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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바람난과학] 가난은 당신의 뇌도 바꾼다
[HOOC=이정아 기자] 가난도 잘만 갈고 닦으면 보석이 된다…. 나태주 시인의 시 ‘가난도 잘만 갈고’의 한 구절인데요. 글쎄요, 숫자는 시와 반대로 말합니다. 아이들의 키는 부모님의 소득에 따라 결정되고 뱃살은 소득과 거꾸로 간다고 말입니다.

그런데 가난이 건강만 바꾸는 게 아니라 뇌 구조까지 바꾸고 있다면 어떨까요? 암울한 이야기지만 ‘소득 수준이 뇌 구조를 변화시키는 데 영향을 미칠 것이다’는 가설은 뇌를 연구하는 학자들 사이에서 사실상 통설로 받아들여지고 있습니다. 가난이 뇌 기능을 떨어뜨리는 절대적 역할을 하는 건 아니지만, 가난이 기억력을 떨어뜨리고 스트레스에 취약하게 만들기 때문에 뇌의 특정 부위 기능을 떨어뜨릴 수 있다는 것을 부정하기 어렵다는 것이죠.




가난이 바꾼 뇌

지난 1월 미국 심리학회지 온라인판에 가난한 집 아이들의 뇌 신경회로 연결상태가 넉넉한 집 아이들의 뇌와 다르다는 내용의 논문 한 편이 게재됩니다. 연구진은 7살부터 15살까지 어린이 105명의 가정 환경과 행동 발달 등을 장기간 추적하면서 기능성 자가공명영상장치(MRI)로 촬영한 뇌 사진 등을 비교 분석했는데요. 가난한 집 아이들의 뇌의 해마와 소뇌 편도체의 연결상태가 부잣집 아이들보다 상대적으로 더 약했습니다.

뇌의 해마는 학습·기억·스트레스를 조절과 편도체는 스트레스 및 정서와 관련된 부위입니다. 다시 말해 가난한 집 아이일수록 학습하고 인지하는 능력이 떨어지고 우울증이나 반사회적 행동을 나타낼 가능성이 크다는 것이죠. 가난하면 가난할수록 이런 연결성은 더 약했습니다. 취학하기 전에 더 가난했던 아동일수록 취학 이후(9~10세)에 우울증 증상이 훨씬 더 많이 나타났고요.

지난해 3월 네이처 뉴로사이언스지에도 가난이 뇌 구조에 영향을 미친다는 논문이 실립니다. 미국 여러 도시에서 어린이와 청소년 1000여 명의 뇌를 들여다봤는데, 넉넉한 집 아이들의 대뇌피질 면적이 가난한 집 아이들보다 6% 넓었다는 게 연구논문의 골자입니다. 대학을 졸업한 부모의 아이들의 대뇌피질 면적도 고등학교를 졸업한 부모의 아이들보다 3% 더 넓었습니다.

대뇌피질은 대뇌 가장 표면에 있는 고차원 인지처리를 하는 곳입니다. 이 부위가 넓다는 건 기억, 집중, 사고, 언어 능력이 상대적으로 더 뛰어나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연구진은 “가난이 반드시 아이들의 삶을 나쁜 쪽으로 밀어 넣는 것은 아니지만 뇌와 정서의 발달에 영향을 주는 요인은 맞다”고 덧붙였죠.

넉넉한 집 아이들, 대학을 졸업한 부모의 아이들의 대뇌피질 면적이 상대적으로 가난한 집 아이들의 대뇌피질 면적보다 넓었다.


스트레스로 과부화된 뇌, 지능에도 영향

가난은 아이큐를 떨어뜨리는 것과 같은 효과를 가져온다는 연구도 있습니다. 쇼핑하러 온 사람들 400명을 무작위로 뽑고 연소득을 7만 달러 이상인 사람, 2만 달러 이하인 사람으로 나눈 뒤에 간단한 논리 테스트를 보도록 했습니다. ‘당신의 차가 고장이 났는데 수리비가 150달러 또는 1500달러가 나왔다, 이 비용을 어떻게 처리하겠는가’와 같이 돈과 관계가 있는 문제들이었는데요. 실험 참가자로 하여금 문제를 해결할 때 자신의 소득 수준이 영향을 미치게끔 한 것이죠.

결과는 어땠을까요? 소득이 높은 사람일수록 돈을 사용하는 데 합리적인 결정을 내리고 논리 테스트에서도 모두 좋은 성적을 냈습니다. 연소득이 높은 사람과 낮은 사람의 문제 해결력은 무려 2배 가까이 차이가 났고요. 소득이 낮은 사람들은 빚을 갚아야 한다, 일자리를 구해야 한다 등과 같은 스트레스를 받으면서 뇌가 과부화되니까 생산적인 일이 어려워집니다. 뇌가 쉽게 명령하지 못하니까 가난한 사람들이 인지할 수 있는 범위는 작아지고요. 가난한 사람들이 가난한 상황을 더 악화시키는 판단을 내린 데는 이런 이유가 있었습니다.

수저계급론의 핵심은 경제적인 배경이 이미 태어날 때부터 만들어져 있다는 데 있습니다. 빈부격차는 심화되고, 공평하지 않고, 나아질 기미는 없고. 그런데 이런 이유로 사람마다 기억하고 사고하는 인지능력까지 차이를 보이고 있습니다. 그래서 가난에 대한 해결책은 이제 ‘가난이 뇌를 지배하고 있다’는 데서 시작해야 할 지도 모릅니다. 가난한 사람들이 돈 걱정으로 놓치는 모자란 부분을 정책이 채워줘야 하는 것이죠. 세월의 무게가 덧대면 덧댈수록 소득 격차가 벌어지는 세상에서 가난을 잘 갈고 닦으면 보석이 되는 세상은 과연 올 수 있을까요.

dsun@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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