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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얗게 시린 겨울파도, 그들에겐 삶의 이유가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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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정아 기자의 인스파이어]



서퍼들의 천국이라 불리는 강원도 양양의 죽도해변. 하던 일을 그만두고 양양에 자리 잡은 두 서퍼는 카메라를 둘러메고 겨울 바다에 뛰어들었다. 영하의 날씨에도 바다에 몸을 맡기고 겨울 최고의 파도를 기다리는 서퍼를 렌즈에 담기 위해서다.

“촬영하다 보면 통제할 수 없는 상황들이 엄청나게 많아요. 그런데 기다리고 기다리다 보면 어느 순간 모든 퍼즐이 맞춰진 것 같은 순간이 있거든요. 그런 날 서퍼가 멋있는 라이딩을 하면서 제 카메라 앞으로 왔을 때, 그 기분은 말로 표현할 수가 없어요.”

우리나라의 ‘겨울 서핑’을 주제로 한 다큐멘터리 영화를 제작하고 있는 두 서퍼, 김동기 프로듀서와 김성은 감독을 지난 2월 양양에서 만났다. 그들은 추우면 추울수록 더욱 빛나는 계절인 겨울 안에서 겉치장은 던져버리고 꾸밈없이 살아가기로 했다. 시린 찬바람도, 발길이 끊긴 고요함도, 그들에겐 행복이 됐다.

겨울 서핑을 즐기는 서퍼를 촬영하는 김동기 프로듀서의 모습 [사진=38프로덕션 제공]

▶ 너무 추워 보여요. 왜 한겨울에 서핑을 하러 가나요.
▷ 우리나라는 12월을 기준으로 바람의 방향이 바뀌어요. 해변에서 바다 쪽을 향해 바람이 불기 시작하는데, 이 바람이 서퍼들이 좋아하는 ‘질 좋은 바람’이에요. 한파가 왔을 때 파도가 엄청 크고 좋죠. 보기에는 뼛속까지 시린데, 겨울철 바닷물 온도는 영상 10도 내외로 물 밖보다 오히려 따뜻해요. 서핑복을 착용하고 서핑을 하니까 생각만큼 춥지 않고요. 오히려 물 밖에서 서핑하는 서퍼를 촬영하는 게 더 추워요.

▶ 겨울 서핑을 즐기는 데서 그치지 않고, 왜 카메라를 들고 겨울 서퍼를 촬영하기 시작했나요.
▷ 해외에서 서퍼들을 만나면 ‘한국에서 서핑이 가능해?’라고 물어요. 잘 알려지지 않은 우리나라의 겨울 서핑에 대해서 제대로 알리고 싶었어요. 다만 아무리 내가 하고 싶다고 해도, 내가 이걸 잘 촬영하고 편집해서 영상을 만들 수 있을까는 하는 의문은 있었죠. 그런데 국내 겨울 서핑을 주제로 1편 영상을 만들고 나서 ‘나도 할 수 있겠다’고 생각했어요.

3년 전 두 서퍼가 만든 6분30초 분량의 ‘겨울 서핑(The Winter Surf)’ 1편 영상은 비메오(동영상 공유 웹사이트)에서 조회수 10만 회를 거뜬히 넘겼다. 특히 해외 네티즌들은 ‘한국의 어느 해변인지 알려달라’, ‘영상 퀄리티가 압도적이다’라며 해당 영상에 뜨거운 반응을 보였다. 그들은 호놀룰루 필름 페스티벌, 산타크루즈 필름 페스티벌, 스크린웨이브 필름 페스티벌에서 입상하는 쾌거를 올렸고, 그날 이후 통번역 관련 업무를 했던 김동기 씨와 육군 대위였던 김성은 씨는 하던 일을 관뒀다. 


▶ 서핑이 두 분의 인생을 크게 바꿔 놓았어요.
▷ 네, 한번은 어떤 서퍼가 이런 이야기를 했어요. 확신을 가지고 탄 파도만 스스로 100% 만족감을 느끼면서 탈 수 있대요. 이 파도에 대해서 조금이라도 망설이거나 의심을 하면, 쉽게 넘어지고 파도를 잡지 못하는 상황이 발생한다고 하더라고요. 그 이야기를 딱 들었을 때, 그런 생각을 했어요. 뭘 하든지 간에 먹고 살 수 있으니까, 하고 싶은 거 하자. 대신에 확신을 가지고.

이듬해에 두 서퍼는 서핑 영상을 전문적으로 촬영하는 아웃도어 영상 제작 프로덕션인 ‘38프로덕션’을 설립했다. 그리고 지난해 11월부터 겨울 서핑을 주제로 하는 장편 다큐멘터리 영화를 제작하기 시작했다. 크라우드 펀딩 플랫폼 ‘텀블벅’을 통해 1700만 원의 다큐멘터리 영화 제작 비용을 펀딩을 받았다. ‘겨울 서핑’ 2편이 될 이번 작품은 올해 6월에 공개될 예정이다.

▶ 인생을 걸 만큼, 서핑에 푹 빠진 이유가 뭔가요.
▷ 서핑을 탈 때 느끼는 짜릿한 기분은 서핑을 타본 사람만 느낄 수 있는 것 같아요. 그만큼 힘이 있는 스포츠에요. ‘구름 위 걷는 것 같다’, ‘하늘 나는 기분이다’, 아무리 말로 설명해도 서핑의 매력이 표현이 안 돼요. 그건 느껴봐야 해요. 한번 타보세요. 그러면 그 기분을 바로 알 수 있기 때문에, 타보세요. 그러면 저희가 왜 서핑하려고 이 일을 시작했는지 알 수 있어요.

김성은 감독(좌)과 김동기 프로듀서(우)

밤새 큰 눈이 내리고 한파가 닥치면 그들의 하루가 바빠진다. 김동기 프로듀서와 김성은 감독은 눈 소식에 신이 난 겨울 서퍼들과 함께 눈밭을 밟는다. 겨울바람을 제대로 맞으며 서핑을 즐기는 서퍼도, 서퍼를 촬영하는 그들도, 너나 할 것 없이 웃음꽃이 활짝 핀다. 매서운 추위에 두 촬영가의 손은 하얗게 갈라졌지만 이들은 허허 웃으며 연신 “괜찮다”라고 했다.

▶ 서핑 촬영을 하면서 가장 힘든 건 어떤 건가요.
▷ 인내심이에요. 파도에 맡겨야 하는데, 파도는 수시로 변하거든요. 보드 위에 걸터앉아 파도가 오는 것을 하염없이 기다려야 하고, 파도가 온다고 해도 서퍼가 파도를 매번 타는 게 아니니까. 그 사이 조류가 심해지면 몸을 마음대로 가눌 수가 없어서 수중 촬영이 굉장히 어려워져요. 그런데도 절대 카메라에서 손을 뗄 수 없어요. 촬영 타이밍을 놓치면 안되니까 손발이 너무 시리고 아파도 참고 기다려요. 한번 놓치면 언제 타이밍이 다시 올지 알 수 없거든요.

▶ 아무리 서핑을 좋아해도, 취미로 서핑을 즐기는 것과 업으로 서핑을 다루는 건 다르지 않나요?
▷ 날씨가 너무 추워서, 촬영이 정말 힘들었던 건 맞아요. 그리고 파도가 저희 뜻대로 되는 게 아니잖아요. 특히 겨울 파도는 엄청 크고 거칠고. 그런데 그런 걸 단순히 이겨내는 게 아니고 서핑하는 서퍼들 모습 보면 즐겨요, 그런 조건 속에서도. 그런 게 열정이 아니면 뭐겠나, 촬영을 하면서 이런 생각이 들었어요. 그래서 그냥 좋고, 하고 싶은 일을 하고 있는 게 너무 행복해요.

▶ 하고 싶은 일을 한다는 것, 말처럼 쉽지 않은 선택인데요.
▷ 네, 현실의 벽에 많이 부딪혀서, 꿈만 꾸다가 끝나는 경우가 많죠. 그런데 꿈이 있다고 ‘당장 나는 회사 그만두고 내일부터 해야지’ 하는 것보다 꿈에 한 발 더 다가가기 위해 계속 배우고, 관련 경험을 쌓고, 그러다 보면 어느 순간에 기회가 오는 것 같아요. 대신, 그때까지 자기만의 무기를 잘 만들어 놓는 게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아무것도 없이 맨땅에 해딩하면 힘들죠. 아무리 열정이 있고 해도 무기가 없으면. 


▶ 두 분에겐 서핑이 인생의 무기가 되었어요.
▷ 누군가 서핑 영상을 촬영하고 싶다고 하면, 먼저 “서핑 하세요?”라고 물어봐요. 딱 보여요. 서핑을 하는 사람이 찍은 영상이랑 서핑을 하지 않는 사람이 찍은 영상이랑. 서핑을 잘 모르면 어떤 각도에서 어떤 모습을 담아야 멋있는지, 구도를 잘 모르니까, 그 포인트를 잡기 어려워요. 서핑에 미쳐서 살다 보니까, 여기까지 온 것 같아요.

김동기 프로듀서와 김성은 감독은 이날 오전 8시부터 시작된 매서운 추위 속 고된 촬영을 마치고도 늦은 오후 다시 겨울 바다로 향했다. 

“인터뷰 끝났죠? 저희 그럼 서핑하러 갈게요.”






dsun@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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