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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식물왕 정진영> 37. ‘서양등골나물’은 정말 황소개구리 같은 존재일까?
[HOOC=정진영 기자] 꽃들은 계절뿐만 아니라 기후도 가리기 때문에 지역별 분포도 다릅니다. 여름이면 남도에서 달콤한 향을 뿜어내는 치자꽃은 수도권에선 좀처럼 마주치기 어렵죠. 가을이면 강원도 들판 곳곳에서 피어나는 분홍바늘꽃은 대관령을 넘어서면 자취를 감춥니다. 독특하게도 서울 사람들에겐 익숙한데, 타 지역 사람들에겐 생소한 꽃도 있습니다. 해마다 서울에 가을이 오면 공터와 산지 곳곳을 순백의 꽃으로 채우는, 바로 서양등골나물입니다.

서울 청계천에서 촬영한 서양등골나물. 정진영 기자/123@heraldcorp.com

‘서양’이란 접두어에서 짐작할 수 있듯이 서양등골나물은 북미 원산의 귀화식물입니다. 서양등골나물은 귀화식물 중에선 드물게도 발견자와 발견된 시기ㆍ장소가 명확한 식물이기도 합니다. 서양등골나물은 지난 1978년 이우철 박사(강원대 생물학과 교수)가 서울 남산에서 발견했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기자의 소박한 짐작입니다만, 당시 북미 지역에서 한국을 방문한 외국인들의 신발이나 옷에서 서양등골나물의 종자가 묻어와 이 땅에 뿌리내린 것 아닌가 싶습니다. 발견 당시 서울 남산의 한 모퉁이와 워커힐 언덕에서 한두 포기 보일 정도였다던 서양등골나물은 강인한 생명력을 바탕으로 이제 그 세력을 수도권으로 확장한 상황입니다.

보기엔 아름다운 서양등골나물은 사실 여러모로 사람의 골치를 썩이는 식물입니다. 원산지인 북미지역에서 서양등골나물은 ‘우유중독증(Milk Sickness)’를 일으키는 식물로 유명합니다. 소나 염소가 서양등골나물을 섭취하면 체내에서 ‘트레메톨(Tremetol)’이란 독성 유기물질을 합성합니다. 이들로부터 짜낸 우유를 사람이 마시면 신경발작 등 인체에 치명적인 해를 끼친다고 합니다. 링컨 미국 대통령의 어머니도 ‘우유중독증’으로 사망했다고 전해지죠.

국내에서도 서양등골나물은 생태계를 교란하는 식물로 낙인 찍혀 있습니다. 대개 귀화식물들은 양지에 뿌리를 내리는 편이지만, 서양등골나물은 음지에서도 잘 자랍니다. 이 때문에 서양등골나물은 귀화식물을 발견하기 어려운 깊은 산속에서도 목격할 수 있습니다. 서양등골나물은 토종식물들의 삶을 위협한다는 이유로 종종 관(官)의 제거작업 대상에 오르곤 합니다. 이 때문에 서양등골나물은 황소개구리와 비교되기도 하죠. 그러나 생태계 교란 식물이란 낙인은 사람들의 일일뿐, 서양등골나물은 늘 그래왔듯이 매년 그 자리에서 꽃을 피우고 꺾이고 다시 자라나고 있습니다.

서울 청계천에서 촬영한 서양등골나물. 정진영 기자/123@heraldcorp.com

서양등골나물의 꽃말은 ‘주저’ ‘망설임’입니다. 이 꽃말은 생태계 교란의 기준은 과연 무엇인가에 대해 조심스럽게 묻게 만듭니다. 서양등꽃나물 외에도 돼지풀, 털물참새피, 도깨비가지, 가시박, 애기수영, 서양금혼초, 미국쑥부쟁이 등 생태계 교란종으로 취급받는 식물이 많습니다. 이 같은 낙인은 결국 사람에게 도움을 주지 못한다는 이유로 찍힌 낙인은 아닌지. 실은 사람이야말로 지구의 역사상 최악의 생태계 교란종인데 말입니다.

서양등골나물을 발견한 이우철 박사는 20년 전 한 언론과 가진 인터뷰에서 “서양등골나물은 토양이 척박하고 생태계가 파괴된 곳에서 쉽게 퍼진다”며 “토양조건이 좋아지면 사라지는 특성을 갖고 있다”고 말씀하시더군요. 서울의 토양 자체가 실은 토종식물들이 버틸 수 없는 조건인 것은 아닌지. 그리고 그 토양을 척박하게 만든 것은 바로 우리가 아닌지.

123@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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