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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꿈밤]그의 방황은 끝나지 않았다…명문대 출신 개그맨의 인생 실패기
[<편집자 주> 젊음은 꿈을 먹고 사는 존재라고 합니다. 그런데 그 꿈, 참 녹록치 않습니다. 꿈이 뭔지, 주변 시선이, 부모님에 대한 미안함이, 내 안의 불안함이 결국 발목을 잡곤 하지요. 그 꿈이라는 녀석 언제 어디서부터 어떻게, 시작해야 할지도 잘 모르겠는걸요. 이대로 괜찮은지도 말이지요. 꿈이 빛나는 밤(꿈밤)은 꿈을 꾸는 모든 이들의 이야기 장터입니다. 차근차근 꿈을 ‘증명’해 나가는 이들의 이야기입니다.]

[꿈밤=주디]영국의 소설가 자넷 윈터슨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자신이 어떤 위험을 감수하는지를 보면 스스로 무엇을 가치 있게 여기는지 알게 된다고 말이죠. 그런데 하수상한 시절 탓인지 요즘 젊은 사람들은 도전하고 부딪혀라, 아프니까 청춘이라는 말이 오히려 화가 난다고도 하는데요. 여기 자신의 이야기를 성공보다는 실패를 알려주는 데 써달라는 청년이 있습니다. 소위 ‘스카이(SKY)’라 말하는 명문대에 들어간 뒤로 10여년을 나그네처럼 방황했다는데 그 여정이 낭만적이지는 않았다고 합니다. 인생에서 리셋 버튼을 몇 번은 눌렀다는 김용재(34)씨의 이야기. 한 번 들어보시겠어요?
사진=꿈밤

몸무게가 100kg는 족히 넘을 듯한 풍만한 덩치의 사내가 바바리코트를 입고 무대 위에 선다. 귀에 익숙한 스티브 바라캇의 노래가 깔리고 사내는 겸연쩍은 듯 진한 눈썹을 팔자 모양으로 씰룩거리며 웃는다. “안녕하세요. 신촌 연세대를 졸업하고 개그맨이 네 번째 직업인 꿈을 찾아 떠돌아다니는 ‘나그네킴’입니다.”

세상에 그를 처음 알린 캐릭터였다. 지난 2012년 MBC 공개 코미디 프로그램 <코미디에 빠지다> 중 개그맨 박명수가 신인 개그맨을 가르치는 ‘거성사관학교’에 모습을 드러낸 것이다. 그런데 용재씨는 가발을 쓰고 분장을 하는 여느 개그맨들과는 달랐다. 당시 먹성 좋은 김준현이 인기가 좋다길래 살을 더 찌웠을 뿐. 나그네킴은 김용재 바로 자신이었다.

“무대 위에 서는 공연식 개그 프로그램이면 연기를 좀 해야 하는데 저는 연기를 하면 사람들이 숨막히게 어색하다고들 하더라고요. 연기를 못해서 화면에 뒷모습만 나가곤 했어요. 안되겠다 싶어 고민을 하다 친구들이 나는 자학하는 모습이 가장 웃기다고 해서 그간의 방황 스토리를 담아 탄생한 것이 나그네킴이었습니다.”
나그네킴 활동시절의 김용재씨(사진=꿈밤)

공부는 수재 소리를 들을 정도는 아니지만 곧 잘 했다. 재수 없이 연세대 간판을 딸 정도였으니 부모님의 기대도 컸다. 그런데 뭘 하고 싶은지 도통 갈피를 못잡았다. 성적에 맞춰 선택한 독어독문학은 글귀만 겨우 읽을 정도로 흥미가 없었다. 요즘은 초등학생 때부터 적성을 찾아서 준비를 한다던데, 군대를 전역하고 복학을 해서도 뭘 해야할 지 여전히 막막했다.

“학과 공부에 흥미가 없어서라고 핑계를 대고 싶지만 사실 대학 생활을 즐겨도 너무 즐겼나봅니다. 2001년에 입학해 졸업까지 꼬박 10년이 걸렸어요. 일명 ‘쓰리고’라고 하죠. 학사 경고 3번 받고 제적 위기까지 몰렸는데 총장님 도움으로 겨우 졸업했습니다.”

그 때만 해도 개그맨을 하게 될 줄은 몰랐다. 친구들처럼 정장 입고 기업에 다닌 경험이 있다. 졸업 후에 이랜드에 입사했는데 아직도 대학생 티를 못 벗었다며 눈총을 받아 3개월 만에 퇴사했다. 이듬해 SPC에 들어가 점포 관리를 맡았다. 영업 압박이 부담스럽기도 했지만 무엇보다 재미가 없었다. 여기서도 1년을 못 버티고 사표를 냈다.

그나마 과거에서 공통분모를 찾는다면 예능 PD 시험에 도전했던 것이다. 어릴 때부터 남들 웃기는 것은 누구보다 자신이 있었다. 하지만 만드는 것보다 스스로 하는 것에 소질이 있었다고 해야 하나. 수차례 예능 PD 시험을 치렀지만 계속 고배를 마셨다. 오히려 중간에 머리 식힐 겸 봤던 KBS 개그맨 시험에서는 최종 면접까지 올라가기도 했다. 이 길이 내 길이라는 걸 일찍 알았어야 했는데...

그래도 학력도 있고 선뜻 개그맨이 돼야겠다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PD를 준비하면서 공부했던 게 있으니 기자 시험을 보자 마음먹었다. 서른 한 살이 되던 해에는 시사 월간지에 인턴 기자로 들어간 적도 있다고.
사진=꿈밤

“나이도 많고 덩치도 커서 편집장 눈치가 많이 보였어요. 구석 자리에서 자료 조사하고 있으면 까마득하게 어린 선배가 와서 어깨를 툭툭 치며 위로해주곤 했죠. 친한 선배가 제가 쓴 글을 보고는 최악이라고 이런 식이면 기자되기 힘들다고 하더라요. 그 때 생각하면 참 서글펐어요. 그런데 개그맨이 된 후 몇 년 전에 그 언론사에서 인터뷰도 하고 개그맨 체험 수기까지 썼어요. 사람 일이라는 게 어떻게 될지 모른다는 말이 딱 맞죠.”

언론사 시험도 영 결과가 좋지 못했다. 함께 술마시던 친구와 자포자기한 심정으로 MBC 개그맨 공채 접수 마감 마지막 날에 원서를 냈다. 그런데 진짜 덜컥 붙어 버렸다. 김용재의 이름 석자 옆에 달린 것은 PD도 기자도 아닌 개그맨이었다. 즐기는 사람이 노력하는 사람을 이긴다더니. 개그맨 됐다는 말에 어머니는 믿지 못하겠다는 듯 웃기만 하셨다.

“어떻게 붙었냐고요? 개그맨 시험 준비하는 친구들이 들으면 화낼 것 같은데 물을 얼굴에 바르면서 ‘아이 맑아. 아이 깨끗해’라고 했어요. 남들이 들으면 말도 안 되는 개그였죠. 웃겨서가 아니라 그런 개그를 하는 지원자가 아예 없어서 신선하지 않았을까요. 나중에 감독님 말을 들어보니 웃는 모습이 호감형인 점도 한 몫 했다고 하더라고요.”

개그맨으로서의 시작도 쉽지는 않았다. 첫 6개월은 매일 아침부터 자정까지 코너를 짜고 대기업 다닐 때 받던 월급에 반에 반도 못 미치는 돈으로 혼자 자취 생활을 꾸려가야 했다. 선후배 서열도 엄격해서 툭하면 기합을 받기 일쑤였고 대부분 대학로에서 개그를 하던 사람들이라 내 편이라고 맘 붙일 곳도 없었다.

“개그맨이 되니까 오히려 대학 간판 때문에 이방인 취급을 받았어요. 너희 학교에서는 이렇게 하면 웃긴가봐 하면서 비아냥거리는 선배들도 있었고요. 같은 학교 선배인 이윤석씨마저 우스갯소리인지 당장 그만두라고 하셨죠.”

그런 용재씨의 웃픈(?) 경험담이 빛을 발했다. 나그네킴은 포털사이트 검색어 4위까지 오르며 인기를 끌었다. 면접 시험에서 수차례 낙방하고 개그맨이 되고서는 통편집을 당하며 생긴 실패담은 고스란히 개그 소재로 활용됐다.

“기업 면접에서 왜 이 회사에 들어오고 싶냐고 물어보길래 연봉이 높다고 대답했죠. 그런데 MBC 개그맨실에 들어오고서는 세금 떼고 50만원도 안되는 돈을 받고 있죠. 100% 과장 없는 실화였죠. 저로서는 웃을 수만은 없는 이야기지만 그 신세 한탄 개그가 시청자들에게 제 이름을 알리는 계기가 됐죠,”

그런데 위기는 끝이 아니었다. 겨우 개그맨 생활에 적응을 하고 자리를 잡을 무렵 MBC가 개그 프로그램을 폐지한 것. 겨우 적성을 찾아서 직장을 잡았는데 이번에는 회사가 부도난 격이다. 개그 프로그램이 없어지니 MBC 개그맨이라는 타이틀도 유명무실. 당장 먹고 사는 게 문제였다.

“SPC그룹에 다닐 때 점포 관리를 했던 베이커리에 전화를 했어요. 거기 매장에서 행사 진행을 나에게 맡겨달라고. 본사 매니저였던 사람이 갑자기 개그맨이 돼서 진행 아르바이트를 달라니 점주님도 황당했을 거예요.”

그렇게 크리스마스 이브에 베이커리 앞에서 진행 일을 하며 다시 시작했다. 마이크를 쓰면 주변에서 신고가 들어와 생목으로 악을 지르며 진행할 때도 있었다. 나름 MBC 공채 출신 개그맨인데 창피하다는 생각도 들었지만 먹고사니즘이 우선이었다. 김구라, 유재석, 김제동도 개그 프로그램 없이 이름을 알리지 않았나. 모임 자리에서 분위기를 주도하던 용재씨에게 진행은 따로 꾸미지 않아도 잘 맞는 옷과 같았다.
사진=꿈밤

6개월 정도 지났을까. 반응이 좋아 일거리가 많아졌고 가게마다 송년회 행사에서도 불러줘 오히려 코미디 할 때보다 돈도 더 많이 벌게 됐다. 지금은 ‘‘2018 평창동계올림픽’ 홍보특사 겸 리포터로 활동 중이다. 스스로 차별화를 위해 연기 공부에도 매진하고 있다고.

“평소 제가 좋아하는 노홍철씨가 암 2기일 수 있다는 판정을 받은 적이 있었대요. 그 순간 웃음이 났다고 하더라고요. 인생에 해보고 싶은 걸 다 해봤으니 여한이 없다고 말이죠. 저도 나중에 자식을 낳으면 아빠는 후회가 없다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있을 것 같아요.”

남들은 무모하다고 했다. 가진 것을 버리고 왜 다시 리셋을 하려 하냐고. 하지만 직접 해보지 않고서는 알 수 없었을지 모른다. 위기를 극복하는 법도 거기서 배웠다. 우리는 진짜 스스로 하고 싶은 게 뭔지 알고 있을까. 가보지도 않고 그 길은 어땠을까 평생 후회하느니 실패하더라도 가보는 게 낫지 않나. 실패담도 없이 성공만 좇는 우리에게 용재씨는 이렇게 반문한다.

irreplaceable7@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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