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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한 농사꾼을 꿈꾸는 16세 중학생 농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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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상범기자의 인스파이어]16세. 이제 중학교 3학년이 되는 소년이 있다. 또래는 한창 게임이나 이성교제 관심이 있을 나이지만, 소년은 도통 이런 것엔 관심이 없다. 소년의 관심은 온통 농사다. 벼는 잘 크는지, 키우는 동물은 아프진 않는지. 말투도 느릿느릿, 구수한 사투리를 쓰는 영락없는 농사꾼이다. 실제 소년은 벼와 고추 농사는 물론 수십마리의 동물을 키운다. 이런 소년의 이야기는 최근 SNS에서 ‘인생 2회차 중학생’이란 이름으로 화제가 되기도 했다. 또래와는 달라도 너무 달랐기 때문이다. 

소년 농부 한태웅 군과 그의 애마 경운기. 그는 수준급의 경운기 운전실력을 보유했다(사진=박건우 PD)

특히 영상 속 소년이 말한 농사에 대한 정의가 대중들의 마음을 움직였다. 소년은 “대농(大農)이 되고 싶다”고 했지만, 대농의 의미는 단순히 농사를 많이 짓는 것이 아니라고 했다. 논 한 마지기를 지어도 내가 행복하게 일을 할 수 있는 것. 그것이 대농이고 행복한 농사꾼이라는 것이다. 행복한 농사꾼을 꿈꾸는 중학생 농부, 한태웅 군을 최근 경기도 안성에 자리한 그의 농장, ‘태웅농장’에서 만났다.

▶순식간에 SNS 스타가 됐다. 인기를 실감하는지?
▷페이스북에서 영상이 화제가 되면서 SNS를 통해서도 응원을 보내주시는분들이 정말 많아요. 또 여러 미디어, 심지어 광고회사들에서도 연락이 오더라구요. 얼마 전에는 화장품 업체에서 광고모델을 해보지 않겠냐는 제안도 왔어요(웃음). 보내주시는 관심에는 정말 감사하지만, 제 본업인 농사일에 방해가 되지 않는 것이 최우선이라고 생각해요. 저는 농사꾼이지, 광고모델이나 연예인이 아니거든요. 
사진=박건우 PD

▶벼농사, 동물도 키우고, 중학생이 하기에는 상당히 많은 농사를 짓고 있는 것 같은데. 규모가 얼마나 되나?
▷그렇게 많지는 않아요. 논과 밭 합쳐서 2500여평 정도를 짓고 있는데요. 벼, 고추, 들깨...그리고 동물들은 소가 12마리, 염소가 40마리 정도를 키워요. 시골에서 이정도 농사짓는다고 어디가서 말하면, 대농들은 콧방귀 뀌시죠 뭐.

▶이제 3학년이 되는 중학생이다. 대체 어떻게 농사에 관심을 가지게 된건가?
▷맞벌이를 하시는 부모님 사정으로, 할머니, 할아버지 손에 어린 시절을 자랐어요. 시골에서 살다보니까 친구들도 다 시내에 있고, 할 일이 농사밖에 없었어요. 특히 할아버지의 영향을 많이 받았죠. 매일매일 농사를 하시러 나가시니까, 자연스럽게 함께 논밭으로 나가고, 논이 놀이터가 됐고, 할아버지의 경운기가 장난감이 됐어요. 할아버지 몰래 트랙터를 몰다가 혼나기도 하고...그렇게 농사에 관심을 가지게 됐고, 지금은 축산업에도 도전을 하고 있어요. 복합영농을 한다고 보면 됩니다. 축산업에 관심이 가게 된 직접적인 계기는 초등학교 2학년 때였어요. 그 때 할아버지가 생일선물로 닭을 10마리 사주셨는데. 키우다보니 300마리가 됐어요. 닭을 판 돈으로 염소를 사고, 또 염소 팔아서 이번엔 소까지 한마리 사게 됐어요. 
어린 시절의 한태웅 군의 모습. 이때부터 풀과 나무와 노는 것이 행복했나보다(사진=한태웅 제공)

▶할아버지에 대한 존경과 애정이 물씬 느껴진다. 할아버지는 태웅군에게 어떤 존재인가?
▷할아버지는 뭐 친구 같으면서 스승님같은 존재죠. 농사에 대한 기술적인 부분도 배웠지만 인생을 살아가면서 명심해야 할 이야기들도 많이 배웠어요. 특히 할아버지가 해주신 말씀 중에 ‘진인사대천명’이란 말이 제일 기억에 남아요. 농사가 물론 날씨 같은 하늘의 일에 영향을 받는 것은 사실인데요. 

하지만 할아버지는 사람이 할 일을 다해놓는 것이 우선이라고 하셨어요. '모만 심어놓고 이제 나머지는 하늘에 맡기자' 이런게 아니란거죠. 그 사이에 물도 줘야되고 비료도 줘야되고 풀도 뽑아줘야되고요. 그런데 이렇게 사람이 할 일을 하지 않으면 벼를 타작하는 것이 아니라 풀을 타작하게 되더라구요. 그러니까 '사람이 할 일을 다해놓고 겸손한 마음으로 하늘의 일을 기다려야 한다' 이 말이 가장 기억에 남고, 농사일을 하면서 마음에 새기고 있어요. 
한태웅 군의 스승이자 할아버지 한영운 옹의 회갑연. 사진 오른쪽 아래가 태웅 군이다(사진=한태웅 제공)

▶할아버지란 좋은 스승님이 있어도, 농사는 쉽지 않았을 듯 하다. 특히 초보 농사꾼으로서 시행착오도 많았을텐데?

▷처음 염소를 키울 때였는데요. 뭔가 염소들이 아픈 것 같았는데 어떻게 해야할 지 몰랐어요. 그러다가 몇 마리를 하늘에 보냈어요. 몰랐으니 어쩔 수 없었다고 하지만 정말 가슴이 아팠죠. 마치 나 때문에 염소들이 그렇게 된 것 같아서. 자책도 하고 울기도 했죠.

그 때 주변의 어른들이 그러더라구요. 안됐지만 (염소들을)하늘로 보내야 제가 더 성장한다고. 그 때 이후로 가축들의 생태, 전염병에 대해 열심히 공부했어요. 학교 공부는 재미없는데, 농사일에 대한 공부는 정말 재밌어요. 지금은 어지간한 병은 스스로 치료하고 있어요. 그리고 할아버지 뿐 아니라 주변의 선배 농사꾼들에게 정말 많은 것을 배워요. 
인터넷에 무작정 염소를 키우는 분들이 모인 카페를 검색해서, 직접 찾아가고. 노하우 좀 알려달라고 들이대고요. 처음에는 눈초리를 좀 받았어요. "애가 키우니까, 언제 그만둘지 모른다" 그렇게 눈초리를 많이 받았는데 인제 염소도 그냥 주시는 분도 계시고, 그렇게 많은 도움을 주시고 있어요. 도움을 주는 좋은 스승님들이 주변에 많다는 것이 정말 행복해요. 
태웅 군의 인생, 아니 농생(農生) 계획을 적은 계획표. (사진=박건우 PD)

▶농사가 정말 즐거운 것 같다. 농사가 왜 좋나?

▷할아버지가 해주신 말씀 중에 ‘힘들게 땀 흘려서 번 돈이 진짜 내 돈이다’라는 말이 있어요. 물론 농사 힘들죠. 그런데 땅은 정직해서 거짓말을 안하더라구요. 내가 흘린 땀만큼 정직하게 보상받을 수 있는 일. 그게 농사인 것 같아요. 또 농사는 정년퇴직도 없잖아요? 내 몸만 건강하면 100살까지도 지을 수 있어요. 
무엇보다도 농사는 식생활의 근본이 된다고 생각해요. 가끔 농사를 하찮고 힘든일이라고 보시는 분들이 있는데. 농사를 짓는 사람들이 없으면 우리가 먹는 밥, 김치 이런 것들을 어디서 먹겠어요? 농업인들이 포기하게되면 건강하고 바른 먹거리를 찾을 수가 없다고 생각해요. 그래서 농사를 짓는 것에 대해 자부심을 가지려고 노력해요.
사진=박건우 PD

대화를 나누면서 기자는 내 앞에 있는 사람이 정말 16세(그것도 아직 만으로 14세다) 중학생이 맞는가라는 의문이 계속 들었다.
영상 속 보였던 느릿느릿한 말투나 농사에 대한 자기만의 정의, 이런 것이 여느 또래와는 달라도 너무 달랐기 때문이다.

▶잠깐 다른 질문이지만, 말투가 왜 이렇게 어르신(?) 말투인가?

▷뭐 말투에 대해서 이런 이야기를 하세요. 여기(안성)가 경기돈데 왜 충청도 사투리가 나오냐, 그런말씀을 하시거든요 그런데 여기는 경기도지만은, 사방팔방이 충청도에요. 땅을 넘으면은. 진천 뭐 이런데가 가깝거든요. 충청북도 남도가. 그리고 또 외가집이 충청도 아산이라, 충청도 말도 많이 배우고. 또뭐 70년대까지는 경기도 사투리도 있었어요. 그런거를 어른들하고 친하게 지내다보니까 그런 것 같아요. 

그리고 어른 말투같다는 거, 좋을 때도 있어요. 염소를 사러가면 학생이라고 무시하는 분들이 계시거든요. 그런데 목소리가 좀 중년같은 목소리다보니까 전화를 하면 기본 30-40대로 아세요. 그래서 일단 전화로 구매의사를 밝히고, 구입은 어머니랑 같이 가서 금방 사오고 그래요(웃음)
사진=박건우 PD

▶동네에서 어른들하고 주로 어울리나
▷제가 사는 곳이 좀 시내랑 멀다보니, 대부분 어르신들이 많아요. 동네에서 아마 제나이 다음의 청년이 50대 분이실거에요. 특히 농번기에는 거의 매일 보는 사이가 되죠. 품앗이도 해주고 우리 필요한 우리 일손도 도와주고, 또 농기계가 요새 비싸다 보니까 한 집에 있는 기계로 서로 도와주고 그래요.

▶또래 친구들과는 어떤 이야기를 하나? 주위의 가치관과 좀 다르다는 것에 대해 스트레스를 받지 않나?

▷뭐 학교에서는 친구들이랑 잘 어울릴려고 해요. 친한 친구들도 꽤 있고. 그런데 이런 저런 이야기하다가 게임 얘기가 나오면은 요즘말로 ‘멘붕’이라고 하잖아요. 전 게임을 모르고 관심도 없으니까. 말할 거리가 없죠. 그런데 이런게 스트레스는 절대 아니에요. 제가 스트레스를 받는 건 대부분 농사에 관한 거라고 보시면 돼요. 시골에 살다보니까 농사일에 필요한 걸 당장 살려고 해도 답답한 부분이 있죠. 또 동물이 아프면은 빨리 치료를 해줘야되는데 약이 없잖아요. 사려고 시내를 갖다와보면 벌써 동물이 하늘로 가있어요. 그럴때 스트레스를 많이 받죠.
농사만 생각하면 자다가도 웃음이 나온다는 한태웅군(사진=박건우PD)

▶대농에 대해 태웅 군이 생각하는 정의가 인상적이었다. 대농의 기준이 뭔가? 그리고 왜 대농이 되고 싶은가?

▷물론 대농의 기준은, 농사가 많으면 좋긴 좋죠. 시골이 고령화 되다보니까 축산업 농업을 하시는 분들이 거의 평균연령이 60대가 넘어요. 그래서 한평이라도 농사를 더 짓고 한마리라도 더 키워서 농사로도 미래를 꿈꾸고 안정된 수익을 얻을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어요. 하지만 돈이나 농사의 규모, 그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과연 행복하게 농사를 짓느냐인 것 같아요. 논 한마지기를 지어도 짓는 사람이 행복하면 그것이 대농이라고 봐요. 감당할 수 있는 범위 안에서 내가 즐겁게 농사를 짓는 것. 그래야 내가 키우는 동물들도, 벼도 행복하지 않겠어요? 농사를 지으면서 행복한 삶을 사는 사람들이 많은 곳, 그 곳이 농촌이 됐으면 좋겠어요. 
그래서 더욱 겸손하고 행복하게 일을 해야 할 것 같아요. 지금 저는 어리지만, 응원해주시는 분들이 많고 이런 분들에게 농사를 정말 진지하고 행복하게 짓는구나라는 모습을 꾸준히 보여드리고 싶어요.

그리고 이런 마음을 가진 젊은 농사꾼들과 함께 무언가를 만들어보고 싶어요. 농사라는 것이 혼자서 할 수 없잖아요. 내가 배우고 알아간 정보, 노하우들은 물론, 힘들고 어려운 일들도 함께 나누는 그런 삶을 꿈꿔요. 나중에 열심히 하다보면 제가 농업의 아이콘이 될 수도 있지 않을까요? 농업으로도 행복하고 재미있게 삶을 살 수 있다는 걸 꼭 보여주고 싶어요. 많은 분들이 응원을 해주셨으면 좋겠어요. 
새로 구입한 트랙터 앞에서 포즈를 취한 한태웅 군(사진=한태웅 제공)

인터뷰가 끝나고 태웅 군은 한 통의 전화를 받았다. 그리고 인터뷰에서는 보여준 적이 없던 환한 웃음을 보였다. 무슨 전화냐고 물으니 새 트랙터가 온다는 전화였다고 했다. 태웅 군이 지금까지 사용한 트랙터는 할아버지가 쓰시던 낡고 작은 것이었다.

태웅 군은 이제 정말 마음놓고 신나게 농사일을 할 수 있을 것 같다며 활짝 웃었다. 그러면서도 자신을 믿고 응원을 보내준 아버지와 어머니, 그리고 할아버지와 할머니에게 정말 고맙고 감사하다는 말을 꼭 기사에 넣어달라고 했다. 언젠가 농업의 아이콘으로 성장할 한태웅 군을 다시 한번 인터뷰할 기회가 있길 바란다. 응원한다.

한태웅 군의 농사에 대한 철학과 이야기가 궁금하다면, 아래의 영상을 보자
tiger@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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