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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식물왕 정진영> 45. 새해는 ‘인동초’처럼 유연하고 향기롭기를
[HOOC=정진영 기자] 많은 이들에게 존재보다 수사로 더 익숙한 식물이 하나 있습니다. 온갖 고난을 견디고 극복한 이들의 이름 앞에 이 식물의 이름이 관성처럼 따라 붙곤 하죠. 고(故) 김대중 전 대통령의 별명으로 유명세를 얻었지만 정작 그 모습을 아는 이는 드문 식물, 바로 인동초(忍冬草)입니다.

인동초는 많은 오해로 둘러싸인 식물입니다. 인동초는 덩굴성 낙엽관목, 즉 풀이 아니라 나무입니다. 인동초는 인동덩굴이란 본명을 가지고 있죠. 인동초는 혹독한 겨울을 이겨내고 향기로운 꽃을 피운다는 이유로 대접을 받고 있지만, 풀이 아닌 나무가 겨울을 견디고 꽃을 피우는 것은 평범한 일입니다. 푸른 잎을 매단 채 겨울을 나는 상록활엽수들이 적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인동초가 특별한 이름을 얻은 이유는 명확하지 않습니다.

충북 보은군 속리산면 구병리마을에서 촬영한 인동초. 정진영 기자/123@heraldcorp.com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해를 오해로 두는 것도 그리 나쁘지 않아 보입니다. 실체와 관계없이 인동초라는 이름이 가진 상징성만으로 용기를 얻는 이들도 적지 않은 것 같으니 말입니다. 인동덩굴이란 이름보다 인동초라는 이름이 입에 더 잘 붙는 것도 사실이고요. 사람들이 오해를 하거나 말거나 인동초는 매년 그 자리에서 푸른 잎을 세우고 봄과 여름의 문턱에서 향기로운 꽃을 피울 겁니다. 늘 그래왔듯이 꽃은 말이 없고, 오해는 사람들의 몫이니 말입니다.

세밑 한파가 잦아들자 거짓말처럼 새해입니다. 메르스(중동호흡기증후군) 사태, 극심한 내수 침체, 취업난, 역사 교과서 국정화를 둘러싼 국론 분열……. 지난 2015년은 참으로 모진 한 해였습니다. 지난 한 해 동안 유행했던 신조어들에선 우울했던 사회적 분위기가 고스란히 엿보입니다. ‘금수저’와 ‘흙수저’, ‘헬조선’, ‘열정페이’, ‘N포세대’, ‘노오력’ 등 신조어에서 느껴지는 감정은 자학과 좌절입니다. 이 같은 분위기는 안타깝게도 2016년에도 그대로 이어질 듯합니다. 2016년을 육십갑자(六十甲子)로 표현한 ‘병신년(丙申年)’이 벌써부터 다른(?) 의미로 더 많이 쓰이는 것을 보면 말입니다.

시절이 하 수상하니 인동초처럼 인내하라는 새해 덕담은 진부하게 들릴 것 같아 삼가겠습니다. 인동초는 사실 많은 이들의 생각처럼 무작정 인내하는 식물이 아닙니다. 반(半) 상록수인 인동초는 혹한과 맞닥뜨리면 과감하게 대부분의 잎을 털어내고 겨울을 건너가거든요. 인동초는 여러분의 생각보다 변화에 꽤 유연하게 대응하는 편입니다.

충북 보은군 속리산면 구병리마을에서 촬영한 인동초. 정진영 기자/123@heraldcorp.com

최근의 우울한 사회적 분위기를 흐린 날씨 혹은 비 오는 날씨와 비교하는 것은 다소 무리일지도 모르지만, 날씨는 흐리든 비가 오든 모두 꽃을 피우기 위해 필요합니다. 그저 지금 이 글을 보고 있는 모든 분들이 새해에는 자학과 좌절이란 익숙함에 속아 소중한 것을 잃어버리는 일이 없기를 바랄 뿐입니다. 아무리 날씨가 흐리고 비가 와도 인동초는 때가 되면 기어이 꽃을 피워 그윽한 향기로 오가는 이들의 발걸음을 더디게 만들 겁니다. 여러분들의 새해도 인동초와 같기를 기원합니다.

123@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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