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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HOOC간다]7일간의 만삭체험기③…남자, 만삭으로 대중교통 이용하다
<디지털, 모바일 온리를 위해 만들어졌지만, 아직 디지털 콘텐츠는 1도 잘 모르는 기자들이 일하는 미디어 랩 HOOC. [HOOC간다]는 평범한 소재에서부터, 희한한 대상까지, 색다른 관점과 디지털 문법으로 공감을 전하는 HOOC의 체험 콘텐츠입니다. 그 첫 번째는 1주일의 만삭체험에 나선 남편이자, 예비 아빠의 체험 이야기 입니다. >

[HOOC=서상범 기자] 7일간의 만삭체험 동안, 가장 눈물이 났던 순간을 꼽으라면 잠을 자는 것이었다. 무거워진 배가 장기를 압박하고, 똑바로 누울 수가 없어 이리저리 뒤척이다 결국 쇼파에 앉아 30분 정도 눈을 감은 채 출근을 해야 했다. 그러나 이 못지않게 힘들었던 것이 대중교통을 이용하는 것이었다.

기자는 평소 자가용을 이용해 출퇴근을 하는데, 만삭체험을 하는 동안은 마을버스와 지하철을 이용했다. 기자의 집은 마포구 공덕역에서 걸어서 15분가량 걸리는 곳이다. 회사는 용산구 후암동이라 거리는 멀지 않다. 하지만 한 번에 바로 가는 대중교통이 없어, 지하철을 한 번 갈아타야 한다. 회사 역시 지하철역과는 거리가 꽤 있어 10분정도 걷거나 마을버스를 이용해야 한다.(여러분, 집이든 회사든 역세권에 위치한 곳이 최고입니다) 
만삭의 몸으로 대중교통을 이용한다는 것은, 엄청난 용기와 고통이 수반된다. 만삭체험에 나선 기자가 자리에 앉아 흐르는 땀을 닦고 있다.

전쟁 같은 출근 준비를 마치고 집 문을 나서면 한숨부터 나온다. 아파트가 꽤 언덕에 위치해서 지하철역까지는 경사 30도의 내리막길을 거쳐야 하기 때문이다. 무거워진 몸을 이끌고 내리막길을 걷다보면 혹시나 무게로 인해 앞으로 넘어질까하는 걱정에 종종 걸음을 해야 했다. 무릎으로 전해지는 하중 역시 고통스러웠다. 그렇게 지하철역까지 도착하면 이제 본격적인 전쟁이 펼쳐진다.

우선 첫 번째 난관은 계단이다. 에스컬레이터를 이용하면 조금 수월하겠지만, 기자가 이용하는 출입구에는 이런 편의장치는 없다. 엘리베이터가 있긴 하지만, 출입구와는 100미터 정도 떨어진 거리에 있어 바쁜 출근 시간에는 이용할 엄두를 내지 못했다. 그동안은 굳이 이런 편의장치를 이용할 필요성을 못 느꼈던지라, 출입구마다 에스컬레이터를 설치하는 일부 역의 모습을 보고 “이게 무슨 예산 낭비인가, 걸으면 운동도 되고 좋은 것 아닌가”라는 생각을 하기도 했었다.(생각해보면 이는 지극히 편협한 사고였다. 5일 동안 지하철 역 계단을 오르내리면서 지하철 공사 측에 임산부를 무시하는 거냐고 항의메일을 보낼까 생각했었다)
의외로 지하철역에는 에스컬레이터나 엘리베이터가 갖춰져있지 않은 곳이 많다. 끝도 없는 계단을 오르내리다보면 내가 이럴려고 만삭체험을 했나라는 자괴감도 느낀다

출발지인 공덕역과 도착지인 숙대입구역의 출입구 계단, 그리고 환승역인 삼각지역의 계단을 합치면 오롯이 출근하는 데만 오르내리는 계단이 200개에 달했다. 보통 건물 한 층을 오르는데 계단이 20여개라고 가정한다면 출근길에만 매일 10층짜리 건물을 올라가는 것이다.(계단을 오르내리는 것이 너무 힘들어서 에스컬레이터가 있는 출입구로 돌아가 봤더니, 시간이 너무 오래 걸려서 딱 한번만 시도하고 포기했다) 끝도 없는 계단을 오르내리다보면, 내가 이럴려고 만삭체험을 했나하는 자괴감도 느낀다. 

이렇게 계단과의 사투를 벌이고 지하철 승강장에 도착하면 서있을 기운도 없다. 그러나 출근길의 지하철역은 저마다 찌푸린 얼굴로 전쟁터로 나가는 직장인들로 가득차 잠시 앉을 공간도 찾기 어렵다.

지하철 도착을 알리는 알람소리가 들리면 또다시 마음이 무거워진다. 기자의 출근길인 공덕역은 콩나물 시루정도는 아니지만, 앉을 자리를 기대하는 것은 사치일정도로 꽤 많은 사람들이 이용한다. 
만삭으로 지하철을 이용하다보면, 나도 모르게 하늘을 보고 심호흡을 깊게 내쉬게 된다.

사람들로 가득 찬 열차에 발을 올리는 순간 내 눈은 자동적으로 노약자석과 임산부 배려석으로 향했다. 하지만 5일 동안 출퇴근을 하면서 두 곳 모두 비워진 모습을 본 적은 없었고, 자리를 양보 받은 경험도 없었다. 특히 핑크색으로 표시된 임산부 배려석의 경우 보건복지부와 인구보건복지협회가 자리 비워두기 운동을 꽤 오래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임산부와는 거리가 있어 보이는 일반 시민들이 이용하는 모습이었다.

사실 만삭의 몸으로 대중교통 체험을 계획하면서 가장 조심스러웠던 것이 자리의 양보 부분이었다. 기자는 체험을 하고 있을 뿐이지, 실제 임산부가 아니기에 자리 양보를 받지 못한다고 해서 이를 비판하기는 어렵지 않나 라는 판단이었다.

또 만삭 장비를 한 모습이 워낙 낯선 장면이기 때문에 이를 목격한 승객들이 어떤 반응을 보일지도 조심스러운 부분이었다. 실제 내가 선 자리에 앉아있는 승객은 내 모습을 보고 이걸 어떻게 판단해야 하는지 불안한 눈빛을 보이기도 했고, 연배가 있으신 어르신들은 “저 놈이 무슨 미친X인가”하며 경악스러운 눈빛을 감추지 않으시기도 했다.
만삭체험 장비를 한 기자를 보는 어르신들의 흔들리는 눈빛이 딱 이랬다(사진=MBC 무한도전 캡쳐)

때문에 이 부분은 임산부 배려석 캠페인을 진행하는 인구보건복지협회의 입장을 통해 대신 설명하려 한다. 협회 측이 실시한 ‘임산부배려 인식 및 실천수준 설문조사’에 따르면 임산부 10명 중 6명 정도만 지하철 등 대중교통에서 배려를 받은 경험이 있는것으로 나타났다고 한다. 아직도 대중 교통에서의 임산부에 대한 배려가 정착되고 있지 않은 것이 현실이다.

특히 최근에는 노약자 석에 앉아있던 임산부에게 “왜 거기 앉아있냐, 임산부가 맞는지 확인해봐야겠다”는 폭언을 던진 한 노인의 사례도 있었다.(임신을 한 아내가 있는 남편으로서, 이 뉴스를 보고 피가 거꾸로 솟는 경험을 했었다)

그러나 임산부가 되어 대중교통을 이용한다는 것은 앞서 말한대로 큰 용기와 고통이 필요하다. 신체적인 고통은 물론, 사람들로 가득찬 공간에서 혹시나 뱃속의 태아가 영향을 받을까 걱정돼 온 신경이 곤두선다. 단순히 임산부 한 명을 위한 배려가 아닌, 태아라는 보호받아야 할 존재를 위한 배려와 양보가 필요한 것이다.
사진=SBS 뉴스 캡쳐

여기에 만삭 임산부만큼이나 중요한 것이 임신 초기 임산부에 대한 배려다. 인구보건복지협회에 따르면 초기 임산부들은 유산의 위험과 입덧과 구토, 과다한 피로감 등 신체ㆍ정신적 어려움을 겪고 있으나, 외견상으로 잘 표시가 나지 않아서 배려를 받지 못하고 있다고 한다. 임신 7개월인 기자의 아내 역시 초기에 대중교통을 탈 때면 자리를 양보해주는 이가 없어서 무척 힘들었다고 한다.

그렇다고 “제가 임산부인데, 자리를 좀 양보해주실 수 있을까요?”라고 말을 건네기도 어려운 것이 현실이다.(그러니까 핑크색 임산부 뱃지를 착용하고 있는 분들을 보면, 배가 부르지 않았어도 배려의 미덕을 실행해주셨으면 한다)

또 지하철에 비해 버스의 경우는 자리를 양보하는 경우가 더욱 덜하다.실제 기자가 지하철에서 내려 회사까지 마을버스를 타고 가는 동안 자리를 양보받은 경험은 없었다. 아무래도 좌석이 한정돼있고, 지하철에 비해 임산부 배려석에 대한 인식이 덜하기 때문인 것 같다. 그러나 덜컹거리는 버스에서 중심을 잡고 버티는 일은 지하철에 비해 몇 배는 힘들었다. 
마을버스에서 중심을 잡는 것은 정말 힘들었다.

이렇게 전쟁같은 출근길에 시달리다보면, 업무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은 다시 대중교통을 이용할 엄두가 나지 않았다. 그래서 택시를 타고 퇴근을 한 적도 있었는데, 퇴근길 정체에 가열차게 올라가는 미터기를 보면서 눈물을 흘렸고, 결국 퇴근을 할 때도 지하철을 이용할 수 밖에 없었다(정부는 임산부에게 택시 이용 바우처를 지급하라)

한편 5일간의 대중교통 체험 동안 자리를 양보 받은 경험이 딱 한 번 있었다. 출 퇴근 길이 아닌 외근을 하러 가는 길에 이용한 지하철에서였다. 한 50대 여성분이 튀어나온 배를 잡고 좌석 앞에 서있는 내 모습을 보고 “애기 아빠, 여기 앉아요”라며 자리를 양보해주셨던 것. 순간 눈물이 핑돌았다. 자리에 앉게 됐다는 사실보다, 뭔가 배려를 받았다는 따뜻함이 밀려왔기 때문이다. 그 여성 분은 “나도 임신 했을 때 정말 힘들었다”며 “내 배가 이렇게 불렀으니 당연히 자리를 비켜달라고 생각하는 임산부는 없다. 다만 주위의 사람들이 ‘아 저 사람이 정말 힘들겠구나’라고 공감해주고, 이해해주는 배려가 확산됐으면 좋겠다”고 전했다.(10월 24일 지하철 9호선에 만났던 어머님. 이 기사를 보신다면 다시 한 번 정말 감사드립니다)

끝으로 고백할 것이 하나 있다. 기자의 아내 역시 현재 임신 7개월을 넘긴 워킹임산부다. 임신을 하고 부터는 자가용을 이용해 출근길에 아내를 직장에 내려주고 있는데, 이 과정에서 기자는 본의 아니게 몇 번의 귀찮음을 느꼈다. “그냥 혼자서 출근하지, 택시 타고 그냥 가지...”라고 생각했던 것. 하지만 실제 짧게나마 체험을 해보니 출퇴근길의 그 고단함을 조금이라도 덜어주는 것이 얼마나 소중한 배려인지를 절실하게 느꼈다. 앞으로 아내가 회사를 쉬는 그 날까지, 꼭 기쁜 마음으로 아내의 출근길을 도와주는 남편이 되겠다.

<덧붙이는 말. 1편이 나간 후 정말 많은 분들의 공감과 응원이 이어졌습니다. 우리 남편도 꼭 시켜보고 싶다는 반응부터, 고생해줘서 고맙다는 응원 글까지. 독자여러분께 정말 감사드립니다.

하지만 비판을 하시는 분도 있었습니다. 고작 1주일 체험해보고 뭘 안다고 이런 기사까지 쓰느냐라는 반응이었죠. 맞습니다. 제가 체험한 1주일은 실제 예비 어머님들의 고통과 어려움을 알기에는 너무나도 부족한 시간입니다. 하지만 이런 이해의 노력을 조금씩 해나가고, 경험을 전하는 것도 의의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부족함이 너무나 많지만 애정 어린 시선으로 봐주셨으면 합니다.>

<이전기사>
7일간의 만삭체험기①…남자, 만삭이 되다
7일간의 만삭체험기②…남자, 만삭워킹파더가 되다
*대중교통 체험편은 영상으로도 제작됐습니다. 영상이 궁금하신 분은 HOOC 페이스북에서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영상 확인하기 클릭

tiger@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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