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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식물왕 정진영-특별편> 믿음의 면역력은 ‘산삼’보다 강하다
[헤럴드경제=정진영 기자] 여름의 초입인 6월의 주말, 전국의 교외는 나들이를 나온 사람들로 붐벼야 합니다. 그러나 올해 6월의 주말 풍경은 예년과 비교해 사뭇 다릅니다. 교외에는 사람들의 발길이 뚝 끊겼습니다. 시끌벅적했던 동네 골목도 고요해졌습니다. 서울 도심은 마치 명절을 맞이한 듯 한산했습니다. 이는 모두 중동호흡기증후군(메르스)의 공포가 만들어 낸 살풍경입니다. 난데없이 여름 감기를 앓고 있는 기자는 최근 마을버스 안에서 기침을 하다가 마치 홍해가 갈라지듯 사람들이 길을 터주는 기적(?)을 경험했습니다. 슬픈 기적이었습니다.

메르스의 영향으로 그 어느 때보다 사람들의 건강에 대한 관심이 높아졌습니다. 가짜 백수오 파동으로 한동안 침체상태에 빠졌던 건강기능식품 시장이 메르스 영향으로 다시 매출 회복세를 보이고 있죠. 특히 면역력 증강에 도움이 된다는 홍삼의 판매량이 늘었다는군요. 인삼을 9번 찌고 9번 말린 홍삼의 효능이 아무리 뛰어나도, 상석의 주인은 따로 있습니다. 바로 산삼(山蔘)입니다.

한국인들의 산삼에 대한 인식은 거의 신화에 가깝습니다. 예로부터 산삼은 다 죽어가는 사람도 살려내는 만병통치약으로 취급을 받았죠. 이 같은 신화를 더욱 부풀린 것은 산삼의 희소성입니다. 산삼은 심산유곡에서 매우 느린 속도로 자라는 데다 생장에 위협을 주는 환경 하에서 휴면 상태에 돌입하는 독특한 생존법으로 유명하죠. 기자가 10여 년 전 아버지께서 채취한 산삼 세 뿌리와 마주했을 때 느꼈던 희열은 말로 다 설명하기 어려울 정도입니다.
사진 설명=대전 계족산에서 채취한 산삼. 정진영 기자/123@heraldcorp.com

기자의 마음속에 새겨져 있던 산삼의 신화가 무너지는 데엔 그리 오랜 시간이 들지 않았습니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아버지께서 채취한 산삼의 가치는 집안을 일으키기엔 턱이 없었고, 심지어 아버지 혼자 드실 양도 되지 않았습니다. 당시 산삼을 감정했던 모 협회 소속 심마니에 따르면 성인 남성이 산삼으로 약효를 보려면 7돈(26.25g) 이상을 복용해야 하는데, 심마니는 대략 수령 10년을 1돈으로 보더군요. 심마니에 따르면 각 산삼의 수령은 30년, 20년, 15년가량이었습니다. 세 뿌리를 합쳐도 7돈에 이르지 못했던 겁니다.

그 심마니에 따르면 아버지께서 채취한 산삼은 장뇌삼이었습니다. 발끈하는 기자에게 그 심마니는 “새가 산삼의 열매를 먹은 뒤 소화되지 않은 종자를 배설하고 여기에서 싹이 돋아 자라는 삼만이 진짜 산삼, 즉 천종(天種)”이라고 강조했습니다. 이어 그는 뇌두(줄기가 붙어 있다가 말라 죽은 흔적)를 가리키며 “산삼은 뇌두가 가늘고 장뇌삼은 재배삼처럼 목이 굵다”고 설명해주더군요. 풀이 죽은 기자에게 심마니는 “팔기보다 그냥 아버지 혼자 다 드시는 것이 낫다”고 조언했습니다. 당시엔 꽤 서운했지만 돌이켜보니 매우 양심적인 심마니였습니다.

고향으로 돌아온 아버지는 홀로 산삼을 모두 복용하셨습니다. 실뿌리 하나 남김없이. 의기소침해진 기자에게 명현현상(복약 후 일시적으로 나타나는 예기치 못한 여러 가지 반응)으로 얼굴이 붉어진 아버지께서 말씀하시더군요. “실은 산에 산삼 한 뿌리를 남겨 두고 왔다”. 기자는 지금까지 아버지께 산삼의 위치를 캐묻고 있습니다.

기자는 거리에서 마스크를 쓴 채 바쁘게 움직이는 사람들을 바라보며 문득 아직 산에 남아 있을지 모를 산삼 한 뿌리를 떠올렸습니다. 아버지께서 산삼을 복용한 후 얼마나 건강해지셨는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그 산삼이 앞으로도 아버지의 잔병치레를 덜어줄 것이란 소박한 믿음은 여전합니다.

메르스는 최근 들어 불신(不信) 바이러스로 변형된 듯합니다. 불신 바이러스는 마음에서 마음으로 퍼져 나가기 때문에 체액과 접촉으로 전염되는 메르스보다 훨씬 강력하고 무섭죠. 불신 바이러스의 면역력 확보는 믿음을 주는 정부의 대응에서 나옵니다. 그것이 지금 당장 우리에게 필요한 산삼 한 뿌리일 겁니다. 의문을 가지고 복용하는 명약보다 믿음을 가지고 복용하는 위약의 효과가 훨씬 강한 법이니 말입니다.

123@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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