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낡고 허름한 골목길, 진료비를 받지 않는 병원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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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정아 기자의 인스파이어]


진료비를 받지 않는 병원이 있다. 

서울 영등포구 경인로 100길. 쪽방이 빼곡하게 들어찬 판자촌 허름한 벽돌 건물. 헝클어진 머리를 한 노숙인들이 연이어 들락날락했다. 건강보험 급여 대상에서 제외됐거나 의료비 부담이 큰 차상위 계층 환자도 문턱을 밟았다. 저마다 다른 사연으로 병원을 찾았는데, 신고 있는 신발은 하나같이 낡았다. 발의 형태대로 늘어나고 걷는 모양대로 주름이 진 신발. 그 신이 닿는 곳에 요셉의원이 있었다. 

요셉의원을 찾는 하루 평균 100명의 환자는 대부분 약보다 밥이 필요한 사람들이다.


#. 돈을 받지 않는 병원

지난달 30일 요셉의원에 찾아간 날은 마침 하수도관이 얼어붙어 물을 쓸 수 없었던 날이었다. 그러나 여느 날과 다름이 없었다. 오후 1시가 되자 대기실에는 낮 진료를 기다리는 환자들로 장사진을 이뤘다. 소주와 담배, 오래된 옷에서 나는 특유의 찌든 냄새가 훅 밀려왔다.

“하루에 100여 명의 환자가 병원에 찾아와요.” 요셉의원 의료진과 일반 봉사자들은 매일 오전 9시부터 밤 9시까지 분주하게 움직인다.

1987년 서울 신림동에서 처음 문을 연 요셉의원은 1997년부터 이곳 영등포에 터를 잡았다. ‘진료비가 없는 환자’를 치료하겠다는 고(故) 선우경식 초대 원장의 뜻에 따라 31년을 버텼다.

병원에 상근하는 신완식 의무원장(68)과 100명의 전문의들이 요일과 시간을 정해 자원봉사를 한다. 의사들은 대학병원이나 개인병원에서 진료를 보는 바쁜 몸이지만 짬을 내 요셉의원을 찾아 환자를 돌본다. 의료진이 받는 대가는 없다.

“의료진 외에도 자원봉사자가 연인원 2000여 명입니다. 한번 여기 발을 들여놓으면 오랫동안 봉사하는 분들이 대부분이에요.” 요셉의원과 21년째 인연을 맺고 있는 김정순 간호사는 알코올 솜을 차곡차곡 정리하며 “대단할 게 뭐 있어요?”라고 했다.

요셉의원의 사명은 ‘가난한 환자들에게 최선의 무료 진료’다. 100여 명의 의료진을 포함해 연인원 2000여 명의 봉사자가 이 사명에 쓰여 있는 ‘최선’을 실천하고 있다.


#. 당신의 이름을 기억하는 곳

요셉의원에는 내과를 비롯해 치과·안과·정형외과·비뇨기과·신경외과·피부과·한의과·정신의학과·영상의학과·통증클리닉 등 20여 개 진료과가 있다. 웬만한 종합병원 수준이다.

그러나 진료가 전부는 아니다. 옷 없는 사람은 옷 입혀서 보내고, 밥 굶는 사람은 밥 먹여서 보낸다. 냄새나는 사람은 목욕시키고, 쪽방 동네 사람을 위한 법률 상담도 한다.

“한 번은 어느 할머니가 오셨는데 ‘나 여기저기 쑤시고 아프니까 약만 달라’ 하셨어요. 그런데 냄새가 너무 심한 거예요. ‘할머니, 목욕하고 오시면 아주 좋은 약을 써서 낫게 해드릴게요’ 했어요. 여기 1층에 목욕실이 있거든요. 할머니가 씻고 후원자들이 보내준 옷으로 갈아입은 뒤 진료를 보고 가셨어요. 그러고는 며칠 뒤 다시 병원에 오셨는데, 머리핀을 꽂고 오신 거예요. ‘저 예뻐요?’ 하시면서.”

신완식 의무원장은 그날을 골똘히 생각하더니 ‘허허’ 소리 내 웃었다. 얼굴 가득 소년 같은 미소가 번졌다. 

2008년 선우 박사가 세상을 떠난 후 지도신부였던 이문주(79) 신부가 원장 자리를 이어받았으며 여의도성모병원 감염내과 과장을 지낸 신완식 박사가 의무원장을 맡아 병원을 꾸리고 있다.

“‘지난번에 아프다고 하던 데는 좀 나아졌어요?’ 하고 말을 걸고, 기억하고 다가가면, 갑자기 주르륵 눈물을 흘리시는 분들이 많아요. 지금까지 누구 한 사람 자기를 그렇게 생각해주는 사람이 없었던 거죠.”

진료 접수를 하는 봉사자도, 의료진도, 병원을 찾는 이의 이름을 기억해 부르고 있었다. 내과 치료를 받기 위해 병원을 찾은 박 씨(53)가 내게 귀띔했다. “여기는 아픈 사람들을 안아줘요. 진짜 여기는 없어지면 안 돼요.”


#. “할 수 있는 일을 하고 있을 뿐이예요.”

신 의무원장은 정년퇴직을 6년 앞뒀던 2009년, 병원 과장과 교수직에서 퇴임했다. 명예와 부를 내려놓고 그가 택한 길은 요셉의원이었다. 요셉의원의 초대 원장인 선우경식 선생님의 타계 소식이 앞만 보고 살던 그의 마음을 움직였다. 10원 한 푼 못 받는 무급 봉사직이지만, 그는 “감사합니다”라는 말이 입에 붙었다고 했다.

“교수 시절에는 ‘고맙습니다’는 말을 들어도 ‘아, 나는 그런 거를 받을 수 있는 사람이야’ 이렇게 오만한 생각을 했다고 할까요? 그런데 여기 와서 고맙다는 말이 정말 마음에 와닿아요. 뭐라 표현하기가 어려운데, 가슴이 뭉클해집니다. 만사 제쳐놓고 환자를 돌보는 봉사자들, 꼬깃꼬깃한 지폐를 주며 고마운 마음을 전하려는 환자들, 여기에서 삶의 비의(秘義)를 발견해요.”

이어 지금까지 일하면서 가장 기억에 남는 환자가 있냐고 물었더니 신 의무원장은 대뜸 이렇게 말했다.

“여기 병원이 오래된 건물이라 벽 곳곳에 틈이 있어요. 그런 데를 허투루 보면 안 돼요.”

처음엔 무슨 말인지 이해할 수 없었다. 그가 다시 설명했다.

“환자들이 그 틈에 돈을 넣어놓고 가요. 어떻게든 고마움을 표시하고 싶어 하시는 것 같아요. 1000원짜리, 5000원짜리 마음을 병원 벽 틈에 밀어 넣는 거죠. 초콜릿 하나, 껌 하나를 주는 분들도 있어요.”

누구의 시선도 끌지 못하는 낡고 허름한 골목길, 그리고 그곳에 요셉의원이 있다.

얼마 전에는 병원에서 진료받은 환자가 로또에 당첨됐다고 한다. 그는 50만 원에 가까운 당첨금을 어려운 사람을 위해 써달라며 진료실 문틈 사이에 두고 갔다. 쪽방촌에 사는 이였다.

“어렵게 살면서도 자신보다 더 어려운 사람을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어요.”

요셉의원의 현재 후원자는 1만500명이 넘는다. 정부의 지원은 일절 없다. 개인 기부가 전부다.

“우리는 이 세상에 태어났고, 태어난 사람은 모두 동등해요. 봉사나 나눔, 이렇다기보다는 그저 할 수 있는 일을 하는 것뿐이라고 그렇게 말씀드리고 싶어요.”


#. 에필로그

“선생님은 어디가 아파서 오셨어요?” 

나는 진료를 기다리고 있는 수염이 덥수룩한 그에게 인사를 걸었다.

그러자 그가 쉴 틈 없이 말을 쏟아냈다. 요약하자면 나는 세상에서 버림 받고 마음이 아파서 병원에 왔다는 것이다. 그는 마흔이 훌쩍 넘었다고 했다.

“기자 양반, 당신은 마음이라는 게 있지?”

느닷 없는 질문에 잠시 당황하는 사이 그가 답했다.

“나도 마음이 있어.”


dsun@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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