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각장애인 안내견 양성에 중요한 요소가 딱 2개 있는데, 거기에 훈련사는 없습니다. 훈련사는요, 양성에 큰 비중을 차지하지 않아요.”
인생의 절반을 시각장애인 안내견 훈련에 바친 신규돌(50) 훈련사의 입에서 뜻밖의 말이 나왔다. 그는 그간 67마리의 예비 안내견 중 29마리를 안내견으로 키워내 개인 양성률만 48%에 달한다. 국내에 단 2곳뿐인 안내견 학교의 평균 양성률(33%)을 훌쩍 넘어선 수치다.
그런데 그는 “훈련사는 안내견 양성에 중요하지 않다”며 손사래를 쳤다. 지나친 겸손의 표현이라고 치부하기에는 그의 어조가 너무 단호했다. 이유가 궁금했다.
신규돌 훈련사가 예비 안내견 화목이와 훈련 중인 모습. 안내견은 신 훈련사의 말처럼 ‘사랑을 먹고’ 크기 때문에 훈련사와의 소통이 중요하다. |
#. 안내견을 키우는 보이지 않는 손
경험 많은 훈련사들은 군용견ㆍ경찰견 등 여러 사역견(使役犬) 훈련 중에서도 시각장애인 안내견 훈련을 ‘꽃’이자 ‘끝판 왕’이 부른다. 많은 시간과 비용은 물론이고 사회적으로도 돈으로 환산할 수 없는 숱한 노력이 투입돼야 하기 때문이다.
신 훈련사는 그중에서도 가장 많은 비중을 차지하는 2가지 요소에 대해 ‘유전과 퍼피워킹’을 꼽았다. 그러고선 “이 두 가지가 잘 조화되면 훈련사들은 쉽게 훈련할 수 있어요. 훈련사는 안내견을 키우는 중요한 요소에 안 들어갑니다”라고 덧붙였다.
각 나라별 안내견 훈련에서 빠질 수 없는 과정이 바로 퍼피워킹이다. 퍼피워킹은 ‘강아지 걸음마’라는 의미로 생후 약 두 달 된 예비 안내견이 사회화를 목적으로 Puppy Walker(퍼피워커)라 불리는 자원봉사 가정에 1년간 위탁 사육되는 과정을 말한다. |
신 훈련사는 퍼피워커를 비롯한 사회 환경의 중요성에 대해 여러 번 강조했다. “퍼피워커들이 아이들과 함께 백화점, 공원, 지하철 등 다양한 장소에 다니면서 사회화, 즉 사람과 함께 사는 방법을 알려줍니다. 전 세계적으로 봐도 퍼피워커의 헌신 없는 안내견 양성은 존재할 수 없어요. 안내견 사업은 학교만으로 이뤄질 수 없는 사업입니다. 사회가 같이 가줘야 해요.”
퍼피워커들의 역할은 여기서 끝이 아니다. 일부는 약 8~9년간 시각장애인에게 분양돼 안내견으로서의 소임을 마친 은퇴견들을 기다렸다가 여생을 함께 보내기도 한다. 신 훈련사는 “다시 만나는 그 장면은 가장 보기 좋은 한 폭의 그림 같다. 훈련사로서 가장 뿌듯한 순간”이라고 설명했다.
#. “엄청난 행복감, 다시 이 길을 갈래요”
하지만, 예비 안내견이 세 번에 걸친 시험을 통과하는데 끝까지 함께하는 이들은 훈련사다. 신 훈련사는 1993년 삼성화재안내견 학교가 문을 연 첫해 입사한 이래 안내견 훈련을 위해 매일 20~25㎞를 걸었다. 훈련사 한 명당 여섯 마리의 예비 안내견을 맡기 때문에 같은 코스라도 6번을 걸어야 한다.
훈련사들은 예비 안내견과 하루 훈련(40분 내외)을 마치고 난 뒤에는 관계 형성을 위해 각종 놀이도 함께한다. 정서적 교류를 통해 관계를 형성하는 데 많은 시간이 소요되기 때문에 훈련보다 오히려 훈련 외 시간이 더 중요하다. 노동 강도에 대해 묻자, 신 훈련사는 “어린이집 선생님 이상일 거다”며 미소를 지어 보였다.
신 훈련사는 예비 안내견 훈련을 놓고 “그냥 걷는다고 생각하지 않고 재미있게 논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
그러면서 그는 “우리 안내견 학교의 모든 직원들은 ‘시각장애인의 재활에 도움을 주겠다’는 같은 방향을 바라보며 일을 하고 있다”며 “첫 직장에서 25년째 일을 하고 있지만, 성과가 나오면서 행복이 쌓이고 쌓이는 느낌”이라고 덧붙였다.
신 훈련사는 지금까지 예비 안내견 67마리를 훈련시켰다. 앞으로의 목표는 100마리 훈련이라고 한다. “애네들은요, 제가 주는 것보다 그 배, 몇 배 이상의 감정을 저한데 되돌려주더라고요. 엄청난 행복감을 주는 것 같아요. 다시 사회에 이런 직업이 있으니 해볼래? 라고 누군가가 던져준다고 하면, 저는 생각 요만큼도 안 하고 그 길을 갈 것 같아요.”
#. 시각장애인 1000명과 안내견 15마리
아쉬운 점은 안내견 훈련사들이 국내에 그리 많지 않다는 사실이다. 국내에 시각장애인 안내견 훈련이 가능한 학교는 단 2곳. 훈련사는 10명이 채 되지 않는다. 이들 중 세계안내견협회(International Guide Dog Federation)가 정한 기준을 충족한 훈련사는 신 훈련사를 포함해 6명이다. 6명 모두 삼성화재안내견학교 소속 훈련사다. 삼성화재안내견학교는 설립이래 총 202마리의 안내견을 시각장애인에게 무료로 분양했다. 안내견 한 마리의 교육비는 약 1억 원. 모기업의 지원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안내견 사업은 신 훈련사의 말처럼 사회가 같이 가줘야만 하는 사업이다. 특정 기업의 사회공헌이 아닌 복지의 개념으로 접근해야 한다. |
하지만, 특정 기업이 전액으로 후원해 안내견을 양성하는 나라는 우리나라밖에 없다. 미국, 캐나다, 일본, 대만 등 전 세계적으로 안내견 학교는 개인 기부를 바탕으로 운영된다. 한국장애인도우미견협회가 정부 지원과 개인 후원으로 한 해에 약 3~4마리를 분양하고 있지만, 힘에 부친다.
두 곳의 안내견 학교에 따르면, 국내 시각장애인 중 안내견을 통해 새로운 삶을 살 수 있는 이들은 약 1000여 명으로 추산된다. 하지만, 안내견 학교 두 곳에서 매해 분양하는 안내견 수는 15마리 내외다. 안내견 학교 수와 분양 수 등 모든 지표에서 수요와 공급의 불균형이 심각한 상황이다. ‘안내견 훈련에 훈련사가 중요하지 않다’는 신 훈련사의 말은 이러한 현실을 내포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essential@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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