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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HOOC] FBI는 왜 잠긴 아이폰 하나를 열지 못할까?
[HOOC=이정아 기자] 미국 연방수사국(FBI)이 잠긴 아이폰을 두고 석 달 넘게 씨름하고 있습니다. 이에 미국 법원은 애플에게 FBI가 아이폰을 볼 수 있도록 도우라고 명령했지만, 애플은 법원 명령을 정면으로 거부했습니다. 애플은 왜 FBI의 협조에 응하지 않는 걸까요, FBI는 왜 아이폰 하나를 열지 못해 제조사에 대한 강제수사에까지 착수한 걸까요?

FBI의 고충은 일상에서 친구의 아이폰을 열어보지 못하는 것과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17일(현지시각) 미국 일간 워싱턴포스트(WP)는 잠금해제를 위한 암호 입력을 5차례 틀리면 다음 입력까지 1분을 기다려야 하고 9차례 틀린 뒤부터는 1시간을 기다려야 하는 아이폰의 최신 보안체계에 대해 소개했습니다. 

아이폰 잠금해제를 위해 입력해야 하는 비밀번호는 21억7000만 건. 입력시간은 최대 144년으로 늘어날 수 있다.

애플은 2014년 9월부터 문자 메시지나 사진 등의 정보를 암호화했습니다. 아이폰이 잠겨 있으면 사용자가 설정한 비밀번호가 있어야 자료에 접근할 수 있고, 설정에 따라 암호를 10번 넘게 잘못 입력하면 기기의 모든 자료가 자동으로 삭제되도록 업데이트했습니다.

그런데 이같은 설정으로 인해 FBI는 작년 12월 미국 캘리포니아 주 샌버너디노에서 총기난사로 14명을 살해한 테러리스트 사이드 파룩의 잠긴 아이폰을 열지 못하고 있습니다. 가능한 모든 암호 조합을 넣는 대량으로 입력해야 잠금을 해제할 수 있는데 이 과정에서 아이폰에 담긴 자료가 모두 삭제될 수 있기 때문이죠. 

암호를 10번 넘게 잘못 입력하면 기기의 모든 자료가 자동으로 삭제되도록 설정할 수 있다.

이에 FBI는 틀린 암호를 입력하더라도 다음 입력까지 기다려야 하는 시간을 없애고, 비밀번호를 계속해서 입력해도 자료가 삭제되지 않게 해달라고 애플에 요구하고 있습니다. 1만개에 달하는 번호 조합을 손으로 입력하지 않고 빠르게 처리하는 방법도 제공해 달라고 하고 있고요.

그러나 애플이 입력과 입력 사이에 걸리는 잠금장치를 없애는 데 협조하더라도 아이폰에는 더 큰 보안장벽이 버티고 있습니다. 애플은 아이폰이 암호를 인식하는 데 12분의 1초가 걸리도록 복잡한 연산장치를 만들어 놓았습니다. 다시 말하면, FBI가 고속 입력기를 가동하더라도 암호조합을 1초에 12개밖에 시도하지 못하는 겁니다.

이런 조건에서 알파벳 소문자와 숫자가 섞인 6자리 조합, 다시 말해 21억7000만 경우를 모두 입력하는 데 걸리는 시간은 5년 6개월로 계산됩니다. 아이폰의 6자리 암호가 모두 숫자로 이뤄졌다면 조합은 100만개 정도로 줄어들고 모두 시도하는 데 드는 시간도 22시간까지 짧아집니다. 암호 6자리가 대문자, 소문자, 숫자로 이뤄졌다면 조합의 수는 568억개에 이르며 입력시간은 무려 144년까지 늘어납니다.

FBI 수사에 협조하라는 미국 법원의 명령을 정면으로 거부한 팀 쿡 애플 CEO.

애플이 법원의 명령까지 거부하며 FBI의 협조에 응하지 않는 건 이번 수사로 보안체계를 한 차례 무너뜨리는 것 자체가 사생활 보호를 위한 사이버 보안 전반에 미칠 파장이 막대할 것으로 보고 있기 때문입니다. 팀 쿡 애플 CEO는 전날 고객들에게 편지를 보내 이같이 전달했습니다.

“(보안장벽을 우회할 ‘백도어’가) 한 번 만들어지면 다른 많은 기기에도 계속 사용될 우려가 있다. 실생활과 비교하자면 식당, 은행, 가게, 가정집을 불문하고 수억 개의 자물쇠를 딸 수 있는 마스터키에 상응하는 것이다. 이성적인 사람이라면 (FBI의 요구를) 받아들일 수는 없을 것이다.”

FBI를 비롯한 미국 정부의 수사기관들은 국가안보를 위해 애플의 보안체계에 백도어(뒷문)가 있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일부 보안 전문가는 이번 테러범의 아이폰이 구형 모델인 5C라는 점을 지적하며 애플이 이번 한 차례에 한해 협조하더라도 새 모델의 보안에는 영향을 미치지 못할 것이라고 주장하고 있는데요.

한편 애플이 잠금해제를 거부하자 공화당 대선주자인 트럼프가 강하게 애플을 비난하고 나섰습니다. 트럼프 후보는 지난 17일 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난 법원 결정에 100% 동의한다”며 “이런 경우에는 (잠금 장치를) 열어야 한다”고 강조했는데요. 애플의 아이폰 잠금해제 거부는 곧 미국에서 치러질 대통령 선거에서 주요 쟁점으로 떠오를 것으로 전망됩니다.

dsun@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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