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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손동 라구역, 엄마들이 바꾼 놀이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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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정아 기자의 인스파이어]

“엄마, 우린 언제 아파트로 이사 가?” 어떻게 하면 이 동네를 빨리 벗어날 수 있을까 고민하고 있던 황자연 씨에게 아홉 살 난 딸이 물었다. “이렇게 좋은 우리 집을 두고 어디를 가.” 그는 딸에게 이사 갈 일은 없다고 말했다. 하지만 자연 씨의 마음은 복잡해졌다.

“아파트에 살든 주택에 살든 상관없이 천진난만하게 뛰어놀 시기인데, 내 딸이 엄마를 통해서 지금의 생활을 인식하는구나 싶었어요. 아이도 만족이 없었던 거죠.” 

자연 씨가 놀이터에 어지러이 쌓여있는 쓰레기를 청소하기 시작한 것도 이 무렵부터다. 그는 퇴근 후 저녁에 시간을 내어 동네 곳곳을 돌아다니며 함께 힘을 보탤 엄마들을 찾아다녔다. 주말에는 서너 시간의 자투리 시간을 써가며 놀이터를 꾸미는데 도움을 줄 공예 예술가를 섭외했다. 그 후 넉 달이 지난 지금, 변화된 놀이터에 아이들이 모여들기 시작했다. 

자연 씨는 퇴근 후 자투리 시간을 내어 엄마들 손으로 놀이터를 바꾸는 축제를 기획하기 시작했다.


# 주택재개발 정비구역, 내손동 라구역

경기도 의왕시 내손동 라구역 중심에 위치한 놀이터는 7년째 방치되어 왔다. 지난 2010년 경기도가 내손동 661 일대(9만72471㎡)를 주택재개발 정비구역으로 지정하면서 이곳 놀이터가 시의 관리 대상에서 제외됐기 때문이다. 시가 나 몰라라 하는 사이 놀이터에는 쓰레기가 쌓여가고 거미줄이 자리를 잡았다.

“의왕시청에 놀이터 청소와 개·보수를 수차례 요청했는데 ‘재개발 지역에 대한 지원 정책은 없다’는 대답뿐이었어요.” 라구역 엄마들은 아이들을 데리고 도로 건너편에 있는 아파트 단지 내 놀이터로 가야 했다. 소윤이(9)는 아파트에 있는 놀이터가 더 넓고 깨끗하다고 내게 귀뜸했다.

내손동 라구역 놀이터에 서서 북쪽을 바라보면 키 낮은 다가구 주택 사이로 반듯한 새 아파트가 빼곡하게 찬 단지가 한눈에 들어온다. 청소차가 다녀가지 않은 탓에 골목마다 쓰레기가 넘쳐났다. 벽돌이 무너져 내려 시멘트 골격만 앙상하게 남은 주택이 곳곳에 눈에 띄었고 목재 합판에 페인트를 칠해 만든 점포 간판들은 빛바래고 낡았다. 재개발이 추진되니 건물주는 건물 개·보수에 전혀 신경을 쓰지 않는 듯 했다.


라구역 사람들은 하나둘씩 떠났다. 남아서 살고 있는 주민들도 이곳을 잠깐 스쳐 지나가는 동네라고 생각했다. “이 동네는 작은 평수의 주택과 빌라가 많기 때문에 집주인 보다 세입자들이 거주하는 경우가 많아요. 어차피 떠나게 될 곳이라고 생각해서 스스로 이방인이라고 말해요.” 실제로 최근 2~3년 사이 이곳 전월세주택 세입자가 배 이상 늘었다. 자연 씨는 “저도 틈만 나면 떠나려고 애썼던 사람이었다”고 말했다.


# 엄마가 바꾼 놀이터

‘잃어버린 놀이터’를 아이들에게 찾아주려는 절박함으로 시작한 일이었다. 자연 씨는 지난 7월부터 동네 엄마들을 설득했다. 아무도 찾지 않는 라구역 놀이터를 우리 아이들의 놀이터로 만들기 위한 축제를 열기 위해서다.

“더 이상 이대로는 안되겠다 싶었어요.”

청소 교육 프로그램을 기획하는 소셜벤처 샤인임팩트의 정승애 대표가 그와 함께 했고 주한영국문화원과 경기문화재단이 축제 비용을 지원했다.

그의 노력에 공감하는 엄마들이 하나둘 늘었고 동참하기 시작했다.

“지역 사람들에게 ‘왜 가까운 놀이터가 있는데 멀리 가시는 거예요?’ 물어보면 ‘지저분하니까요’라는 대답이 돌아왔어요. ‘그럼 깨끗해지면 다시 오실래요?’ 되물었어요. 지역 주민들의 시선이 마을 밖이 아닌 마을 안으로 향하도록 자꾸 질문을 던졌어요.” 승애 씨는 “지역 주민들이 놀이터에 오지 않는 요소를 하나씩 제거하는 작업을 해야 했다”고 했다.

놀이터를 변화시키려는 자연 씨와 승애 씨의 노력에 공감하는 라구역 엄마들이 하나둘 늘었고 동참하기 시작했다. 섬유공예를 전공한 자연 씨는 엄마들과 함께 놀이터에 설치할 가랜드와 매듭공예(마크라메)를 만들었다. 내손동 예술시장에서 활동하는 공예 예술가들은 이곳 놀이터에 소원 나무를 만들고 아이들의 소원이 담긴 엽서를 걸었다. 의왕시 엄마들이 주축이 된 숲속 그림자 연극단이 놀이터에 찾아와 극을 선보였고 인근 교회는 바자회를 준비했다. 지난 10월 21일, 100여 명이 넘는 동네 주민과 아이들이 변화된 놀이터에 모여들었다. 

지난 10월, 라구역 놀이터에서는 아이들의 웃음소리가 끊이질 않았다.

“사람들을 모으는 과정이 힘들지 않았다고 하면 거짓말이고요. 힘들었지만 그래도 다들 모이고 싶어 하는 마음이 있었던 것 같아요. 놀이터가 이렇게 많은 사람들로 꽉 찬 것은 처음이었는데 그게 가장 인상적이었어요.”

누군가 해야 할 일이었지만, 먼저 나서서 한다는 게 쉽지 않은 일이었다고 한다. 자연 씨는 엄마들이 적극 힘을 보태주었기 때문에 용기를 낼 수 있었다고 했다.

“엄마들이 먼저 동네를 사랑해야지 아이들도 이곳을 사랑한다고 생각해요. ‘우리는 이방인이 아니라 이 동네의 주인이다’, 이 동네 사람들이 모두 그렇게 생각했으면 좋겠어요.” 놀이터에서 즐겁게 뛰어노는 아이들을 바라보며 자연 씨는 함박웃음을 지어 보였다.


※ 내손 놀이터 프로젝트는 경기문화재단과 주한영국문화원이 함께 진행하는 ‘액티브 시티즌(Active Citizens)’ 사업의 일환이다. 액티브 시티즌은 문화 간 소통과 지역사회의 책임을 도모하는 사회 리더십 프로그램으로, 영국문화원은 40여 개 국가에서 520여 개 기관과 10년째 해당 프로그램을 진행하고 있다.

dsun@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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