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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기 위해 눈을 감아요’…앞이 보이지 않는 화가 박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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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수용 기자의 인스파이어(inspire)]

-3년 전 교통사고로 시력을 완전히 잃은 화가 박 환
-손의 감각을 이용해서 작업
-“그림을 통해서 많은 사람들을 위로하고 싶어요.”



“나는 보기 위해서 눈을 감는다.”
20세기 가장 위대한 화가 중 하나인 폴 고갱의 말이다.

단순히 눈에 보이는 것이 아닌 더 많은 것들을 표현하기 위해서 눈을 감는다고 했다. 그렇게 그는 단순히 보이는 것 이상의 느낌을 그린 그림들을 통해 수많은 사람들에게 위로와 감동을 줬다. 



3년 전 교통사고로 시력을 잃은 사람이 있다. 시각장애 1급 판정을 받은 그는 빛에도 반응하지 못한다. 그의 앞에는 캄캄한 암흑 밖에 보이지 않는다. 그런 그의 직업은 화가다.



그림을 그리는 화가에게 앞을 보지 못한다는 것, 색을 볼 수 없다는 것은 치명적이다. 그러나 그는 여전히 그림을 그리고 있다. 그리고 그림을 통해 수많은 사람들에게 위로를 전하고 있다.

지난 9일 그를 강원도 춘천에서 만났다. 



*박환 화백의 인터뷰 내용을 1인칭 시점으로 재구성해 작성한 내용입니다.

TV에서 봄소식을 전해옵니다. 곧 날이 풀리고 봄꽃들이 피어날 것이라고 하네요. 하지만 애석하게도 전 코앞으로 다가온 봄을 볼 수 없습니다. 바깥에 봄이 와있는지 햇볕은 쨍쨍한지 알지 못합니다. 앞을 볼 수 없기 때문입니다.



시력을 잃은 지 3년이 넘었습니다. 좌절하고 포기하고 싶었던 순간이 분명 있었습니다. 하지만 전 여전히 그림을 그리고 있습니다. 제 직업은 화가입니다. 



2013년 10월, 저는 교통사고로 시력을 잃었습니다. 화가인 저에게 앞을 볼 수 없다는 것은 사형선고나 다름없었습니다. 지옥 같은 시간을 보냈습니다. 아무 것도 할 수 있는 게 없었습니다. 그저 하루 종일 거실에 나와 멍하니 앉아있기를 반복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여동생이 다시 한 번 그림을 그려보면 어떨까라고 제안을 하더군요. 저는 말도 안 되는 소리하지 말라고 버럭 화를 냈습니다. 빛조차 구분이 안 되는데 그림을 어떻게 그릴 수 있을까요? 불가능하다고 생각했죠. 그래도 한번 해보자고 도통 매달리는 탓에 못 이기는 척 캔버스 앞에 앉았습니다. 떨리는 마음으로 어렵사리 그림을 그렸습니다. 그런데 이상한 일이었습니다. 그림을 순간만큼은 불안함과 좌절감이 느껴지지 않고 오롯이 그림에만 집중을 하게 되는 겁니다. 어느 순간에는 다시 시력이 돌아온 게 아닌가 하는 착각마저 들어요. 그림 속 풍경에 빠져 그 안에 살고 있다는 느낌을 받죠. 힘들었지만 제가 평생 해온 게 그림 밖에 없었어요. 자신 있게 할 수 있는 게 그림 뿐 이니까 다시 시작하게 됐죠.



물론 다시 그림을 그리는 건 쉽지 않았습니다. 연필로 스케치한다는 것은 불가능했죠. 다른 방법을 생각해야 했습니다. 그래서 생각해낸 방법이 실과 바늘을 이용하는 것이었죠. 손의 감각을 이용해 스케치를 하는 거죠. 실에 풀을 붙여 스케치를 해요. 그리고 핀을 꽂아서 어디인지 구분을 하죠. 그 후에 굵은 실을 덧바르고 청바지 등 입체감 있는 재료들을 이용해요. 그 위에 색을 입혀요. 다들 어떻게 색을 구분하는지 궁금해 해요. 그런데 물감마다 조금씩 농도가 달라요. 미세한 농도차를 이용해서 색을 구분하죠. 그렇게 일 년 정도 시간이 지나니 예전 느낌이 돌아왔어요. 























사람들은 시력을 잃기 전과 그림의 느낌이 많이 바뀌었다고 말합니다. 시력을 잃기 전에는 어둡고 무거운 주제의 그림이 대부분이었어요. 그런데 시력을 잃고 난 후에는 왠지 모르게 아름다운 풍경을 자꾸 그리게 돼요. 특히 ‘봄’을 많이 그리게 됩니다. 아무래도 봄은 첫 시작이잖아요. 희망을 갖고 기대감을 갖게 되는 봄이라서 자주 그리는 것 같아요.



올해 초에는 시력을 잃은 뒤 첫 전시회를 열었습니다.

전시회를 보러 온 관람객들이 하나 같이 저한테 고맙다고, 덕분에 용기를 얻고 위로를 받고 간다고 말해줬습니다.

처음 그런 말들을 들었을 때 조금 의아했습니다. 시력을 잃고 세상에서 제가 가장 힘들다고 생각했죠.

‘이 사람들은 도대체 어떤 상황이기에 나한테 이러는 걸까?’ 궁금했습니다. 전시에 찾아오신 분들이 조심스럽게 자신들의 사연을 이야기해줬습니다. 제가 가장 힘들다고 생각했는데 저보다 힘든 사람이 많다는 것을 알게 됐습니다.



사실 저는 타인에게 희망을 주려고 그림을 그리지 않았어요. 제 이름을 널리 알리고 돈을 벌어야겠다는 생각이었죠. 그런데 이번 전시를 열고 생각이 많이 바뀌었어요. 제가 그린 그림을 통해서 많은 사람들이 힘을 얻고 희망을 가지게 된다는 것을 알았어요. 더 열심히 그림을 그려야겠다는 계기가 됐어요. 저도 그림을 통해서 위로를 받고 있는 동시에 제가 그린 그림이 많은 사람에게 위로가 되고 힘이 된다는 것, 그림은 저를 살게 하는 힘이면서 사람들에게 위로를 줄 수 있는 것이죠.

제 앞에 보이는 것은 온통 암흑이지만 제가 그리는 것은 희망입니다. 























봄이 왔다고 합니다. 외출 준비를 마치고 산책로로 향합니다. 오랜 만에 길가에 풀들을 만져봅니다. 아직 틔우지 않은 개나리 꽃망울이 손에 잡힙니다. 보일 때는 몰랐는데 작은 생명의 태동이 신기하기만 합니다. 행여 다치지 않을까 조심스레 꽃망울을 쓰다듬습니다. 그렇습니다. 어느새 다시 봄이 왔습니다.

*헤럴드의 콘텐츠 벤처, HOOC이 첫번째 프로젝트 <인스파이어ㆍINSPIRE>를 시작합니다. 영어로 ‘영감(靈感)을 불러일으키다’라는 뜻의 인스파이어는,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가치있는 이야기를 통해, 독자들에게 영감을 전달하고자합니다.

스스로에 대한 자극과 영감을 갈망하는 이들이라면, 인스파이어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여 주세요.
*인스파이어 페이스북 바로가기 ▶클릭

feelgood@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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