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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HOOC간다] ①박근혜 올림머리에 대한 도발적 체험기
[HOOC=이정아 기자] 세월호가 가라앉던 2014년 4월 16일, 박근혜 대통령이 승객 구조 대책을 마련하는 대신 강남의 유명 미용사를 청와대로 불러 ‘올림머리’를 하는 데 90분 이상을 허비했다는 보도가 나왔다. 그런데 청와대는 대통령 머리 손질에 걸린 시간은 20분 정도였다고 반박했다. 청와대의 해명은 과연 사실일까.

7일 팀원들과 아이템 회의를 하던 중, 박 대통령의 올림머리를 하는데 시간이 얼마나 소요되는지 검증해 보자는 제안이 나왔다. 대통령 전담 미용사가 원장으로 있는 서울 강남구 청담동 소재 헤어샵으로 전화를 걸었다. 원장 예약은 꽉 차 있다는 답변이 돌아왔다. 아쉬운 마음에 다른 디자이너에게 머리 손질을 받아도 된다고 전하자 “다음날 오전 11시, 예약이 됐다”는 말이 돌아왔다.

이 기자는 곧 이그네 씨(28)가 됩니다.

전화를 끊고 나서야 형언할 수 없는 감정이 북받쳐 올라왔다. 돌이켜보건데 그 감정은 분명 내 생애 아름다운 순간에 찾아온 투명한 슬픔이었으리라. 투표를 잘 못하면 이런 일이 생긴다. 이날밤 나는 비정상적으로 잠을 설쳤다.

나는 오늘도 남몰래 눈물을 흘린다.

다음 날인 8일, 오전 10시 45분. 조금 일찍 도착한 헤어샵. 애써 덤덤한 척 미소를 지었지만 입술은 파르르 떨렸다. 퍼스트레이디 시절부터 올림머리를 유지한 박 대통령의 독보적인 헤어스타일링에 감히 도전장을 내밀었으니, 난 내일도 살아야 한단 말이다. 잠시 숨을 고를 시간이 필요했다. 그 순간이었다.

“손님, 어떤 스타일로 해드릴까요?”

정적을 깨고 훅 들어오는 군더더기 없는 한방. 찰나의 시간이었지만 나는 번뇌했다. 쫄지 말자.

“아…. (박 대통령 사진을 보여주며) 이 머리 해주세요!”


있는 힘을 다해 세상에 내뱉은 고함이었다. 그런데 디자이너 선생님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저 나를 가장 구석에 있는 자리로 안내할 뿐. 내가 부끄러워서 가장 구석에 있는 자리에 앉힌 것인지 묻고 싶었지만, 입을 다물었다. 모발을 스치는 디자이너의 손길에서 이내 느껴졌기 때문이다. ‘고(故) 육영수 여사의 이미지와 현대적 이미지를 적절히 조화시킨 박 대통령의 올림머리 스타일을 정확하게 이해하고 있어요.’ 그는 진지했다.

디자이너는 드라이기로 머리카락 뿌리 부분에 따뜻한 열을 가하며 모발을 굵게 말기 시작했다. 올림머리의 생명인 볼륨감을 넣기 위한 1단계 과정이었다. 이어 롤이 굵은 고데기로 모발 뿌리 부분을 다시 둥글게 말아 아래로 쓸어내렸다. 이른바 ‘뽕’을 넣기 위한 2단계다. 이 작업은 18분간 계속됐다. 나는 드넓은 초원 위 부스스한 모습을 하고 있는 한 마리의 사자로 변신해갔다.

아프리카 푸른 초원의 한 마리 사자(?)이고 싶다.

머리카락에 볼륨을 넣는 과정은 계속됐다. 디자이너는 롤이 가는 고데기로 뿌리를 더 동글동글하게 말아내는 3단계 과정을 거친 뒤, 머릿결 반대로 빗질을 했다. 더 풍성한 볼륨감을 연출하기 위해서다.

이윽고 헤어스프레이가 모발을 촉촉하게 적시는 4단계 과정에 다다르게 됐고, 그제서야 깨달았다. 대통령의 올림머리는 뽕을 무한히 살리는 무한궤도 과정의 연속이로구나. 온 우주의 미용실 기운을 받아 뽕을 잘 살리겠다 하는 그런 마음으로 계속 하다보면 이산화탄소를 활용한 롤업으로 이렇게 머리를 하면 잘 할 수 있다는 마음가짐을 가질 수 있었다. (머리스타일링이 완성될수록 나는 점점 박 대통령의 화법을 구사하기 시작했다.)

그때였다. 어디선가 들려오는 거친 숨소리. 큭, 크흑. 올림머리 손질을 시작한 지 34분이 지났을 즈음이었나, 디자이너 옆에서 보조업무를 하는 한 분이 거울에 비친 내 모습을 보고 웃다가 낸 소리였다. 그 옆에 있던 또 다른 분은 하흑하흑 했다. 빠르게 진동하며 내는 높은 소리는 나의 귓가를 강하게 때렸다. 애써 어색한 미소를 지어보였는데, 디자이너는 그런 그들에게 웃지 말라고 혼을 냈다. 분위기는 사뭇 진지해졌다. 그대들 모두에게 미안했다.

박 대통령 올림머리 스타일에 더 완벽해질수록 머릿속은 복잡해졌다. 나는 왜 ‘업무시간’에 머리 손질을 받고 있는 것인가. 근본적인 질문이 꼬리에 꼬리를 물었다. 디자이너는 “대통령의 올림머리를 해달라고 박 대통령의 사진을 들이민 사람은 손님이 최초”라고 했다. 다시 질문해야 했다. 나는 왜, 업무시간에, ‘박 대통령의 올림머리’를 하고 있는 것인가. 박 대통령의 스타일링을 높이 기리는 것은 앞으로 우주로 나아가거나 에너지를 분산시키는 데 가장 큰 자산이 되는가, 하는 것은 국민의 애환을 달래주기 위해서라도 사퇴를 해주세요. 제가 방금 뭐라고 했습니까. 혼란스러웠다.

그 즈음 드디어 대통령 올림머리의 핵심인 ‘소라모양’을 만들기 위한 머리카락 꽈배기처럼 말기 작업이 시작됐다. 22개의 핀이 디자이너 선생님의 정성어린 손길을 거쳤다. 소라머리를 지탱하는 수많은 머리카락 올들 사이로 한땀한땀 핀이 꽂혀졌다. 핀 하나에 창조를, 핀 하나에 융합을…. 


그렇게 의식이 희미해질 때 머리 손질이 끝났다는 디자이너의 낭랑한 목소리가 들렸다. 검증 결과 대통령의 올림머리를 하는 데 걸린 시간은 70분. 가격은 15만원.

소라머리는 분명 단아하고 우아한 이미지를 만드는 묘한 매력을 가진 머리스타일임에는 분명했다. 내심 30년이 지난 뒤에 이 머리를 하면 꽤 괜찮겠다는 생각을 했었다고 고백한다.

내가 이럴려고 올림머리를 했나... 

그러나 잎새에 이는 바람에도 나는 괴로웠다. 이 땅위에 두발 디디고 살면서, 업무시간에, 다른 사람들의 눈치도 보지 않으며, 70분간 머리 손질을 받을 수 있는 직장인은 흔하지 않다. 그 사실이 나를 더 비참하게 했다. 평일 오전 11시부터 한 시간 내내 머리 손질을 받고 있는 손님은 이 헤어샵에서 나 뿐이었다. 드라이기 바람에 일렁이는 내 모발을 보고 있자니 자괴감은 더 커졌다.

일해야 하는 시간에 머리 손질을 받았던 박 대통령도 나와 같이 마음이었을까. 올림머리를 하고 핀을 뽑고 머리를 감는 90분 동안, 그리고 글을 쓰는 지금도 나는 감히 대통령의 마음을 헤아릴 수 없다. 


※이후 올림머리 ‘해체 수순’을 밟으며 핀을 뽑고 머리를 감는데 20분이 걸렸던 걸 감안하면, 올림머리를 하는데는 하루 총 90분이 걸린다. 이날 기준 박 대통령의 재임기간은 1383일. 그렇다면 박 대통령이 청와대에 입성한 뒤 지금까지 올림머리 손질을 받는데 보낸 시간은 86일로 추정된다.

dsun@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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