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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일본의 '만화 수도' 고치를 가다]①고치는 왜 만화왕국이 되었나?
<“국경의 긴 터널을 빠져나오자 눈의 고장이었다. 밤의 밑바닥이 하얘졌다.” 일본의 대문호이자 노벨 문학상 수상작가인 가와바타 야스나리의 소설 ‘설국’의 첫 문장입니다. 소설의 주인공이 일본 북쪽의 눈이 많이 내리는 고장을 방문하며 이야기는 시작됩니다. 이 위대한 첫 문장을 빌려 헤럴드의 지식미디어 HOOC팀은 만화 강국 일본, 그 중에서도 만화의 중심지로 떠오르고 있는 고치현 탐험기를 표현해볼까 합니다.>



[일본(고치)=손수용 기자ㆍ신보경 인턴]‘국경의 긴 터널을 빠져나오자 만화의 고장이었다. 도시 곳곳은 모두 만화와 함께 하고 있었다.’

지난 3일 용산구 후암동 HOOC팀으로 초대장이 날아왔습니다. 일본 고치현에서 진행하는 ‘만화 고시엔(갑자원)’에 대한 초대장이었습니다. 초대장에는 ‘만화 왕국’ 고치현이라는 소개가 적혀있었습니다. 이것을 받아들고 가장 먼저 든 생각은 의아함이었습니다. 

HOOC팀 앞으로 날아온 '만화왕국'의 초대장

‘어째서 고치가 만화 왕국이란 말인가?’란 궁금증과 함께 ‘만화 고시엔이라고 소개한 이 알 수 없는 행사의 정체는 무엇일까?’란 의문이었습니다.

흔히 일본 만화라고 하면 떠올리는 것이 도쿄에 위치한 아키하바라가 대표적일 것입니다. 또 고시엔이라고 하면 한국에는 일본 고등학생들의 야구대회로 알려져 있습니다. 그런데 야구 대회가 아닌 만화를 주제로 하는 고시엔이라뇨. 생소하기만 했습니다.

그러나 저희는 많은 궁금증을 안긴 ‘왕국’으로부터의 초대장을 무시할 수 없었습니다. 그리고 그들의 초대에 응하기로 결정했습니다.

여러 궁금증을 품에 안은 채 지난 5일 일본 고치로 향하는 비행기에 몸을 실었습니다.

사실 처음 도착한 고치공항에서는 이곳이 왜 만화의 고장인가를 실감하기는 어려웠습니다.

한국의 조용한 시골과 별 다르지 않은 분위기, 만화에 전혀 관심이 없어 보이는 침착한 사람들. 그나마 옆에 타고 있는 남성 한분이 만화책을 읽고 있었다는 것이 만화왕국과의 유일한 연결고리였습니다.

비행기가 심하게 흔들리는 순간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만화책에 빠져 있던 일본 남성.

하지만 여기까지 우리를 부른 이유가 있겠죠. 3일간 고치에 머물면서 이곳이 왜 만화왕국으로 불리고 있는지, 일본 만화 산업의 힘은 어디서 오는지에 대한 탐험을 시작했습니다.

'세균맨 어딨어!' 도시 곳곳에서 호빵맨을 어렵지 않게 볼 수 있었다.

①고치가 왜 ‘만화 왕국’인가?

고치 시내로 들어가자 눈에 먼저 들어온 것은 ‘호빵맨’이었습니다. 네. 맞습니다. 둥그런 얼굴에 착한 일하면 가슴이 따뜻해지는 호빵맨 말입니다. 거리 곳곳에서는 손쉽게 호빵맨을 찾아볼 수 있었습니다. 지나다니는 전차에도 호빵맨 캐릭터가 그려져 있었고 작은 상점에도 관련 상품들을 판매하고 있었습니다.

바로 호빵맨의 작가 야나세 타카시가 바로 고치 출신이기 때문이죠.

한편 고치를 대표하는 것은 호빵맨 뿐만이 아닙니다. 한국에도 잘 알려진 작가로는 심야식당을 그린 아베 야로와 일본의 유명작가 요코야마 류이치 등이 이곳 고치현 출신입니다.

놀라지 마세요. 고치현은 일본 내에서 인구 당 만화가 배출 비율이 가장 높은 도시입니다.

이 쯤 되면 고치가 만화로 어깨에 힘을 줄 이유가 있는 것이죠.

고치현 역시 이런 특징들을 이용한 사업을 전폭적으로 지원하고 있었습니다.

현청(우리나라의 도청)에서는 일본 44개 현 가운데 최초로 문화생활부 만화콘텐츠과를 신설해 운영하고 있습니다. 지난 2010년부터 만화에 특화된 지역 이미지를 더욱 강화하기 위해 운영하고 있죠.

이에 대해 타무라 토모유키 만화콘텐츠과 과장은 “25년간 이어진 만화 고시엔의 실적과 수많은 만화가를 배출해온 역사가 있었기 때문”이라며 “만화 문화의 부흥이 가장 첫번째 목표고 만화 콘텐츠를 통한 비지니스로 지역경제 활성화도 중요한 목표이고 계획”이라고 설명했습니다.

지역을 대표하는 캐릭터와 함께 그것을 발전시키려는 끊임없는 지자체의 노력, 고치가 왜 ‘만화 왕국’이라고 불리는지에 대한 이유였습니다. 

트리켈라톱스. 다행히 죽은 듯 보였다.

②오타쿠들의 성지, 카이요도 하비관 시만토

‘니코니코니~’로 대표되는 일본의 오타쿠(특정 분야의 취미에 심취한 사람) 문화. 일본 도쿄의 아키하바라는 오타쿠들의 성지로 불리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곳 고치에도 아키하바라 못지않게 수많은 오타쿠들의 발걸음이 끊이지 않는 곳이 있습니다. 바로 카이요도 하비관 시만토, 피규어 박물관입니다.

세계적인 피규어 제작회사로 유명한 카이요도의 박물관이죠.

그런데 도시 한복판에 위치하고 있을 것이란 예상과는 달리 카이요도 박물관을 찾아가는 것은 쉽지 않았습니다.

시내에서도 차로 1시간 가량을 달려 산골짜기를 넘고 수많은 터널을 통과해서야 겨우 카이요도 박물관의 모습을 볼 수 있었죠. 산으로 둘러싸여진 이곳은 마치 허락된 자만이 들어올 수 있는 요새 같은 아우라를 내뿜고 있었습니다.

뭐랄까요. 이 곳을 방문하는 것 자체가 일종의 피규어 탐험을 떠나는 것 같은 기분이었습니다.

그렇게 산넘고 물건너 찾아간 박물관. 문을 열자 실제 크기의 공룡 피규어가 눈을 압도했습니다. 여기에 작은 곤충 피규어, 에반게리온과 드래곤볼, 건담, 울트라맨 등 유명 만화 속 캐릭터들의 피규어까지. 과연 이 곳이 왜 오타쿠들의 성지로 불리는지 따로 설명이 필요 없었습니다. 

'포켓몬GO' 열풍에도 살아남은 포켓몬들.

일본을 비롯한 세계 각지에서 연간 10만 명에 이르는 사람들이 이곳 카이요도 피규어 박물관을 찾는다고 합니다.

기자가 방문했을 당시에도 많은 관람객들의 발걸음이 끊이지 않고 이어졌습니다. 고치에서 200km 넘게 떨어져 있는 와카야마에서 왔다는 테라지마 에미코 씨는 “어릴 적 기억을 떠올릴 수 있고 내가 좋아하는 캐릭터를 만날 수 있기 때문에 오게 됐다”며 “나에겐 꿈과 같은 곳”이라고 전했습니다.

그렇다면 카이요도는 왜 이곳에 박물관을 세우게 된 것일까요?

카이요도 박물관 관계자인 소타키 노부이치(57)씨는 “만화와 피규어는 땔래야 땔 수 없는 관계다. 서로 영감을 주면서 발전하는 관계”라며 “카이요도 사장의 아버지가 바로 이곳 고치현 출신으로, 이곳 출신의 수많은 만화가들의 만화를 접하면서 느꼈던 즐거움을 전하고 싶었기 때문에 고치에 박물관을 세웠을 것”이라고 전했습니다. 

이번 대회 우승팀인 이토우 고등학교.


③만화를 사랑하는 고치의 축제, 만화 고시엔

초대장이 날아온 순간부터 계속 궁금증을 불러 일으켰던 만화 고시엔. 과연 그 정체는 무엇일까요?

고시엔이라고 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종목은 야구입니다. 일본 전국 고등학교 야구 선수권 대회를 부르는 말이 바로 고시엔이기 때문입니다. 일본에서 가장 인기 있는 스포츠 대회로, 경기마다 매진 사례는 물론이고 TV시청률 역시 30%를 웃돈다고 합니다.

그런데 야구가 아닌 만화를 주제로 하는 고시엔 역시 일본의 전국적인 관심이 몰리는 행사입니다.

다른 말로 일본 전국 고등학교 만화 선수권 대회로 불리는 이 행사는 올해로 25년째를 맞이하는 유서 깊은 대회입니다.

특히 만화가를 지망하는 고등학생들이라면 누구나 꿈꾸는 대회죠.

특히 일본 내 유명 만화 출판사 관계자들이 모여들어 입상자에게는 데뷔의 기회가 주어지기도 합니다.

지난해부터 우리나라를 대표해 전남예술고등학교 학생들이 출전했고 올해는 대만의 고등학교에서도 본선에 진출해 뛰어난 실력을 뽑내기도 했습니다.

현장에서 지켜본 만화 고시엔은 경쟁이라기 보단 축제에 가까웠습니다. 전국에서 모여든 학생들은 만화를 그리고 있다는 자체를 즐기고 있었습니다. 시종일관 미소를 잃지 않으며 대회에서 정해진 주제를 바탕으로 만화를 그려나갔습니다. 자신들이 그린 만화를 많은 사람들에게 보여줄 수 있고 존경했던 만화가에게 평가를 받는 자체를 즐기는 모습이었습니다.

우리나라를 대표해 참가한 전남예고의 조가영(18) 학생은 “우리나라에도 만화 대회가 많이 열리고 있는데 입시와 모두 연관이 있다”며 “한국은 너무 입시를 중요시하다보니 경쟁이 치열한데 여기는 그런 부담없이 축제처럼 즐겼다”고 소감을 전하기도 했습니다. 대회 자체를 축제처럼 즐기는 참가자들의 모습 속에서 자연스럽게 일본 만화 산업의 힘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feelgood@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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