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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바람난과학] 당신이 지금 서 있는 곳, 로보마스터
[선전(중국)=이정아 기자] ‘보병 로봇’이 플라스틱 공을 쏘며 상대 팀 로봇을 공격합니다. 하늘의 눈이 된 ‘드론’은 농구 코트 크기의 경기장을 정찰하고요. 그 사이 ‘기술자 로봇’은 팀의 방어력을 높이기 위해 지정된 위치에 블럭을 설치합니다. ‘베이스 로봇’이 적군과 아군을 자동으로 식별해 스스로를 방어하는 동안 ‘영웅 로봇’이 날리는 묵직한 골프공 한 방. 전 세계 민간용 드론 시장 70%를 점유한 다장(大疆·DJI)이 주최하는 중국 최대 규모의 학생 로봇대회, 여기는 ‘로보마스터(Robomaster)’입니다.


로보마스터 4강전이 치러진 지난달 6일, 대회엔 1만명이 넘는 관중이 몰렸습니다.


# 당신이 지금 서 있는 곳

지난달 6일 중국 광둥성 선전을 찾았습니다. 선전은 아이디어만 있으면 짧게는 1주일 만에 시제품을 만들어주는 업체가 즐비한 도시입니다. ‘중국의 실리콘밸리’라고 불리는 곳이죠. 그런데 이날, 이곳 선전 베이 스타디움에 130여 명의 대학생이 모였습니다.

로보마스터 4강전을 치르기 위해서였습니다.

로보마스터는 보병, 드론, 베이스, 영웅, 기술자로 구성된 다섯 가지 종류의 로봇으로 상대 팀 진영을 무너뜨리는 로봇대회입니다. 기계공학, 컴퓨터공학, 전자통신 등 다양한 전공을 가진 30명 내외의 대학생들이 한 팀을 이뤄 1년여간 로봇을 직접 설계·개발하는데요. 대회 예선부터 무려 전 세계 202개 대학 7000여 명의 학생이 참가했습니다. 

로보마스터 2017이 열린 중국 광둥성 선전 베이 스타디움
로보마스터는 다섯 가지 종류의 로봇이 한팀을 이뤄 상대 팀 진영을 무너뜨리는 로봇대회입니다.
올해 3번째로 열리는 로보마스터에는 중국뿐 아니라 미국, 영국, 독일, 싱가포르 팀이 참가했습니다.

로보마스터 게임 규칙이 간단하지는 않습니다. 경기를 승리로 이끄는 방법만 해도 그 가짓수가 손으로 꼽을 수 없고요.

다만 분명한 점은 다섯 가지 종류의 로봇이 하나의 팀을 이뤄 자원을 얻고, 공격과 방어를 병행하며, 7분 내 상대팀을 무너뜨리기 위해 다양한 전략을 구사해야만 한다는 점입니다. 경기가 진행되는 과정은 세계 최대 게임 방송 중계 플랫폼 트위치(Twitch)에서 생중계 됐죠.

좀 더 다양한 전략으로 게임을 할 수 있도록 경기장에는 같은 팀 로봇의 체력(HP)를 복구하는 힐링 기둥, 로봇이 플라스틱 공으로 타격하면 팀의 공격력이 3배로 증가하는 장치 등이 있습니다. 타격시 더 많은 득점을 할 수 있는 골프공이 보관돼 있는 자원 섬도 있고요. 이렇다 보니 예선에서 결선으로 올라갈수록 경우의 수를 염두에 둔 새로운 게임 전술이 등장하게 됩니다.

“상대 팀 로봇이 가지고 있는 능력치, 특히 후반에 강했다는 강점 등을 미리 분석해서 우리 팀의 로봇 시스템을 다시 설계하고 팀 전략을 세웠습니다.” 올해 로보마스터에서 우승을 한 화남이공대학교의 ‘화남호’ 팀 주장인 루 환펑(22) 이렇게 전했습니다.


# 컴퓨터 비전, 인간의 눈을 가진 로봇

그런데 말입니다. 로보마스터는 ‘전략 시뮬레이션 게임이 컴퓨터 밖으로 툭 튀어나왔나’ 싶은 단순한 로봇대회가 아닙니다. 로보마스터에 참가한 로봇에는 인공지능(AI)·3D 프린터·사물인터넷(IoT) 등 첨단 기술이 압축적으로 집약돼 있기 때문인데요.

이 중에서도 특히 눈에 띄는 기술이 ‘컴퓨터 비전(Computer Vision)’입니다. 컴퓨터 비전은 컴퓨터가 사람 눈과 같은 시각적인 인식 능력을 가지도록 하는 연구 분야입니다. 인간과 한층 더 유사한 인공지능으로 불리는 기술이죠. 로보마스터를 시스템 관점으로 바라봐야 하는 이유입니다.

예를 들어 로보마스터에서 플라스틱 공을 쏘는 로봇은 한자리 숫자를 식별하는 능력을 가졌습니다. 그런데 로봇이 숫자를 읽기만 하는 게 아닙니다. 로봇은 읽은 숫자와 동일하게 쓰여있는 또 다른 숫자를 구분해, 해당 숫자를 향해 공을 쏘는 행위까지 합니다. 숫자를 보고 해당 숫자가 쓰여 있는 다른 기둥에 공을 쏘기까지 걸리는 시간은 단 1.5초. 인지·식별·판단·행동은 모두 자동으로 이뤄집니다. (로봇이 이 임무를 수행하면 팀 로봇의 방어력이 모두 상승합니다.)

경기장 내 지정된 공간 안에서만 움직여야 하는 베이스 로봇의 경우, 주변 환경을 시각적으로 인지하는 ‘비전 센서(Vision Sensor)’를 탑재하고 있습니다. 이 센서로 자신을 공격하려는 상대 팀 로봇을 인지해 저 스스로 피해 다니는데요. (베이스 로봇의 HP가 ‘0’이 되면 게임은 그대로 종료됩니다.) 로보마스터를 총괄하는 양 슈오 DJI 엔지니어는 “피사체 인식 기술, 장애물 회피 기술 등 컴퓨터 비전이 게임 안에 자연스럽게 녹아져 있다”고 덧붙였습니다.

로보마스터에 4강전에 참가했던 화남이공대학교 쉬안 준펑(22)도 “로봇 시스템의 자동·수동 모드 비율을 변화시키면서 경기를 치렀다”며 “로보마스터 대회를 이해하면 시스템 공학(Engineering)도 이해할 수밖에 없다”고 설명했죠.

'비전 센서(Vision Sensor)'가 탑재된 로봇들


# 1인칭 시점+컴퓨터 비전=지능형 로봇

로보마스터에서 눈에 띄는 또 다른 점은, 로보마스터 참가자들이 로봇에 달린 ‘카메라 시점’으로 주변 환경을 보고 게임을 한다는 겁니다. 1인칭 시점(FPV·First Person View)이라고 하는데요. 이같은 1인칭 시점 로봇이 중요한 건, 이 기술이 선행돼야 인간 대신 위험한 곳에 진입하는 로봇을 개발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로봇을 직접 보고 조종하는 건 쉽지만, 다른 각도에서 로봇을 작동시키는 건 생각보다 어렵습니다.” (양 슈오 DJI 엔지니어)

그런데 로보마스터에서 여러분은 1인칭 시점에서 더 나아가, 앞서 언급한 컴퓨터 비전 기술까지 적용시킨 로봇을 볼 수 있습니다. 이는 로봇이 인간이 갈 수 없는 곳에 가는 것뿐만 아니라, 그곳에서 일어나는 수많은 문제를 로봇 스스로 해결할 수 있는 시대가 왔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특정 행위에 대한 인지 능력을 갖춘 지능형 로봇이 개발될 수 있다는 건데요.

예를 들어 전력선을 검사하는데 사용되는 드론에 컴퓨터 비전을 적용하면, 드론은 문제가 있는 전력선을 감지하고 이 지점을 식별해 정보를 제어실로 전송할 수 있습니다. 이 모든 과정은 ‘자동으로’ 이뤄지고요.

얀 가스파릭 DJI 엔터프라이즈 마케팅 본부장은 이렇게 덧붙였습니다.

“여러분이 로보마스터에서 본 건 새로운 기술이 어떻게 만들어지고, 그 기술이 세상을 어떻게 바꾸는지에요. 그런데 중요한 건, 이 기술이 세상에 있는 수많은 문제를 해결하는 가장 기본적인 ‘툴(tool)’이 될 수 있다는 겁니다.” 

'로봇 시점(1인칭 시점)'에서 본 게임 경기 화면. 로봇은 전광판 위로 보이는 숫자를 읽고, 해당 숫자가 쓰여 있는 흰 모니터 화면을 향해 플라스틱 공을 쏩니다. 이 모든 과정은 자동으로 이뤄집니다.


# 지금까지 없던 세상

DJI는 매년 로보마스터를 열기 위해 DJI 엔지니어로 구성된 60명의 기술팀을 두고 있습니다. 이들은 출전하는 팀이 참고할 수 있는 프로토타입 로봇과 필요 부품을 제공합니다. 로봇 디자인이나 기술 개발에 어려움을 겪는 팀에는 조언도 아끼지 않습니다.

지난해 DJI에 입사한 ‘로보마스터 2016’ 우승팀 주장 루오지(23)는 “상대 팀 로봇이 제대로 작동되지 않을 때 어떻게 이 문제를 해결할 수 있을지 함께 의논하는 진풍경이 벌어지기도 한다”며 “로보마스터에 참가하는 학생들이 경쟁을 한다기 보다, 배우고 있다는 생각이 더 크기 때문”이라고 전합니다.

양 슈오 DJI 엔지니어는 “참가팀이 경기를 치를수록 기술이 향상되고 전략이 다각화되는 것을 볼 수 있다”고 말했죠.

우리는 하루를 바쁘게 지냅니다. 그래서 주변의 세상이 얼마나 바뀌었는지를 실감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런데 문득 발걸음을 멈추고 주변을 둘러보면 세상은 어마어마하게 변화해 있습니다. 어떤 미래가 올지 그 누구도 알 수 없지만, 한 가지 분명한 사실은 로보마스터에 보게 되는 모든 것은 ‘가능한 미래’라는 것이죠.

“누구도 미래를 알 수 없어요. 미래는 알려지지 않았으니까요. 그러나 정확하게 예측하는 방법은 있어요. 내 손으로 직접 만드는 겁니다.” (올해 로보마스터에서 우승을 한 화남이공대학교의 ‘화남호’ 팀 팀원 쉬안 준펑)

네, 여기는 지금 당신이 서 있는 곳입니다.





dsun@heraldcorp.com


헤럴드의 콘텐츠 벤처, HOOC이 첫번째 프로젝트 <인스파이어ㆍINSPIRE>를 시작합니다. 영어로 ‘영감(靈感)을 불러일으키다’라는 뜻의 인스파이어는,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가치있는 이야기를 통해, 독자들에게 영감을 전달하고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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