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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시를 쓰는 할매입니다 ① 유한순 할머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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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정아 기자의 인스파이어]

이 기사는 전북 완주 삼례읍에 사는 유한순 할머니와 전소순 할머니와의 인터뷰를 토대로 1인칭 시점에서 재구성되었습니다. 두 할머님은 삼례읍 한글문해학교인 진달래 학교를 다니며 시를 쓰는 시인입니다.

나는 시를 쓰는 할매입니다 ② 전소순 할머니 기사보기

유한순 할머니는 이짝 귀로 들어와서 저짝 귀로 흘러가는 것이 한글 공부라고 했다. 그러나 그는 백발이 성성한 시인이다.

# 시작하면 좋은 걸, 시작하면 되는 걸, 시작하길 잘했어 ① 유한순 할머니

나 사는 것이 시지, 딴 거 지어서 시를 쓰라고 해도 못해요. 왜 그런고 하니, 할 줄을 몰라요. 저 사람 이제 공부하네, 시를 쓴다고 하네, 하거나 말거나 나는 써요. 쓰다 보면 눈물도 나오고 서러울 적엔 서러운데, 마음이 나아. 뭣이든 쓸 때는 아프지가 않거든. 그래서 나 살았던 거, 계속 써요.

일곱 살 먹고 국민학교 입학을 했어요. 그해 6.25 전쟁이 왔어요. 차가 우리 학교로 막 들어오더니 막 폭발을 해버려. 그 통에 다시는 학교를 못 갔어요. 옴팡집에서 없이 살아가꼬 동생들 업어 키워주고 일댕겼으니까, 전쟁이 끝났어도, 학교를 댕길 수가 없었어. 모 심다가 농약 공장이고, 딸기 밭이고, 어디고 죄다 일용직으로다가 일 하믄서 살아서 공부가 아쉬운지 모르고 사는 것인가 보다, 그런 줄 알았지.

그런데 내가 나이 스무 살 먹었을 적에 우리 오빠가 나를 불러내더니 그러는 거야.

“너 공부를 안 해서 아쉬울 때가 있어, 너 공부를 하려고 해야지, 돈 벌고 하니까 엄마랑 아부지는 좋다고 하지만, 공부 안 하면 니가 아쉬운 것이지.”

딸이라 못 배운 한, 꾹꾹 눌러 담아 시를 썼다. 연필을 꼭 쥔 그의 손에 주름이 파였고, 한 자 한 자 정성을 들여 쓴 글자들은 반듯반듯하니 예뻤다.

글 못 배운 게 창피하고 한이 될 때마다 오빠 생각이 간절히 났어요. 바라봐야 검은 거야 글씨고 흰 것은 종이지. 아무것도 몰랐어요. 내가 너무 부끄러웠어. 몰라도 너무 몰릉게. 여기 논밭에 있는 꽃을 보면서 위안을 삼았어. 땅 속에 있는 게 어떻게 때가 되면 쑥 올라 올 수 있을까. 색깔이랑 모양은 어쩜 그렇게 다 다를까. 너는 참 예쁘다, 이라믄서.

그러다가 스물 셋 먹고 결혼하고 사남매를 낳았는데, 아홉 살 먹은 둘째 딸을 느닷없이 잃었어. 서러워서, 너무 서러워서. 그때부터였어. 꽃을 그리고 글자를 그림 그리듯이 그리기 시작했던 게.

‘나’를 쓰려면 ‘니은(ㄴ)’ 하고 바라보고 ‘작대기’ 하고 또 바라보고 ‘점’을 주고. 바라보고 다시 바라보고 한 자 한 자 그리고 그랬어요. 한 줄이라도 읽고 쓰면 얼마나 좋을까 했지.


작은 상 앞에서 한 자 한 자 정성을 들여 시를 쓰는 유한순 시인의 모습

그러다 일흔둘 먹고 4월이 되는 해, 진달래 학교를 들어갔어요. 더 배울라고. 여태 돈 벌러 가느라 공부를 못했는데, 내 인생 위해 살기로 마음을 먹었어. 모자르기로 여태 살았는데 할라면 열심히 해야지, 안할라면 말고.

밤낮 모르고 글 공부 열심히 했어. 달력이고 뭣이고 이면지가 보이면 일단 뭣이든 써봤지. 그럼서 시쓰는 대회 나가도 보고 상장도 몇 개 받고. 그러니까 우리 집 남편은 내가 이면지를 좋아하는 줄 알고 이짝저짝 다니면서 이면지를 죄다 가져와.

이짝 귀로 왔다가 저짝 귀로 흘러가버리니까, 글을 배울라치면 힘이 들지. 그래도 좋아. 돈보다도 좋아. 내 가슴 속에 있는 시는 도둑 맞을 일도 없잖아. 여태 밑천이 없었은 게로 창피한 것도 없고.


나 이제, 일흔여섯 먹었어요. 근데 이제서야 눈이 보여요. 읽을 수 있으니까. 이제서야 앞이 보여요. 간판도 보이고, 책도 보이고, 노래자랑할 때 글씨 따라서 노래할 수도 있고, 시도 쓸 수 있고. 세상을 볼 수 있으니까, 내 마음 속에 묵혀놓은 걸 쓸 수 있으니까, 좋아. 너무 신나.

그러니까 나는, 거꾸로 살고 있죠. 그렁게로 몸은 늙었어도 마음은 젊지. 시작이 반인데, 나요, 글 공부 시작하길 잘했어요. 시작하니까 이렇게 좋은 걸. 지금도 시작, 참 잘했다고 생각해요. 





dsun@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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