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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바람난과학] 구글이 번역해주는데, 영어 공부해야 하나요?
[HOOC=이정아 기자] “이러려고 영어 공부를 했나.”

통번역대학원 석사 과정을 마친 지인이 최근 진로를 바꾼 계기를 전하며 한 말입니다. 그는 대학에 진학하기 전부터 통번역 업무의 일부를 로봇이 대체할 것이라고 예상했지만, 그 시기가 이렇게 빨리 올 줄은 몰랐다고 말했습니다. 그는 지금도 영어 공부를 왜 해야 하는지 그 답을 찾고 있는 과정이라고 전했는데요.

우리는 언제까지 영어와 썸만 타고 있어야 하는가.

인공지능(AI)이 기계번역 시스템에 도입되면서 번역의 품질과 완성도가 크게 향상됐습니다. 15일 구글 번역기에 혜민 스님의 말인 ‘과정은 결과를 위해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과정 자체로도 이미 의미 있는 일이에요. 인생 끝에 가보기 전까지는 그 누구도 모릅니다.’라는 문장을 입력하자, 구글은 ‘The process does not exist for the outcome, but it is already meaningful for the process itself. Nobody knows until I go to the end of my life.’라고 번역했습니다. 


구글의 놀라운 번역 실력!

마지막 문장에서 다소 어색한 부분을 찾을 수 있지만, 이 정도면 문맥을 이해하는데 어려움이 없을 정도입니다. 단어만 나열하고 의미가 통하지 않았던 과거 구글의 번역 서비스와 비교하면 기가 막힌 발전인 것이죠. 구글 측은 “기존 통계 방식을 사용했던 구글 번역기에 비해 오류를 최대 85% 줄여 번역 정확도를 높였는데, 이는 지난 10년간의 성과를 단번에 뛰어넘는 결과”라고 밝혔습니다.
신조어도 문제가 없다.


뇌처럼 사고하고 판단하는 구글 번역

그렇다면 구글은 어떻게 이같이 매끄럽게 번역을 해낼까.

과거에는 다양한 언어 자료를 통계화해 번역하는 기술과 문법을 규칙으로 만들어 번역하는 기술이 활용됐습니다. 단어와 구문을 개별적으로 1:1 번역해 조합하는 방식입니다. 이렇다 보니 문장이 부자연스러운 경우가 많았습니다. 예를 들어 호수에 떠다니는 ‘백조(swan)’를 숫자인 ‘100 trillion’이라고 번역할 정도였으니까요.

필리핀어로 피카츄를 입력하면 배트맨(batman,영어)으로 번역된 적도 있었다.

그런데 이번에 구글이 번역 시스템에 도입한 ‘인공신경망 기계 번역(NMT·Neural Machine Translation)’ 기술은 이세돌 9단을 이긴 인공지능 ‘알파고’가 바둑을 배울 때 사용한 머신러닝(기계학습) 기술입니다. 이는 한 마디로, 컴퓨터 프로그래밍을 수많은 신경망으로 이뤄진 인간의 뇌 구조와 비슷하게 해 데이터를 스스로 학습하고 이를 바탕으로 새로운 정보를 얻어내는 방식입니다.

원리를 간단히 설명하면, NMT 기술은 언어를 쪼개지 않고 일단 문장을 통째로 번역합니다. 구글 번역기의 ‘1번 뇌’가 하는 역할입니다. 그 다음 가장 관련성이 높은 결과를 추리고, 다시 사람이 말하는 문장으로 재구성합니다. 이 부분은 ‘2번 뇌’가 하는데요. 이 두 개의 뇌가 서로 긴밀하게 연결돼 있다 보니 구글은 ‘사과를 한다’와 ‘사과를 먹는다’, 이 두 문장에서 쓰인 ‘사과’라는 단어가 다른 의미로 쓰였다는 것을 비교적 완벽하게 구분한 뒤 문장을 통째로 번역할 수 있습니다.

아주 쉽게 설명해서 기존 구글 번역 시스템에 파란색 동그라미 부분만 있었다고 치면, 이번 업그레이드 버전은 빨간색과 연두색 동그라미도 추가된 형태라고 볼 수 있다. 이 동그라미 하나가 하나의 뉴런인 셈. 신경망이 촘촘해질수록 더 정교한 번역이 가능하다. / 디자인: 홍윤정 디자이너

구글 번역이 모든 문장을 완벽하게 해석하는 건 아직 아니지만, 기계번역은 데이터가 많아질수록 성능이 개선되는 구조입니다. 여러분들이 글을 읽고 있는 지금 이 순간에도 구글 번역 시스템이 기계학습을 하고 있다는 점을 비춰보면 기계번역이 실용화되는 시기는 시간문제인 것이죠. 허명수 한동대 국제어문학부 교수(한국번역학회장)은 “이런 발전 속도라면 5년 내 세계 주요 국가의 도시를 여행할 때, 인공지능 음성인식 통번역 시스템을 갖춘 스마트폰 하나만 있으면 의사소통을 하는데 어려움을 전혀 겪지 않을 것으로 본다”고 예측했습니다.


구글이 번역 다 해주는데…영어 공부해야 할까?

원하든 원하지 않든 우리는 계획도, 통제력도, 브레이크도 없이 컴퓨터가 영어를 통번역하는 새로운 세기에 밀어붙여지고 있습니다. 그래서 이 글에서 ‘진짜’ 하고 싶은 질문은 사실 단 한 가지입니다. 인공지능 번역 기술 덕분에 우리는 더 이상 외국어 공부를 하지 않는 시대를 맞이하게 될까. 이 질문은 달리 표현하면, 지금 하고 있는 영어 공부법이 과연 맞느냐하는 겁니다.

단순히 정보 전달만을 위한 외국어 번역이라면 지금도 이미 다양한 통번역 기계로 해결할 수 있습니다. 현재 여러 번역회사에서 초벌 번역 작업 과정에서 기계를 통해 쉽게 번역하고 번역사가 이를 검토하는 수준에 이르러 있는데요. 여기에 인공지능 번역 기술이 도입됐으니, 통번역사가 단지 언어만 번역하는 시대는 곧 종말을 맞게 될 겁니다. 그 시기가 언제 즈음이냐하는 문제인 것이죠.

이럴 걱정이 없다. 통번역해주는 애플리케이션이 나오고 있으니까...

그런데 영어를 단지 번역 수준으로 국한시켜 이야기하기 어려운 부분이 있습니다. 예를 들어 어떤 번역가가 16~17세기 영어와 현대 한국어를 모두 완벽하게 구사하는 사람이고, 셰익스피어에 대한 비평적 안목을 갖춘 사람이라고 치더라도 말입니다. 한국어가 세계를 담는 방식과 영어가 세계를 담는 방식은 똑같지 않아서, 그의 해석을 거친 한국어판 ‘햄릿’은 영어판 ‘햄릿’을 고스란히 옮길 수 없습니다.

17세기 이래 프랑스에 널리 퍼진 비유를 빌면 한국어에 너무 다가간 한국어판 ‘햄릿’은 ‘부정한 미녀’가 되고, 영어 쪽에 바짝 붙은 한국어판 ‘햄릿’은 ‘정숙한 추녀’가 되는 것이죠.

실제로 대중문화의 첨단을 달리는 영화, 드라마 등 영상물의 경우 원어의 유머와 뉘앙스를 살리기 위해 과감한 의역을 하곤 합니다. 어린 프랑스 왕비를 현대의 10대처럼 표현한 영화 <마리 앙투아네트>에선 ‘훈남’ ‘대략 난감’ 같은 표현이 나오고, 영화 <박물관이 살아있다>에서는 당시 코미디 프로그램에서 쓰던 “그런 건 옳지 않아!”라는 유행어가 나왔습니다.

불과 30여년 뒤 이야기다.

허 교수는 “언어 안에 내포된 문화와 사상, 뉘앙스, 유머 등 다양한 인간 지능(인공지능이 아닌)을 전달하는 각 분야에서 통번역사는 필요하다”며 “이들은 생생한 의미를 전달하거나 혹은 현지어로 재창조해 기계가 하지 못하는 역할을 감당할 것”이라고 설명했습니다.

이렇다 보니 이제는 정해진 답안을 찾는 영어 공부가 더 이상 의미가 없습니다. 올해 1월 다보스 세계경제포럼의 ‘일자리의 미래 보고서’는 30년 후 인공지능이 인간을 대신할 직업군으로 통번역가를 비롯해 의사, 변호사, 기자, 세무사, 회계사, 감사, 재무 설계사, 금융 컨설턴트 등을 꼽았습니다. 분명한 사실은 이들 직업군의 역할은 지금보다 축소될 것이고 우리는 영어와의 관계를 다시 설정해야만 한다는 겁니다.

이에 대해 이혜정 교육과혁신연구소 소장은 “단순히 암기하는 방식의 영어가 아니라 콘텐츠를 담아내는 하나의 그릇이라고 이해하고 영어 공부를 해야한다”고 설명합니다. 4차 산업혁명 시대는 과학적인 근거를 바탕으로 논리적이고 창의적인 답을 이끌어 내는 사고력이 단순 암기보다 더 중요한 시대가 될 것이기 때문인데요. 어쩌면 머지 않아 ‘국·영·수’가 아니라 ‘국·컴·수’가 주요 과목으로 등장할지도 모를 일이라고 이 소장은 덧붙였습니다.

dsun@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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