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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훅INSIDE] 저는 곧 서른이 됩니다
[HOOC=이정아 기자] 나흘 뒤에 ‘3’ 자가 붙는 나이, 스물아홉. 결혼도 결혼이지만 아직 이루지 못한 꿈도 더 늦기 전에 이루고 싶습니다. 친구들도 꾸준히 만나야 하고요. 운동도 해야 합니다. 또 특기도 살려야 하고, 나만의 독특한 취미도 있어야 하죠. 그러나 이 모든 것을 생각할수록 머리만 아파질 뿐. 그나마 일을 하고 있으면 나은 편입니다.

가수 고 김광석은 노래 ‘서른 즈음에’에서 “청춘이 머물러 있는 줄 알았다”고 고백합니다. 마냥 찬란하게 빛날 줄 알았던 20대 끝자락에서, 스물아홉. 그러나 인생의 또 다른 전환점이 되는 나이이기도 한, 스물아홉. 그 자신이 원하건 원하지 않건 ‘올림픽세대’로 불려 왔던, 88년생, 스물아홉.

가랑비에 옷 젖듯이 어쩌다 맞이하게 된 서른 앞에서, 스물아홉 청춘들은 어떤 고민을 안고 살아가고 있을까요. 이 땅에 발을 디디고 살아가는 스물아홉에게 2016년 올 한 해는 어떻게 기억될까요. 12월 14일부터 2주에 걸쳐 아홉 명의 스물아홉 청춘들과 맥주 한잔을 기울이며 인터뷰를 가졌습니다.

서른 즈음에 우리는, 이렇게 살고 있습니다.





(영상기획/구성: 이정아, 손수용, 신보경, 박규리)


▶스물아홉, 당신에게 어떤 한 해였나요?

“서른이라는 게 엄청 먼 이야기인 것 같았는데, ‘예전 모습 어디로 갔냐, 너 이제 늙었다’는 말을 하도 많이 들으니까 나이를 생각하게 되더라고요. 두려워요. 또 한 살을 먹는구나, 이런 차원을 넘어선 문제라고 해야 할까. 실제로 외적으로 늙기도 했고 배도 좀 나오기도 했고.” (A 씨, 남, 직장인, 입사 4년차)

“뭔가 의미 있게 시간을 보내야 한다는 생각이 많았어요. 그래서 올해는 혼자 여행도 더 많이 다니려고 했고, 친구들이랑 파티도 했고. 돈은 서른 살 때부터 모으자, 그런 심정으로 돈을 많이 썼네요.” (B 씨, 여)

“왜 나는 이렇게 다 늦을까, 그게 힘들었어요. 회사 관두고 다시 고시를 준비하다 보니…. 서른이 되는 느낌은 분명 즐거운 느낌이 아니에요. 열심히 산다고 살았는데 왜 나는 여전히 준비가 되지 않은 걸까. 내 인생 도대체 뭐가 문제인 걸까….” (L 씨, 남, 고시준비생)


“20대가 이렇게 끝나가는구나, 난 해본 게 없는데. 이러려고 공부를 오래 했나, 자괴감도 들고. 그런데 어느 순간 스물아홉이라는 숫자에 내가 부여한 타이틀이 너무 거창한 게 아닐까 싶었어요. 알고 보면 다들 비슷하게 사는데…. 이런 생각이 드니까 초연해지고 지나간 시간을 보고 후회할 필요가 있나 싶고.” (M 씨, 여, 고등학교 선생님)

“어떤 시간이었다고 하기엔, 너무 정신없이 지났어요. 약간 매너리즘에도 빠졌다고 해야 할까? 커리어를 어떻게 발전을 시켜야 하나, 그런 구체적인 것을 고민한 시간이었어요. 거창한 목표와는 거리가 좀 있는….” (K 씨, 여)

“19살에서 20살이 될 때는 나이를 먹는다는 느낌이 어렴풋하게 있었는데, 이제는 진짜 늙었구나, 아저씨가 됐구나, 나도 결혼을 하고 책임을 지는 때가 오는구나, 그런 생각이 들어요. 1~2년 안에 새로운 도전을 하지 않으면 내가 뭔가를 할 수 있는 것들이 없어지는 게 아닌가 생각이 드니까, 이제는 진짜 자유의 시간이 끝났구나. 뭐라도 빨리해야지, 이런 마음이 생기더라고요.” (J 씨, 남)


▶스물아홉, 어떤 나이인가요?

“제 동생이 저한테 ‘작눈, 옛내나’ 이러더라고요. 뭔 소리인가 봤더니 ‘작은누나 옛날 냄새나’를 줄여서 말했다고 하더라고요. 아, (한숨 지으며) 내가 그런 나이구나.” (B 씨, 여)

“나는 아직 어린 것 같은데, 사회에서 보는 나는 어리지 않고…. 그렇다고 책임을 막 가하기에는 좀 애매한 경계선에 있는 나이? 20대 초반에는 실수를 해도 아직 어리니까 괜찮아, 하고 넘어가는데. 그런데 지금은 모든 일에 책임지고 해야 한다는 생각이 크고, 그렇다고 팀장처럼 엄청 노하우가 많이 쌓인 것도 아니고.” (2017년 1월 결혼을 앞두고 있는 Y 씨, 여, 직장인)

“19살, 딱 10년 전. 그때는 스무 살이 된다는 데 대한 기대가 엄청 컸어요. 그런데 서른 살을 코앞에 두니까 직장을 가져도, 그래서 뭔가 하나씩 목표를 성취해도, 아…. 이게 인생이 완성되는 게 아니구나. 이건 별개의 문제구나. 그냥 그 순간 열심히 사는 것에 달렸구나. 10대 때 하는 순진한 기대는 없어졌어요. 늙었다고 하기에는 아직 너무 젊은 것 같지만.” (K 씨, 여)

“사람을 보는 눈이 넓어졌어요. 전에는 사람을 볼 때 하나가 싫으면 다 싫어 보이기도 하고 그랬는데, 사람들을 많이 만나고 경험이 쌓이다 보니까 ‘얘는 이런 단점도 있지만 다른 장점도 있으니까’ 이렇게 절충할 수 있는 여유가 생겼어요. 그런데 그게 저한테도 적용이 되더라고요. ‘나도 완벽하지 않고, 나도 좋은 점 나쁜 점이 있다’ 이렇다 보니 ‘나는 이런 사람이다’는 제 가치관이 점점 더 확고해졌어요.” (B 씨, 여)

“솔직히 별 감흥이 없어요. 마치 군대 들어갈 때도 내가 군대 들어가는 것 맞나, 싶다가도 막상 군대를 가면 실감하는 것처럼 서른이 되면 ‘이런 것들이 닥치겠구나’ 생각은 하지만 지금 당장은 별 느낌이 없는 그런 것 있잖아요. 결혼은 내가 하고 싶을 때 하면 되고, 아니면 결혼을 안 할 수도 있고. 내가 나중에 선택할 수 있는 거니까.” (J 씨, 남)


▶열아홉 당신이 생각한, 스물아홉 당신은?

“어른이라고 생각했어요. 아줌마, 진짜 아줌마.” (C 씨, 여)

“너무 먼 숫자였어요. 29이라는 숫자는 너무 어른의 숫자였으니까.” (M 씨, 여, 고등학교 선생님)

“그때는 지금을 생각을 해본 적도 없어요.” (K 씨, 여)

“아저씨였죠. 그때는 아저씨가 무서웠었는데, 먼저 다가오지를 않으니까. 지금 저는 동생들한테 먼저 다가가려고 하고 그래요. 신조어 공부도 하고.” (A 씨, 남, 직장인, 입사 4년 차)


▶당신의 20대를 돌이켜본다면?

“힘든 일이 있었는데도 20대는 마냥 좋았던 것 같아요. 자꾸 미화가 되거든요. 되돌아보면 다 흑역사라서 다시 돌아가고 싶지는 않지만. ” (B 씨, 여)

“좀 더 무모하지 못했어요. 뭔가 도전하고 저지르면서 살지 못했어요. 뭘 했어야 했는데, 이런 건 없는데 제가 삶을 대했던 자세, 그게 맘에 들지 않더라고요. 이상적인 생각에 머물러서 그때 즐길 수 있는 것들을 못했어요. 어떻게 보면 용서받을 수 있는 유일한 시간인데, 왜 나는 더 도전적이지 않았을까….” (M 씨, 여, 고등학교 선생님)

“20대 초반에는 뭐든 할 수 있다고 생각했어요. 그런데 지금은 내가 뭘 잘하고 뭘 못하는지 아니까. 슬프기도 하고 이제야 좀 철이 든 것일 수도 있고. 뭐라고 해야 할까, 한 마디로 설명하기 어려운 복잡한 심정이에요. 내 단점을 인정해야 하는 나이니까.” (S 씨, 남, 취업준비생)

“20대 초중반에는 굉장히 어렸고, 또 생각이 짧았기 때문에 연애가 오래간 적이 없었어요. 그런데 지금 만나는 사람과는 좀더 성숙한 연애를 하는 것 같아요. 그냥 사람을 있는 모습 그대로 받아들이는 연습이라고 해야 하나?” (C 씨, 여)

“누구나 시간이 지나면 힘든 기억도 아름다운 추억이 되잖아요. 자신 있게 딱 결정하고 했어야 하는데 왜 나는 망설이고, 고민하고, 이거 하면 어떻게 될까, 해보지도 않고 고민했을까. 저질러놓고 후회되는 건 없는 것 같아요. 하지 못했던 것들이 후회가 되죠.” (2017년 1월 결혼을 앞두고 있는 Y 씨, 여, 직장인)


▶서른아홉 미래의 당신, 스물아홉 당신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생각보다 남은 네 인생에 관심이 없단다. 너 하고 싶은 거 하면서 살아.” (L 씨, 남, 고시준비생)

“멈추면 늙은 느낌이 나는 거야. 열심히 살고 열정을 여기저기 드러내면 늙은 느낌이 안 나는데 시간을 무의미하게 보내면 그때 정말 늙는다는 생각이 드는 거야. 그러니까 20대 초반 그때 품었던 열정을 다시 품자.” (K 씨, 여)

“결혼 좀 늦게 할래?” (익명)

“연애 좀 할래?” (S 씨, 남, 취업준비생)

“부모의 기대나 타인의 시선 때문에 못하지 말고 좀 더 무모해져. 지금도 늦지 않았다는 걸 항상 기억하고. 또 10년 뒤에 이렇게 후회하기 싫잖아.” (2017년 1월 결혼을 앞두고 있는 Y 씨, 여, 직장인, 입사 3년 차)

“제발 너 자신에게 투자를 많이 해. 누군가의 며느리, 누군가의 아내, 누군가의 엄마, 이렇게 여러 가지 역할이 생기니까 나한테 투자할 시간이 없더라.” ( ‘열아홉 살 마음으로 돌아가게 됐다’고 전하며, M 씨, 여)


dsun@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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