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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수술하는 피부과 의사가 ‘수면마취’를 거부하는 이유
의사 편한 수면마취, 환자는 안전한가?

[HOOC=서상범 기자]수면마취. 최근 미용성형수술이 유행하면서 많은 병ㆍ의원에서 광범위하게 사용되고 있다. 잠깐 잠을 자는 동안 수술이 끝나는 것으로 인식되면서 환자들 사이에서 선호되고 있기도 하다.

그러나 수면마취에 대한 문제제기는 의학계 곳곳에서 일고 있다. 문제제기의 핵심은 바로 위험성. 지난 2015년 삼성서울병원 마취통증의학과 김덕경 교수팀은 국내 최초로 마취관련 의료사고 통계를 발표했다. 지난 2009년 7월부터 2014년 6월까지 5년간 발생한 마취관련 중대한 의료분쟁 105건중 82명(78.1%)이 숨진 것으로 조사됐다. 전체 사망 환자 중 전신마취로 인한 사고가 가장 많았지만 일반인들에게 안전하다고 알려져 있는 수면마취로 인한 사망사고 역시 39건(37.1%)으로 1년에 평균 8건 정도 발생한다는 것이니 결코 안전하지 않다고 할 수 있다. 

HOOC은 미용시술에서 무분별하게 이용되는 수면마취에 대한 잘못된 인식을 바로잡고자 노력하고 있는 정찬우 JF피부과 원장을 만나 수면마취에 대한 진실과 오해에 대한 이야기를 나눴다.

▶HOOC=수면마취의 위험성을 국내에서 가장 강하게, 또 꾸준히 강조하고 있는 의사 중 하나다. 본인 스스로도 수술을 하는 피부과 의사가 왜 수면마취를 비판하는 것인가?

▷ 정찬우(이하 정)=저는 수술하는 피부과 의사이지만, 수면마취는 전혀 진행하지 않습니다. 항노화 미용을 전문으로 하고 있기 때문에 노화 현상으로 변화된 얼굴의 볼륨과 윤곽을 다시 복원시키기 위해서는 필연적으로 수술적 방법이 필요하지만 저는 모든 시술을 오로지 국소마취로만 진행합니다. 이유는 대부분의 미용 치료를 위해서 수면마취를 할 필요도, 해서도 안 된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사진=정찬우 원장, JF피부과 제공

사실 ‘수면마취 (sleep anesthesia)’는 국적불명의 용어입니다. 정확한 의학적 표현은 ‘진정마취(sedative anesthesia), 중등도 진정 또는 의식하 진정’입니다. 진정마취는 그 심도에 따라 얕은 진정과 깊은 진정으로 나눌 수 있는데, 우리가 흔히 ‘수면마취’라고 부르는 마취법은 ‘깊은 수준의 진정마취’에 해당합니다.

흔히 수면마취라 하는 깊은 진정 마취 수술의 경우 마취과 의사가 수술 전 과정에서 환자의 호흡은 물론 모든 상태를 체크하며 진행하는 전신마취 수술보다 더 위험할 수 있습니다. 그 이유는 바로 수술의가 수술과 동시에 마취과의사의 역할까지 동시에 하다 보니, 마취 중에 호흡이 약해져 위급한 상황이 발생했을 때 응급처치가 지연되어 사망까지 이르는 경우가 종종 있기 때문입니다. 물론 마취과 의사가 시술의 전 과정을 시술 의사와 함께 진행한다면 문제 없겠지만, 한국 의료계 현실 상 대부분의 의원급 수술실에서는 수술의가 수술과 동시에 마취과 의사의 역할까지 해야 하기 때문에 어려운 면이 있습니다. 중요한 것은 ‘깊은 진정 마취’를 ‘수면마취’라고 부르며 “잠깐 잤다가 깨면 된다”고 편하고 쉽게 환자에게 말하는 것은 요즘 말로 팩트(사실)와는 전혀 다르기 때문에 의사로서 매우 유감스럽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위험성을 배제하면, 수면마취는 환자의 불안함을 해소시켜 의사의 시술을 용이하게 할 뿐만 아니라 시술에 대한 고통은 물론 수술실 안에서의 모든 나쁜 기억을 없앨 수 있는 장점이 있습니다. 환자의 두려움과 고통을 줄이고자 만들어진 마취 방법이긴 하지만, 이것이 지나치게 과도하게 일상적이며 반복적으로 진행되면서 의료환경이 변질되고 있고 의료 소비자의 위험성이 증가하고 있다는 것이 현재 한국 의료계 특히 미용의료계가 당면한 가장 큰 문제인 것 같습니다.
지난 2014년 서울 강남의 한 성형외과 의료진이 마취된 환자를 두고 파티를 벌이는 모습이 공개되며 사회적인 논란이 일었다. [사진=인터넷커뮤니티]

사실 국소마취만으로 의료진이 충분히 환자를 배려를 해 주면서 환자가 불편함을 거의 느끼지 않도록 섬세한 시술을 한다면 환자는 수술에 잘 협조할 수 있습니다. 저의 경우를 말씀 드리면 연부조직 윤곽술, 얼굴 및 가슴지방이식, 전신 지방흡입 등과 같이 흔히 큰 수술이라고 생각되는 수술도 100% 국소마취만으로 수술을 합니다. 그럼에도 최근에는 이런 큰 수술은 물론이고 리프팅 레이저 하나를 할 때도 수면마취가 남용되는 듯 하여 매우 걱정스럽습니다.

심지어 가장 많이 사용되는 수면마취제에는 마약성분이 있어 중독이 될 수도 있어서 환자는 시술을 핑계로 합법적인 마약을 투약할 수 있고, 의사는 환자가 반응하지 않는 동안 편하게 시술할 수 있기 때문에 수요자와 공급자의 이해가 맞아 떨어지면서 날이 갈수록 남용 실태는 심화되는 것이 현실입니다. 수년 전부터 미용성형 의료분야의 고질적인 병폐로 지적되고 있는 소위 유령수술 역시 수면마취 상태에서만 가능한 것이므로 ‘수면마취’는 그 개발 취지와는 다르게 악용되는 경우도 많습니다. 

▶HOOC=환자의 입장에서 결코 안전하지 않은 시술이라는 주장인데, 그렇다면 반대로 의사의 입장에서는 편하게 수술을 빨리 끝낼 수 있는 방법 아닌가?

▷정= 예를 들어 저는 지방이식이나 지방흡입과 같은 수술을 많이 하는 의사입니다. 그런데 제가 만약 수면마취로 이런 수술을 하게 되면 1/5000혹은 1/10만의 가능성으로 누군가의 귀한 생명을 앗을 수 있습니다. 물론 고의는 아니지만 저로서는 받아들일 수 없는 선택입니다. 뿐만 아니라 수면마취로 수술을 하면 수술 시간을 단축시키는 기술은 발전 될 수 있겠지만, 의사의 시술이 마치 공장에서 물건을 만드는 기계처럼 생산성을 따지는 것은 올바른 가치기준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환자를 위해서도, 의사 자신들의 발전을 위해서도 수면마취는 결코 좋은 선택이 될 수 없습니다. 때문에 저는 지난 1985년 미국의 피부과 의사인 Dr. Jeffrey Klein에 의해서 소개된 100% 국소마취만으로 지방흡입은 물론 가슴지방이식까지 시술을 하고 있습니다. 어떤 시술이던지 국소마취를 통해 수술을 하면 환자와 교감을 하게 되고 그러다 보면 어떤 부위를 어떻게 다루어야 환자의 고통이 덜하겠구나 고민을 하게 되고 그러다 보면 시술의 섬세함이 당연히 발전됩니다. 이것이 국소마취 수술의 가장 큰 장점이자 환자 입장에서 생각할 때 가장 중요한 가치가 아닐까 생각합니다. 안전하고 배려 받는 미용시술 말이죠.

▶HOOC=당신은 수면마취가 안전이나 기술적인 면 외에도 인간 가치를 위해서도 지양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수면마취를 하지 않아야 하는 가치적인 면은 무엇인가?

▷정= 국소마취로만 시술할 경우에는 병원과 의료진으로서는 많은 것을 감수해야 합니다. 환자의 시술에 대한 불안감이나 긴장감을 해소시키기 위해 의료진의 더 세심한 배려는 기본이고, 통증 과 불편을 최소화 할 수 있는 고도의 안전하고 숙련된 기술이 필요합니다. 수면마취를 대신할 여러 가지 인간적인 배려가 필요한 것이죠. 인력효율은 물론 시술 시간 대비 수익이라는 경제적 논리로 따지면 지극히 비경제적이긴 합니다. 뿐만 아니라 환자가 눈 크게 뜨고 지켜보는데, 경험 많은 다른 의사가 시술하는 동안 시술을 배우 수 없으므로 시술의 교육 전수도 국소마취 상태에서는 많은 제약이 따릅니다. 그럼에도 수면마취를 가능한 하지 말아야 하는 이유는, 의료란 경제적 논리로 그 가치를 이야기 할 수 있는 분야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환자의 입장에서 이야기 할 때 가치적인 면이 더욱 중요해집니다.

여러분은 수면마취 중 환자가 어떤 상태에 있게 될 것인가 상상해 보셨나요? 사실 수면마취라는 것은 완전히 무의식 상태로 빠지는 것이 아니므로, 신체적 활동은 저하되지만, 동물적인 본능은 남아있게 됩니다. 의식은 없지만 운동신경은 살아있어 약간의 통증에도 즉각 반응하게 되기 때문에 이를 효과적으로 통제하기 위해서는 환자를 침대에 결박 해야 합니다. 그래야 안전해지는 겁니다.

인간에게 의식은 별로 없고 오로지 동물적 본능만 남아있는 상태가 어떤 상태라고 생각이 드시나요? 특히 통증이 가해질 때 어떤 반응을 할 것 같습니까? 아마 영화 속의 한 장면이 그려지실 텐데요. 그 때 그 ‘생명체’에게 인간적인 대우가 가능할까요? 무엇보다 중요한 건 이런 환경에서 시술의 섬세함을 기대하기란 쉽지 않습니다. 때문에 이를 통제하기 위해서는 더 깊은 진정을 시켜야 하고 그러다 보면 위험에 노출되기 쉬워지는 것입니다. 

▶HOOC=그렇다면 환자와의 교감, 배려를 통해 의사가 얻는 것이 무엇인가?

▷정=환자의 안전과 존엄성을 지켜준다는 것에 대한 자부심입니다. 그 자부심이 제가 의업을 하는 이유이기도 합니다. 피부과나 성형외과 전문의와 같은 미용 닥터는 생명을 지키지는 않지만 무엇을 위해 고민해야 할까요? 바로 환자의 더 나은 행복 추구를 위해 고민하고 끊임 없이 노력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이 행복은 잘 나온 수술 결과로만 말할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환자와 함께 행복을 찾아가는 과정, 즉 의사와 환자와의 교감과 배려에서 나온다고 믿습니다.

▶HOOC=그렇다면 수면마취는 해서는 안 되는 시술인가? 궁극적으로 우리는 수면마취에 대한 어떤 자세를 취해야 하는가?

▷정=모든 수면마취가 나쁘다고 하는 것은 아닙니다. 조직의 큰 변화를 주는 시술. 일생에 한 번 할까 말까 한 생명의 문제에 관한 시술에서는 당연히 필요합니다. 제가 말하고 싶은 것은 왜 노화나 미용에 관한 시술에까지 수면마취를 ‘남용’하냐는 것입니다. 특히 노화에 대한 시술은 지속적, 반복적인 시술이 필요합니다. 그런데 그 때마다 전신마취보다 위험할 수 있는 수면마취에 노출되는 것은 환자의 건강과 안녕에 큰 문제가 생길 수 있습니다.

의료 미용을 선택하는 의료 소비자들이 똑똑해져야 합니다. 날이 갈수록 의료 소비자들의 선택의 폭은 확연히 넓어지고 있습니다. 심지어 치과의사들조차 보톡스, 레이저를 하겠다고 하고 대법원은 의료 소비자의 선택의 자유를 이유로 이를 허락해주겠다고 하는 시대입니다. 수면마취와 국소마취. 이 둘 중 어떤 것이 지금 나에게 필요한지 의사의 판단에 오롯이 맡기기보다는 먼저 공부하고 똑똑해졌으면 합니다. 불행은 항상 남의 일이라는 생각은 좀 위험할 수 있습니다. 
의업을 하는 본연의 가치는 환자의 행복을 위한 배려와 교감이다.

마지막으로 동료의사들에게 말하고 싶습니다. 의업을 하는 본연의 가치. 즉 환자의 행복을 위한 배려와 교감이라는 가치를 편의성과 경제성이라는 논리에 맡기지 않았으면 합니다. 의사는 생명을 다루는 가장 고귀한 직업이라는 생각을 잊지 않았으면 합니다.

tiger@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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