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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식물왕 정진영> 33. ‘메밀꽃’ 핀 먼 곳은 어디든 아름답다
 [HOOC=정진영 기자] “이지러는 졌으나 보름을 갓 지난 달은 부드러운 빛을 흔붓이 흘리고 있다. 대화까지는 칠십 리의 밤길, 고개를 둘이나 넘고 개울을 하나 건너고, 벌판과 산길을 걸어야 된다. 길은 지금 긴 산허리에 걸려 있다. 밤중을 지난 무렵인지 죽은 듯이 고요한 속에서 짐승 같은 달의 숨소리가 손에 잡힐 듯이 들리며, 콩포기와 옥수수 잎새가 한층 달에 푸르게 젖었다. 산허리는 온통 메밀밭이어서 피기 시작한 꽃이 소금을 뿌린 듯이 흐붓한 달빛에 숨이 막힐 지경이다.”(이효석 ‘메밀꽃 필 무렵’ 중)

충북 보은군 속리산면 구병리마을에서 촬영한 메밀꽃. 정진영 기자/123@heraldcorp.com

여러분은 문장으로 그린 그림을 본 일이 있나요? 학창시절에 국어 수업 시간을 허투루 보내지 않았다면, 누구나 문장으로 그린 그림 한 폭과 마주친 일이 있을 겁니다. 이효석 작가의 단편소설 ‘메밀꽃 필 무렵’이 묘사한 강원도 평창군 봉평면부터 대화면까지 펼쳐진 70리 길은 한국 문학사에서 아름답기로 손꼽히는 장면이니 말입니다.

‘메밀꽃 필 무렵’ 덕분에 메밀꽃은 가을의 낭만을 상징하는 꽃으로 자리매김할 수 있었습니다. 또한 메밀은 묵, 국수, 냉면 등 식재료로도 우리에게 익숙한 식물입니다. 그런데 메밀꽃이 ‘소금을 뿌린 듯이’ 하얗게 들판을 덮은 장관을 눈에 담아본 이들은 그리 많지 않더군요. 그 이유는 무엇일까요?

메밀은 쌍떡잎식물 마디풀과의 한해살이풀입니다. 메밀의 원산지는 동부 아시아의 북부 및 중앙 아시아로 추정되는데, 7세기 백제의 멸망 당시 도읍지였던 충남 부여군의 부소산성 유적지에서 탄화 메밀이 발굴된 것으로 미뤄 보면 메밀은 삼국시대 이전에 한반도로 전파된 것으로 보입니다. 메밀과 한민족의 인연은 이렇게 유구합니다

충북 보은군 속리산면 구병리마을에서 촬영한 메밀꽃. 정진영 기자/123@heraldcorp.com

메밀은 서늘하고 습한 기후에서 잘 자라고 짧은 생육기간(약 60~100일)을 가진데다 병충해에도 강합니다. 또한 메밀은 쌀, 보리 등 다른 곡물에 비해 단백질의 함량이 매우 높은 편(12~14%)이어서 예부터 구황작물로 많이 재배돼 왔습니다. 고산지대의 자갈땅에서 자란 메밀의 맛이 가장 좋다는 군요. 이 때문에 메밀 재배지는 평지보다 산지에 많이 분포돼 있습니다. 메밀로 만든 음식과는 달리 메밀꽃은 흔하게 보이지 않는 이유이죠.

메밀꽃은 7월부터 10월 사이에 피어나는데, 절정은 9월 초가을입니다. 파란 하늘 아래 서리처럼 산허리에 내려앉은 하얀 메밀꽃을 바라보면 눈앞이 절로 아득해집니다. 아름다운 풍경은 부지런한 자의 몫입니다. 해마다 9월이면 ‘메밀꽃 필 무렵’의 무대인 봉평을 비롯해 충북 보은군, 전북 고창군 등 전국 곳곳에서 메밀꽃을 주제로 축제가 열립니다.

메밀꽃의 꽃말은 ‘연인’입니다. 만약 누군가와 ‘썸’을 타고 있는데, 관계의 진전을 원한다면 주말에 한 번 용기를 내보시죠. 함께 눈처럼 하얀 메밀꽃밭 사이를 거닐다보면 없던 로맨스까지 절로 생길지도 모르니 말입니다. 이맘 때 먼 곳은 어디든 아름답습니다.

123@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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