 열다

위 내용은 SK 하이닉스가 지난달 12일 개최한 실패공모전, ‘지금 알고 있는 걸 그때도 알았더라면 좋았을 컬’ 사례 경진대회를재구성한 것이다. 컬은 문화를 의미하는 컬쳐(Culture)의 첫 글자를 땄다.

SK 하이닉스 미래기술연구원의 연구개발 직군을 대상으로 올해 처음 개최된 이 공모전은 말 그대로 실패에 대한 사내 구성원들의 경험을 공개적으로 접수받고, 평가를 진행했다. 최우수상(이라쓰고 가장 의미있는 실패를 한 조직원)에게는 상금 300만원, 나머지 우수상 한 명과 장려상 수상자 두 명에게도 각각 상금이 수여됐다.

일반적인 회사라면 실패는 숨기거나 질책의 대상이 된다. 그러나 이 회사는 거꾸로 실패의 경험을 드러내어 공유하고, 격려하고, 상금까지 전달했다. 심지어 국내 굴지의 대기업이 말이다. 
2018 실패의 아이콘으로 선정된 박지용 책임이 참여한 직장 동료들에게 감사의 인사를 전하고 있다. 300만원의 상금도 함께 받은 그는, 상금은 아마도 고생한 팀원들과 함께 회식하는데 다 쓰지 않겠냐고 전했다

이는 미국 실리콘밸리의 페일콘(Failure Conference, 실패회의)을 국내에 적용한 거의 최초의 사례다. 2009년 실리콘밸리에서 시작된 페일콘은 전 세계 스타트업이 각자의 실패 경험을 공유하는 자리다. 국내에서는 일부 스타트업 협의체 정도에서 시도됐지만, 대기업에서 본격적, 그리고 공개적으로 페일콘을 개최한 것은 SK 하이닉스가 유일하다.


#말해줘서 고마워
처음 시도하다보니 우여곡절도 많았다. 접수 초기에는 10여건이 채 안되는 사례들이 접수됐다. “내가 실패한 경험을 정말 드러내도 괜찮을까? 혹시나 불이익이 있지는 않을까?”라는 주저함이 회사 내에 팽배했다. 이런 분위기를 감지한 경영진은 발빠르게 대처했다. 미래기술연구원장의 담당임원이 직접 연구원 내 팀들을 돌아다니면서 “정말 괜찮다. 과거의 일을 들춰내고 질책하려는 것이 아니라, 더 나은 조직을 위해 서로의 실패를 공유하고 배우자는 취지다”라는 말을 전했다. 경영진의 진심이 조직에 전해지고 나서 공모 접수는 급격하게 증가했다. 결국 한 달이란 기간동안 250여건의 실패 이야기가 접수됐다. 담당임원은 최종 결선에서 1등을 한 직원을 끌어안으며 “실패의 경험을 이야기하기가 쉽지 않았을텐데, 말해줘서 정말 고맙다”는 말을 전했다.

#도전과 실패 속에서 혁신은 나온다

그렇다면 이 회사는 왜 이런 역발상 이벤트를 진행한 것일까? SK 하이닉스 측은 “혁신을 위한 도전을 조직원들이 마음놓고 할 수 있는 환경을 구성하기 위해서”라고 설명했다. 
이번 공모전을 기획, 실행한 정하창 SK하이닉스 미래기술연구원 책임(좌)과 박지용 책임(우).

반도체 회사는 기술의 혁신이 생존을 좌우한다. 이 혁신은 도전이 없이는 나올 수 없으며, 다시 그 도전은 무수한 실패를 수반할 수 밖에 없다. 이 과정에서 조직원들이 실패를 두려워한다면 어떨까? 회사가 실패를 질책하는 문화를 가진다면 조직원들은 도전이 아닌, 현실 안주를 택할 가능성이 높아진다. 결국 혁신은 먼 이야기가 되는 것이다. 그래서 조직원들이 ‘마음놓고 도전할 수 있는 문화’를 만들어, 궁극적으로 조직이 혁신할 수 있는 기회를 넓힌다는 것이 이 회사가 목표하는 지점이라고 한다. 공모전의 이름에 문화를 의미하는 ‘컬’이란 단어가 들어간 것도 같은 이유다.

#실패에서 배우다

도전하는 문화, 태도를 만드는 것 만큼이나 중요한 포인트도 있다. 바로 실패를 분석하고 반복하지 않는 것이다. SK 하이닉스 측은 이번 공모를 통해 드러난 사례들을 분석해서 시스템을 만들 예정이라고 밝혔다. 실패가 반복되지 않도록 관리하는 것은 물론이고, 실패를 분석해 다른 분야에서 적용할만한 지점을 찾고, 새롭게 발전하기 위해서다. 이 지점이 중요한 이유는 “아 실패했다. 끝났네”와 같은 단절이 아니라, 실패를 바탕으로 계속 수정하고 질문해서 배우는 레슨런(LESSON LEARN)을 시스템화 시키는데 있다
실패에서 배우고, 실패한 내용을 시스템화해서 반복되지 않도록 하는 것, 그것이 조직이 실패를 다루는 중요한 포인트 중 하나다

예컨대 D램에서 실패했던 기술이 낸드 플래시에서 적용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를 D램의 사례에서 닫아버리면, 실패에서 배우고 발전시킬 수 없다는 것이다. 이러한 시스템을 바탕으로 경영진은 관리를, 조직원들은 미리 공유된 사례들을 통해 시행착오를 줄여나가는 것이 또 하나의 목표라고 회사는 말한다.

#문화는 하루아침에 이뤄지지 않는다

이런 문화와 시스템은 결코 하루아침에 이뤄지지 않는다. 중요한 것은 소통을 바탕으로 한 진정성이 조직 전반에 공유가 되는 것이다. 그래서 하이닉스는 “조직을 믿고 도전해라. 정말이다. 도전의 과정에서 실패는 중요한 자산이다”라는 가치를 꾸준히 전달할 것이라고 말한다. 말로만 해서는 와닿지 않는 것들을, 이러한 경진대회를 통해 구체화하고 정례화해 조직원들에게 회사의 진정성을 전할 계획이다. 하이닉스 관계자는 올해는 연구개발직을 대상으로 진행했지만, 차후에는 경영직 등 다양한 직군을 대상으로 실패의 경험을 공유하고, 격려하는 자리를 만들 예정이라고 밝혔다. 
진지한 모습으로 회의를 진행하고 있는 박지용 책임. 사실 그는 엘리트 엔지니어이자, 신뢰받는 직원이다. 그는 실패에서 배웠던, 느꼈던 경험을 회사의 조직원들과 공유할 수 있는 경험이 색달랐고, 그래서 앞으로 더 발전하는 계기가 될 것 같다고 전했다

모든 조직은 혁신을 고민한다. 그러나 혁신은 갑자기 뚝딱 나오는 것이 아니다. 무수한 도전과 실패의 반복 속에서 그 모습을 겨우 허락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실패해도 실수를 해도 질책이 아닌, 괜찮다고 격려하고 다시 도전할 수 있게 만드는 문화, 또 이를 넘어 같은 실패가 반복되지 않는 시스템이 중요한 것이다.

그리고 이 가치는 조직의 리더와 직원 모두가 공유하고 공감해야 한다. 이런 문화가 갖춰진다면 혁신은 생각보다 가까운 곳에서 만날 수 있지 않을까? 실패해도 괜찮다고 말해주는 회사들이 더 많아지길 바란다.



우리는 언제나 성공만을 강조하고 살고 있습니다. 그러나 성공은 무수한 도전과 실패의 반복 속에서 가능합니다. 그래서 실패해도 괜찮다, 다시 도전해보자라고 말을 건네는 문화가 중요합니다. 헤럴드의 뉴미디어 ‘인스파이어’는 실패에 자신을 내어주지 않고, 다시 도전하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연속 기획으로 전합니다. tiger@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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