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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무작정 자전거 국토종주] 3. 우리는 무엇을 위해 달리는가
[HOOC=정진영 기자] 11월 12일. 불야성이었던 여주시청 부근 ‘한글시장’ 골목은 아침에는 고요했다. 아침 식사를 먹을 만한 곳은 김밥집이 전부였다. 간단히 식사를 마친 기자는 ‘강천보’ 인증센터로 향했다. 진통제를 먹어도 엉덩이와 손바닥의 통증은 여전했다. 그저 통증에 익숙해질 뿐이었다. 따스한 햇볕이 내리쬐이는 곳은 여전히 파릇파릇했다. 국토의 아래 쪽으로 향할 수록 확실히 몸으로 느껴지는 기온이 달라지고 있었다.


숙소에서 ‘강천보’ 인증센터는 가까운 곳에 있었다. 인증센터에서 수첩에 인증도장을 찍는 일은 질리지 않고 즐겁다. 인증도장을 찍는 일은 지쳐 있을 때 포기하지 않고 페달을 밟는 동기를 부여해주는 중요한 일이다.

이런저런 풍경을 눈에 담으며 페달을 밟다보니 어느새 강원도 원주시에 진입했다. 경기도를 벗어나자 비로소 먼 곳에 온 느낌이 들었다. 원주는 사실상 수도권과 생활권이 가까운 도시이지만, 강원도는 늘 멀게 느껴지는 곳 아닌가. 자전거 페달을 밟아 강원도에 도달하니 비로소 국토종주를 하고 있다는 실감이 났다.


원주에 진입한 지 얼마 되지도 않았는데 충북 충주시를 알리는 표지판이 나왔다. 지도를 살펴보니 이 지점은 경기도와 강원도, 충청북도가 만나는 지점이었다. 충주시계에 진입했다고 충주인 것은 아니다. 충주는 정말 넓다. 미니벨로의 페달을 종일 밟아도 벗어나기 어려울 정도로 말이다.

기자는 충주시에 진입한 뒤 한참을 달려 ‘비내섬’ 인증센터에 도착했다. 비내섬은 드라마 촬영장으로 유명해, 관광버스들이 수시로 드나들고 있었다. 기자는 비내섬 휴게소에 잠시 앉아 앞으로의 행보에 대해 고민했다. 가장 가까운 숙소는 ‘충주 탄금대’ 인증센터 부근에 있었다. 현재 주행속도를 감안하면 ‘충주 탄금대’ 인증센터에는 초저녁께 도착할 것 같았다. 숙소를 잡기에는 다소 이른 감이 없지 않았다.


‘충주 탄금대’ 인증센터 이후에 숙소가 위치한 곳은 ‘수안보 온천’ 인증센터 부근이었다. 수안보는 탄금대에서 거의 30㎞ 이상 떨어져 있었고, 지도를 살펴보니 외진 길이 많았다. 자전거 국토종주 코스에서 가장 난코스로 꼽히는 구간은 수안보 바로 다음 구간인 이화령이다. 야간 라이딩을 해 밤늦게 도착하더라도, 수안보에 도착해야 다음날을 위한 체력안배가 이뤄질 것 같았다. 고민 끝에 기자는 수안보로 향하기로 결정했다.

날이 쌀쌀해지고 볼만한 풍경이 드물어진 계절이기 때문인지, 길에서 라이더들을 마주치는 일이 많지 않았다. 하지만 같은 길을 달려가는 사람들이 아예 없는 것은 아니었다. 그들과는 때로는 가벼운 목례로, 혹은 긴 대화로 짧은 인연을 맺었다. 짧은 인연에서도 생각할 거리와 느낀 바가 많았다.


자전거를 타고 달리다 보면 오가는 라이더들과 가벼운 인사를 하는 경우가 많다. 이날 한 초로의 라이더가 기자에게 많은 말을 걸었다. 그는 서울에서 출발해 충주에 도착한 상황이었다. 그의 목적지는 기자와 같은 부산이었다. 그는 기자에게 “어떻게 그 작은 자전거로 부산까지 갈 생각이냐”며 우려를 표했다. 그는 엉덩이가 너무 아파 충주역에서 다시 서울로 돌아가야 하나 고민을 하고 있었다. 그는 내심 기자와 함께 국토종주를 하기를 원하는 눈치였으나, 기자의 자전거는 미니벨로였고 그의 자전거는 고급 MTB였다. 게다가 기자는 사진을 수시로 촬영하며 천천히 이동하고 있었기 때문에 그와 속도를 맞추는 게 불가능했다. 기자는 이런저런 사정을 설명하며 그를 먼저 떠나보냈다.

그와 헤어진 후 기자는 코스 중간에 마련된 쉼터에서 초코바를 먹으며 쉬다가 흥미롭고도 안타까운 대화에 잠시 끼어들었다. 기자의 뒤로 20대 후반으로 보이는 청년 두 명이 쉼터로 들어왔다. 대화를 엿들어보니 이들은 취업준비생들이었다. 이들은 국토종주 중이었는데, 국토종주를 하며 수첩에 인증도장을 모두 찍어 인증메달을 받으면 취업스펙에 도움이 될 지도 모른다는 기대를 하고 있었다. 그 말에 놀라 나는 잠시 대화에 끼어들었다.


기자는 신분을 밝히고 이들에게 이것저것 더 물어봤다. 그러자 더 놀라운 이야기가 이들의 입에서 더 튀어나왔다. 인증수첩을 대량으로 구매한 뒤 전국의 인증센터를 다니며 도장을 찍어 취업준비생들에게 판매하는 이들도 있다는 것이었다. 진위를 확인해봐야 할 발언이긴 하지만 매우 충격적이었다. 그런 목적을 위한 국토종주는 과연 무슨 의미인가. 그리고 경험하지 않은 경험을 취업 스펙으로 내세우는 것은 또 무슨 의미인가. 행복해지기 위한 달리기가 왜 불행해지지 않기 위한 도망치기로 변질된 것인가. 이들이 문제인 것인가, 아니면 이런 생각을 할 수밖에 만든 사회가 문제인 것인가. 기자의 머릿속이 복잡해졌다.

기자는 해가 저물어 갈 무렵에 조정지댐에 도착했다. 조정지댐 근처의 이정표는 충주댐과 탄금대를 각각 가리키고 있었다. 충주댐은 국토종주에선 거쳐 갈 필요가 없는 목적지이다. 국토종주를 위해선 바로 탄금대로 향해야 한다. 그런데 충주댐으로 향하는 자전거 도로는 ‘국토종주’라는 표시가 돼 있었고, 탄금대로 향하는 자전거 전용도로 데크에는 그 표시가 없었다. 고민 끝에 기자는 탄금대로 향하는 자전거 도로를 선택했다. 그것은 큰 실수였다.

기자가 선택한 구간에는 자전거 도로가 제대로 조성돼 있지 않은 구간이 적지 않았다. 게다가 차량 통행이 많은 길이 대부분이었다. 자전거를 타고 가기에는 다소 위험한 길이었다. 중간에 길도 헤맨 끝에 겨우 ‘충주 탄금대’ 인증센터에 도착했다.


‘충주 탄금대’ 인증센터에선 새로운 길이 시작된다. ‘아라서해갑문’에서 시작된 ‘한강종주자전거길’은 여기에서 끝난다. 여기에선 ‘새재자전거길’이 새로 시작된다. 기자가 ‘충주 탄금대’ 인증센터에 도착한 시간은 오후 6시께였다. 숙소를 잡기엔 너무 이른 시간이었다. 기자는 잠시 고민을 하다가 ‘수안보 온천’ 인증센터를 향해 야간 라이딩을 하기로 결심했다.

야간 라이딩의 장점은 아무 생각 없이 라이딩에 집중할 수 있다는 점이다. 하지만 단점이 많다. 우선 어두워서 경치는 아무 것도 보이지 않는다. 게다가 수도권을 벗어나면 코스에 조명도 제대로 설치돼 있지 않아 전조등 하나에 의지해 어둠 속을 달려야 한다. ‘수안보 온천’ 인증센터로 향하는 코스에는 비포장도로뿐만 아니라 오르막길도 많았다. 너무 지쳐서 잠시 길 위에서 쉬다가 하늘을 올려다보니 많은 별들이 보였다. 별 볼일 없는 세상에서 살다가 이제야 겨우 별을 보게 되다니……. 야간 라이딩의 피곤과 짜증이 잠시나마 누그러졌다.


한참을 달린 끝에 겨우 ‘수안보 온천’ 인증센터에 도착했다. 수안보는 관광지답게 화려한 조명을 자랑했다. 화려한 조명은 곧 숙소도 많다는 이야기와 같다. 기자는 맨 처음 눈에 띄었던 숙소에 여장을 풀었다. 기자는 자전거 국토종주를 떠날 때 짐을 최소한으로 챙겼다. 이 때문에 여벌의 옷이 많지 않아, 목욕을 마친 뒤 빨래를 했다. 온 몸이 쑤셔왔지만 빨리 잠들어야 했다. 내일 첫 코스가 이화령이니 말이다.

123@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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