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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 활판 인쇄소, 그리고 남은 사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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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수용 기자의 인스파이어]

100년도 넘은 옛날 방식을 고집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들이 사용하는 기계들은 잦은 고장을 일으키고 유지하는 것만해도 많은 비용이 든다. 더 값싸고 편리한 방식이 나왔지만 옛날 방식을 고수한다. 

그들은 말한다.

“최고가 되는 것도 좋고, 1등이 되는 것도 중요하지만 유일하게 남아있는 것을 지키는 사람도 분명 필요합니다.”

이제는 국내에서 자취를 감춰버린 활판 인쇄, 그 명맥을 유지하고 있는 사람들이 있다. 이 땅에 마지막 남은 장인들과 일을 이어나가는 사람들을 지난 6일 파주 출판단지에서 만났다. 


<1. 다시 시작>

#박한수 대표와 활판공방

많은 사람들이 그를 말렸다고 한다. 돈을 벌기는커녕 돈을 쓰는 일만 생길 것이라는 우려들이 대부분이었다. 하지만 그는 누군가는 활판 인쇄를 지켜야한다고 믿었다. 그럴 가치가 있다고 생각했다.

국내 유일의 활판 인쇄소 ‘활판 공방’의 박한수(46) 대표는 원래 북자이너였다. 책 만드는 일을 오랫동안 해온 그는 자연스럽게 우리나라 고유의 활판 인쇄 문화에 관심을 갖게 됐다. 늦은 나이에 다시 대학원에 들어가 활자 관련 전공을 한 그는 영국, 독일, 프랑스 등 유럽 주요 나라에 아직까지 보존되고 있는 활자 인쇄술에 감명을 받았다. 아직까지 영국과 독일, 프랑스 등의 나라에서는 문학전집과 사상전집, 국가기록물 등 중요한 문서를 여전히 활판 인쇄 방식을 유지하고 있었다. 이에 비해 오랜 활자 인쇄의 역사를 가지고 있는 우리나라에서는 정작 활자 인쇄가 종적을 감췄다.



“각 나라의 보편적인 기준이 되는 게 활자문화예요. 우리나라가 인쇄 종주국이지만 근대 이후 그 문화를 지키기위한 노력이 부족했어요. 그 어떤 분야보다 지속되고 지켜야할 부분이라고 생각했습니다”

박 대표가 활판 공방을 계획하고 사람과 기계를 모으는데 10년이라는 시간이 걸렸다. 우여곡절 끝에 활판공방은 지난 2007년 문을 열었다. 우리나라에서 사라진 활판 인쇄가 다시 부활하는 순간이었다. 그리고 어렵게 다시 문을 연 활판 인쇄소는 올해로 10년 째를 맞이했다.

<2. 장인과 낡은 인쇄 기계들>

#권용국 장인

그가 처음 일을 시작한 것은 1950년이다. 올해 84살인 그는 60년 넘게 활판 인쇄를 하고 있다. 활판 공방에서도 가장 오랜 기간동안 일을 하고 있다. 6.25 전쟁이 한창일때 피난을 다니면서도 일을 놓지 않았다고 한다. 만들어진 활자를 바탕으로 판을 짜는 일은 권용국 장인의 이야기다.

그의 손을 거친 작업물을 본다면 그를 한국 출판 산업에 살아있는 역사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시중에 나와있는 국어대사전부터 영한사전, 독일어사전까지 모두 그의 손을 거쳤다. 수많은 글자들을 한 자, 한 자, 자신의 손으로 판을 짰다.

하지만 영원할 것 같던 활판 인쇄도 변화를 피할 수 없었다. 1980년대부터 대중화됐던 옵셋 인쇄 방식이 기존의 인쇄 방식을 대신하면서 6.25 전쟁 중에도 계속했던 일을 그만둘 수 밖에 없었다.

그런 권용국 장인에게 2007년은 잊을 수 없는 해이다. 사라졌던 활판 인쇄 방식으로 다시금 일을 시작하게 됐기 때문이다.

“기분이 너무 좋았어요. 이 나이에 내가 아직 일할 수 있는 곳이 있다는게 감사했고, 인생의 전부였던 일을 다시 시작할 수 있으니 얼마나 좋아요”

과거엔 맨 눈으로 작은 글씨도 쉽게 찾아냈던 그였지만, 이제는 돋보기 안경은 필수품이 됐다.

그러나 그에게 달라진 점과 불편함은 그뿐이다. 여전히 일할 수 있다는 것이 여전히 즐겁고 자신의 인생과 다름없는 일을 계속해서 할 수 있다는 행복함이 그의 표정에서 묻어났다.

#김평진 장인

“이게 엉성해보여도 비행기만큼이나 정교해요. 1000분의 1 미리까지 다퉈야하니까 아주 까다로운 기계죠”

김평진(68) 장인은 계속해서 인쇄기에 기름칠하고 나사를 조였다. 그런 그의 노력 덕분인지 50년이 넘은 기계는 마치 새 것처럼 작동했다.

18살에 배운 인쇄기 기술을 지금까지 하고 있는 그의 나이는 어느새 칠십을 바라보고 있다. 50년이 넘는 기계의 연식만큼이나 그의 경험도 50년을 넘었다. 그가 다루고 있는 인쇄기가 곧 그의 삶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사실 그는 처음 대표가 다시 활판 인쇄를 한다고 했을 때 터무니 없는 소리라고 생각했다고 한다. 간편하고 저렴한 인쇄 기계들이 넘쳐나는 요즘, 경제성이나 효율성을 고려한다고 해도 다시 과거의 활판 인쇄를 한다는 것이 무의미하다고 생각했다. 그럼에도 그를 다시 이곳으로 오게 한 것은 50년 넘게 기계 앞에서 보내온 삶 때문이다.

최근 그는 다시 인쇄기를 돌리면서 여러가지 생각들이 떠올랐다고 한다. 사회 생활의 첫 시작이었고 자신의 인생을 모두 여기에 걸어야겠다는 다짐도 있었다. 그런 수많은 사연을 간직한 세월이였다. 처음엔 터무니 없다는 생각으로 다시 인쇄기 앞에 섰지만 지금은 과거의 기술을 인정받는 것 같아 자부심이 든다고 한다.

“과연 다시 할 수 있을까란 생각을 했어요. 너무 오랫동안 쉬었잖아요. 근데 몸이 기억하더라고요. 인생의 처음 시작을 이 인쇄기와 함께 했어요. 떠날 때 눈물도 많이 흘렸죠. 기술자로서 자부심도 느꼈고 좋은 인쇄물을 많이 생산할 때의 뿌듯함이란. 다시 일을 시작하면서 보람을 느껴요. 정성과 혼이 깃드는 이 작업을 누군가는 이어갔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

#장세엽 장인

활판 공방에서 금박 인쇄를 담당하고 있는 장세엽 장인은 같이 일하고 있는 동료들 중 가장 막내다. 막내인 그의 나이는 66세, 인쇄 경력은 40년이 넘었다.

활판 인쇄업이 디지털 인쇄 방식에 밀려나자 장세엽 장인이 느낀 감정은 아쉬움과 쓸쓸함이었다고 한다. 자신의 삶을 다바친 일이 없어진다는게 과거의 기억들이 지워지는 느낌이었다고 한다. 



그런 그에게 다시 활판 인쇄를 다시 시작하자는 박한수 대표의 제안을 듣고 가장 먼저 떠오른 감정은 고마움이었다. 다시는 활판 인쇄기를 만지지 못할 것이고 생각했었기 때문이다.

“후배들이 활판인쇄의 가치를 알고 계속 배워나갔으면 좋겠어요. 앞에 선배들이 해왔던 일이 결코 의미 없는 일이 아니었다고, 후배들이 보여줬으면 좋겠습니다.”

<3. 그들이 남은 이유, ‘“다시 활판이다”>

“왜 아직도 이 일을 하세요?”

많은 사람들이 활판 공방에 남아있는 사람들에게 공통적으로 묻는 질문이라고 한다. 



이곳에서 일하는 박한수 대표와 권용국, 김평진, 장세엽, 3명의 장인들은 살아온 세월은 다르다. 하지만 같은 공간 안에서 이제 그들은 같은 느낌을 공유하며 같은 곳을 바라보고 있다. 남아있는 이들은 디지털이 줄 수 없는 오직 아날로그만이 가지고 있는 매력에 대해 이야기한다. 오직 아날로그만이 줄 수 있는 ‘맛’은 디지털과 첨단의 시대에도 계속 유지될 것이라고 한다.

그리고 그들의 노력 덕분인지 조금씩 활판 인쇄에 대한 관심이 늘어나고 있다고 한다.

박한수 대표에게 다시금 활판 인쇄가 관심을 받게 되는 이유가 어디에 있는지 물었다.

“저는 손이 디지털이나 첨단보다는 더 정교한 부분을 가지고 있다고 봐요. 그렇기 때문에 하이-테크(High-Tech)가 아니라 하이-터치(High-Touch)가 앞으로 인간 사회에 중요한 키워드가 될 것이라고 믿어요”





*헤럴드의 콘텐츠 벤처, HOOC이 첫번째 프로젝트 <인스파이어ㆍINSPIRE>를 시작합니다. 영어로 ‘영감(靈感)을 불러일으키다’라는 뜻의 인스파이어는,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가치있는 이야기를 통해, 독자들에게 영감을 전달하고자합니다.

스스로에 대한 자극과 영감을 갈망하는 이들이라면, 인스파이어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여 주세요.

*인스파이어 페이스북 바로가기 ▶클릭

feelgood@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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