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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다리를 잃은 소년은 '장애 없는 국가대표'가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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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정아 기자의 인스파이어] 스노보드 국가대표 김윤호


그는 국가대표다. 살을 에는 칼바람 속에서 5m 높이에 이르는 점프대 위에 선. 그러나 그는 의족에 의지해야만, 거친 슬로프를 내려올 수 있다.

“지금도 스노보드 점프대에 들어가면, 내가 뛸 수 있을까? 의족으로 버틸 수가 있을까? 긴장을 해요. 무서운 마음을 없앨 수는 없는 것 같아요.”

2018 평창 동계패럴림픽 장애인 스노보드 국가대표로 출전하는 선수는 모두 4명. 김윤호(35)는 오는 12일과 16일 스노보드 크로스ㆍ뱅크드슬라롬에서 ‘초대 금메달리스트’에 도전한다. 장애인 스노보드는 이번에 처음으로 패럴림픽 정식 종목이 됐다.


# 고통은 계속되지 않는다

2015년 8월, 김윤호는 대한장애인스키협회에서 스노보드 국가대표 선수 모집 공고를 보고 한 걸음에 달려가 테스트를 받았고 합격 통보를 받았다. 당시 그는 인천시설공단 직원이었다.

“공고를 보자마자 ‘아, 나를 위한 거다’ 생각했어요. 스노보드를 너무 좋아했으니까 고민의 여지가 없었어요. 퇴근을 하고 난 뒤에는 훈련에 돌입했죠.”

열정과 패기 하나로 시작하긴 했지만, 변변한 장비도 없이 뛰어든 길은 멀고도 험난했다. 보행용 의족은 부러지기 일쑤였다. 그의 다리에는 검붉은 흉터가 많았다.

“의족이 버티지 못해서 힘들 때가 많아요. 의족과 살이 맞닿은 부분이 찢어져서 다섯 바늘을 꿰매기도 했고, 봉합 이후에도 그 부위가 너무 아파서 훈련을 멈춰야 할 때도 있었어요.”

의족을 신고 있는 김윤호 선수. 그는 "의족의 성능이 경기의 결과를 좌우한다"고 설명했다.

지난해부터 대기업의 맞춤형 의족 지원이 이어지면서 훈련 여건은 나아졌다.

“제 의족은 특별해요. 의족 다리에 힘을 주는 만큼 발목 부분의 각도를 조절할 수 있거든요. 각도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의족 다리의 근육을 키워야만 하고요.”

의족의 성능이 개선됐지만, 의족을 끼고 몇 시간씩 보드를 타다 보면 피가 나고 살이 뭉개지는 일은 다반사. 하지만 그는 메달을 목에 걸겠다는 각오로 천을 덧대고 상처를 소독했다. 넘어지고 까지며 의족과, 보드와, 한몸이 되어갔다.

본격적인 훈련에 돌입하면서부터는 매일 오전 6시에 기상하고 의족 장비를 직접 손질했다. 평창동계패럴림픽 스노보드가 열리는 정선알파인경기장 슬로프에 가장 먼저 올랐고 하루 20차례 이상 슬로프를 내려오는 강행군을 펼쳤다. 고통은 그를 삼키지 못했다.


# 장애 없는 국가대표

그는 열여덟 살이 되던 해, 왼쪽 무릎 아래 15㎝를 잃었다. 친구의 사망 소식을 듣고 오토바이를 타고 병원을 가다 택시와 충돌했다. 발가락 부위를 심하게 다쳤다. 응급수술 의료진을 찾아 병원을 헤매는 바람에 절단 부위가 종아리까지 올라왔다. 현실을 받아들일 수 없었다. 그는 밤잠을 설쳤고 1년여를 칩거했다.

“하루는 거울에 비친 제 모습을 우연히 보게 됐어요. 정말 초췌한 몰골이더라고요.” 

이대로는 안 되겠다 싶어 산을 타기 시작했다. 그 후로는 자전거, 스노보드를 타면서 마음을 다독였다.

“운동을 하면서 장애인 아이스하키(아이스슬레지하키) 선수들을 만나게 됐어요. 그런데 그날 제가 가장 많이 들은 말은 뭐였는 줄 아세요? ‘너 정도면 뛸 수도 있겠다’는 거였어요. 폴짝 위로 뛰었는데 다른 선수분이 ‘그게 된다고? 너는 장애도 아니야’라고 우스갯소리로 말씀하시는 거예요. 그때는 피식 웃었는데, 집으로 오는 내내 제 자신이 부끄러워졌어요.” 

그는 "저를 장애인으로 보는 다른 사람들의 시선을 견디기 힘들었다"고 했다. [디자인=허연주 디자이너]

매사에 비관적이었던 그의 성격이 180도 바뀌는 순간이었다. 그리고 2015년 김윤호는 전국장애인체육대회에서 원반, 창, 포환던지기에서 3관왕에 올랐다.

“그런데 육상에선 세계 정상급과 실력 차가 컸어요. 평소 스노보드를 즐겨타다 보니, 스노보드 쪽으로 눈을 돌리게 됐어요.”

그때까지 그는 단 한 번도 스노보드 점프대에 서본 적이 없었다. 그러나 그는 2016년 국제패럴림픽위원회(IPC) 코퍼스 스노보드대회에서 11위에 올랐고, 이후 줄곧 10위권을 유지했다.

“내가 가고 싶은 방향으로 가고, 내가 점프하고 싶으면 점프하고, 설산 위에서는 내 의지대로 컨트롤할 수 있으니까. 바람을 자유롭게 가르는 느낌이라고 해야 할까요? 그래서 스노보드를 관두지 못하겠더라고요.” 

한 쪽 다리를 잃은 스무 살 소년은 '장애 없는 국가대표'가 됐다


# 최선을 다하는 시간은 아름답다

그가 스노보드를 타고 슬로프를 내려올 때 체감하는 속도는 시속 100㎞가 넘는다고 한다. 속도에 대한 공포를 이겨내기 위해 그는 코스를 직활강으로 내려오는 훈련을 반복했다. 부족한 부분을 알아서 훈련으로 메꾸는 성실함이 그의 무기다.

“지금도 항상 도전을 한다고 생각하고 있어요. 스스로 해내고 싶다는 생각 때문에 열심히 타는 거죠. 열심히.”

김윤호 선수는 “설산 위에서는 자유롭다”고 했다.

인천시설공단은 연차를 내고 개인 연습을 하는 그가 공가 처리를 할 수 있도록 지원했다. 두 아이와 아내는 그의 든든한 버팀목이었다.

“장애가 있는 사람과 결혼을 결심해준 아내에게 고마워요. 아내와 두 아이에게 항상 가족 곁에 있다고 전하고 싶어요. 자랑스러운 남편, 아빠의 모습을 보여주기 위해 패럴림픽에 참가한다고 말해주고 싶어요.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그는 “목표는 금메달”이라고 덧붙였다.





dsun@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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